주주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처럼 주식투자 후 시세차익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 결정에 따른 기업가치 변화에도 주목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경영진들도 이 같은 주주들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주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마련에 분주하다. 이를 통해 주주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대기업들이 내세우는 주주친화정책 의미와 내용, 보완할 점 등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주 친화정책의 수준은 이사회 구조와 주주권익 보장, 기업 경영의 투명성 등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고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인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이사회 구성과 투명경영은 주주 친화정책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훼손돼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 역시 이 같은 항목을 통해 각 기업의 주주 친화정책을 판단한다. ISS는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역할은 중요하다. 사외이사는 대주주(오너 일가)와 관련이 없는 외부 인사로서 경영진은 아니지만 이사회에 참가한다. 이를 통해 대주주를 비롯한 사내이사들의 경영활동을 견제, 독단경영이나 전횡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사외이사가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로 전락한다면 주주권익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 특히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이거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기업들은 사외이사의 역할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주요 경영현안 결정 과정에서 대주주를 위한 일방적인 경영 행태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한 삼성의 지배구조 변환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 역할이 충분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최중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원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시, 합병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간이 짧았다"며 "이 때문에 삼성물산 이사들이 합병 실익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이사회의 경영 견제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물산을 비롯한 각 기업들은 이사회 내에 거버넌스위원회를 만들고, 사외이사로만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사외이사 역할 및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위원회(투명경영위원회)를 구성한 현대차의 경우 위원회 역할을 강화할 예정이다. 주요 경영현안에 대해선 위원회에서 먼저 안건을 다뤄 통과여부를 결정하고, 통과된 안건에 한해서만 이사회 의결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가령 한전부지 매입 등 중요한 경영사안은 투명위원회에서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통과여부를 결정하는데, 주주들의 반대로 안건이 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이사회는 이 사안을 의결할 수 없다.
현대차 사외이사이자 투명위원회 소속인 이유재 서울대 교수는 "투명위원회 설립은 회사 지배구조 및 경영과 관련해 투자자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경영에 반영, 주주들과의 소통을 통해 주주권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며 "투명위원회에서 경영 안건이 통과되지 못하면 이사회가 해당 안건을 의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주주권익 보호 위해 소통 강화
주주권익을 보장하는 대표적 방법은 높은 배당성향과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주식가치를 높여 주주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기업의 실적 성장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 역시 주주들의 이익을 늘려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주주들과의 소통 강화가 주주권익 보호의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주요 경영사안을 경영진이 결정하기에 앞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주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경영진에게 전달해 사외이사와 함께 독단경영을 견제하는 셈이다.
이에 삼성물산과 현대차, SK 등은 위원회에 속한 사외이사 중 한명을 주주권익 보호담당 사외이사로 선정해 주주들과의 소통을 강화할 예정이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거버넌스위원회가 선임한 주주권익보호 담당위원은 주주와의 소통을 통해 시장 목소리를 이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경영진 역시 국내외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소통하는 기회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역시 주주권익 담당위원 활동을 통해 주주들과의 소통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주주권익 보호담당 사외이사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재 교수는 국내외 투자자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재 교수는 "주주권익과 관련, 어떤 주주는 배당성향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또 다른 투자자는 기업가치를 높이기(신규투자 등) 위해 현재 배당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했다"며 "주주들 간에도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주주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