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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 찍힌' 두산…기대가 너무 컸다

  • 2016.10.11(화) 17:52

시장 평가와 괴리→ 두산밥캣 상장 연기
→ 재무구조개선 차질→ '우려 시선' 커져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두산밥캣의 상장 연기 이후 두산그룹의 분위기는 침통하다. 두산밥캣의 상장 연기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이는 두산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년간 끊임없이 제기돼왔던 두산그룹 유동성 위기설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물론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두산그룹은 상장 재도전을 선언했다. 문제는 다시 도전에 나설 경우 지금보다 훨씬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상장 무산이 시장의 반발에 따른 것임을 감안하면 향후 진행될 재상장시에도 두산그룹은 지금보다 훨씬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가격과 물량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 기대가 너무 컸다


두산그룹이 두산밥캣 상장에 자신감과 기대를 가졌던 것은 두산밥캣의 실적 때문이다. 두산밥캣의 모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유동성 위기로 휘청일 때에도 두산밥캣의 실적은 견고했다. 따라서 두산그룹으로서는 두산밥캣의 상장을 통해 시장으로부터 많은 자금을 끌어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두산밥캣의 실적은 좋다. 지난 2010년 172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지만 바로 다음 해에 만회했다. 이후 부터는 매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2014년에는 영업이익이 3000억원을 돌파한데 이어 작년에는 4000억원에 육박했다. 올해 상반기 실적만해도 이미 작년 연간 실적의 절반을 넘어선 상태다.


모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의 실적과 비교하면 두산밥캣의 실적 고공행진은 더욱 돋보인다.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 영업이익에서 두산밥캣이 차지하는 비중은 22% 였다. 이후 매년 두산뱁캣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70.7%에 달하더니 결국 작년에는 추월했다.

두산밥캣의 선전에도 불구, 여타 BG에서의 부진과 구조조정 비용 등이 투입되면서 두산인프라코어는 작년 부진한 실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두산밥캣은 승승장구했다. 북미 건설 시장 회복 등에 따른 중소형 건설장비 시장 호황에 힘입은 바가 크다.


두산밥캣은 두산그룹에게 드라마틱한 반전을 안겨줬다. 두산그룹은 2009년 중공업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밥캣을 인수했다. 시장에서는 두산이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매입했다고 봤다. 시장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밥캣 인수대금에 눌린 두산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당시만해도 밥캣은 두산그룹에게 '미운 오리새끼'였다.

하지만 두산밥캣은 시간이 갈수록 반전을 거듭했다. 두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에도 두산밥캣은 계속 성장했다. 두산그룹은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그 마지막 퍼즐로 두산밥캣의 상장을 꼽았다.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된만큼 두산그룹이 두산밥캣 상장에 건 기대는 컸다.

◇ 시장의 반발

당초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의 상장을 자신했다. 실적이 견조한데다 전망도 좋았기에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두산그룹의 이런 생각은 두산밥캣 상장 과정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두산그룹은 두산밥캣 기업공개를 통해 총 4898만1125주를 공모할 계획이었다. 희망공모가는 4만1000~5만원이었다.

시장에서는 두산밥캣의 공모 물량과 공모 희망가에 대해 '무리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물량이 많은데다 가격도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 시장의 한 관계자는 "두산밥캣의 성장성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한다"며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의견이 많았다. 두산이 과욕을 부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라고 밝혔다.


두산그룹도 시장의 이런 분위기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산밥캣이라는 물건이 너무도 괜찮은 만큼 실제 수요조사에 나서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두산그룹의 이런 생각은 결과론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 됐다. 수요조사 결과 공모 예정 물량 보다 2배가량 많은 수요가 몰렸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기관투자자들이 써낸 가격은 희망가에 훨씬 못미쳤다.

수요가 2배 이상 몰렸다는 것은 두산그룹이 생각한 대로 두산밥캣의 성장성에 대해 시장이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가격은 다른 문제다. 시장에서는 너무 비싸다는 시그널을 두산그룹에게 준 셈이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건설기계 시장 전망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건설 기계 산업은 경기 민감 업종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물론 두산밥캣은 악조건 속에서도 잘 견뎠다. 실적도 좋았다. 그러나 주변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 이런 실적 호조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걸렸다. 기관투자자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가격을 디스카운트했다. 두산밥캣 상장을 통해 재무구조개선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려했던 두산그룹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양측의 이런 의견차는 결국 두산밥캣의 상장 연기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 더욱 나빠진 시선

두산밥캣 상장 연기로 다급해진 쪽은 두산그룹이다. 촘촘하게 짜놓은 재무구조개선 타임 테이블도 다시 짜야한다. 시장의 반발로 상장이 무산된 만큼 두산그룹으로서는 재상장시 시장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 업계에서는 두산그룹이 시장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갈길 바쁜 두산이 접어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반면 두산그룹은 시장에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두산그룹 고위 관계자는 "시장의 반응과 시그널을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확인한 것일 뿐 무릎을 꿇는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재상장 준비시 시장의 의견과 분위기를 면밀히 살피되 두산밥캣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두산밥캣 상장 연기로 시장이 두산그룹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다는 점이다. 두산그룹은 늘 유동성 폭탄을 늘 안고 있었다. 두산그룹은 이 때문에 그동안 여러차례 다양한 기법으로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시장은 의심의 시선을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 그나마 두산밥캣 상장이라는 하이라이트가 있었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측면이 컸다.


두산그룹 두산밥캣 상장에 사활을 걸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울러 두산그룹도 지긋지긋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작점은 두산밥캣 상장으로 봤다. 그러나 이뤄내지 못했다. 두산밥캣 상장 연기가 발표되자 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번 IPO(기업공개) 철회 및 연기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차입금에 대한 대응 재원 확보가 지연되는 점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요소"라며 "향후 IPO가 재추진 되더라도 자금유입 규모는 그룹이 계획했던 수준을 하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신용펑가도 "두산밥캣 상장 지연으로 구조조정 효과의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그룹 전반의 유동성 대응능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물량과 가격을 조정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면서 "최대한 시장과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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