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역시 구름에 있는 수증기 분자, 얼음 결정이 마찰되는 과정에서 발생해 정전기와 원리는 비슷하다. 다만 발생하는 에너지는 차원이 다르다.
번개의 원리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마찰 발전기'를 만드는 기발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백정민 울산과학기술원(UNIST)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생활 속 정전기 등을 모아 전기를 생산하는 '마찰 발전기'를 연구하고 있다.
이걸 어디에 쓸지는 나중의 문제다. 백 교수는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삼성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상용화 시기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배터리 없는 웨어러블 기기(입는 전자기기) 등에 활용될 전망이다. 흥미로운 건 백 교수가 연구개발에 실패해도 삼성은 '돈을 돌려달라'는 식으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세상에 없는 ▲기존방식을 뛰어넘는 ▲틀을 깨는 연구라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게 기본 구상이기 때문이다.
▲ 13일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 소재 삼성전자 기자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 성과가 발표되고 있다. 왼쪽부터 장재수 삼성미래기술육성센터장, 국양 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사진=삼성전자 |
5년 전인 2013년 삼성은 미래기술육성사업을 시작했다. 오는 2022년까지 총 1조5000억원을 기초과학, 소재기술, 정보통신 분야의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현재까지 약 5000억원이 지원됐고 남은 5년간 나머지 1조원도 투입할 계획이다.
이 같은 지원을 받아 남주한 카이스트대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와 박종화 서울대 음대 교수는 인공지능(AI)이 작곡한 악보를 음악 경연대회에 제출해 인간 작곡가의 작품과 경쟁 시키려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두 교수의 전문 분야인 음악, 정보통신기술 분야를 융합한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AI 작곡가를 인간 전문가 수준으로 육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장재수 삼성미래기술육성센터장은 "마찰 발전기 연구와 같은 사례들은 종래의 연구지원 시스템에서는 (연구비 지원 등의 문제로) 수행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우리는 '하이 리스크, 하이 임팩트(high risk, high impact)' 과제를 선정해 지원한다"고 말했다.
대신 연구자들이 번거롭게 느낄 수 있는 논문작성 등의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였다. 연차평가, 중간평가도 없앴다. 연구자는 매년 연구보고서 2장만 제출하면 된다.
연구과제 심사위원장인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실패확률이 있어도 도전적인 과제를 내도록 장려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미래기술육성사업은 연구과제가 학문의 영역을 넘어 창업이란 실물 경제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도 수행한다. 실제 창업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항암 표적치료' 연구를 진행하는 윤태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2016년 벤처기업 '프로티나'를 설립하고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사업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 센터장은 "엔젤투자자, 벤처캐피탈(VC)에서 제일 투자하고 싶어하는 대상은 역량이 뛰어난 연구자와 경영자다. 특히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여러 투자자들이 삼성에서 과제를 수행한 교수들과의 투자 관련 미팅을 요청하는 등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지원된 연구 과제는 428건. 오는 2022년까지는 삼성이 4대 성장산업으로 선정한 ▲AI ▲5세대 이동통신(5G) ▲바이오 ▲전장부품과 연계된 연구과제 등에도 지원이 확대될 전망이다.
국양 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은 "지난 5년간 연구풍토를 바꾸고 새로운 연구지원 모델을 정착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열거나 난제를 해결하려는 큰 목표에 도전하는 과제를 선정하여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