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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역습'…복잡해진 삼성전자의 속내

  • 2021.03.26(금) 08:50

인텔, 파운드리 사업 본격화 예고
삼성전자·TSMC 경쟁과 협력 이어갈듯

팻 겔싱어 인텔 CEO. [사진=인텔]

미국의 종합 반도체 업체(IDM) 인텔이 돌연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에 본격 뛰어든다고 선언했다. 세계 1·2위 파운드리 사업자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이제 막 사업을 전개하는 단계인 인텔이 당장 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인텔은 일부 파운드리의 경우 TSMC와 같은 외부 사업자와 협력할 계획도 함께 공개해 미묘한 형태의 3강 구도가 형성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속내가 복잡해진 이유다.

◇ 삼성전자·TSMC 위협? 손도 내민 인텔

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인텔은 반도체 생산 관련 계획인 'IDM 2.0'을 발표하면서 약 200억달러(22조6700억원)를 투자해 자사 메인 공장이 있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두 개의 팹(공장)을 추가 건설하고 파운드리 사업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인텔의 반도체 생산 관련 계획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자체 생산과 아웃소싱(외주), 파운드리다. 이 가운데 파운드리 대표주자 TSMC나 파운드리 키우기에 골몰하는 삼성전자가 주목하는 대목은 긍정과 부정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아웃소싱과 파운드리 계획이다.

이 중 아웃소싱 계획의 경우 인텔이 지난 1월 작년 실적을 발표하면서 파운드리 물량을 확대할 것이라고 예고한 까닭에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삼성전자도 당시 이에 대한 기대감을 자사 실적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나타낸 바 있다. 그런데 인텔은 이번에 핵심 사업 관련 주문을 맡길 외부 회사 이름을 처음으로 밝혔다. 삼성이 아니라 대만 TSMC였다. 

인텔은 TSMC와 협력해 CPU(중앙처리장치) 관련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는 인텔의 2023년 CPU 로드맵의 일환이다. TSMC가 인텔의 물량을 받아 생산에 나서는 시점은 2023년부터라는 얘기다. 인텔은 7나노 공정 기반으로 설계된 반도체에서 CPU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다만 인텔은 TSMC 외에도 삼성전자와 같은 다른 파운드리 업체 역시 이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허지수 대신증권 연구원은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2023년 출시될 CPU 제품 라인업 일부는 TSMC를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며 "삼성, UMC 등과 파운드리 협력의 규모와 범위를 점점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짚었다.

인텔 관계자도 "그동안도 외부 파운드리를 사용해왔으나 협력사 이름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주로 커뮤니케이션(통신), 커넥티비티(연결), GPU(그래픽 처리장치), 칩셋 분야를 파운드리에 맡겼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와 인텔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삼성전자는 인텔이 반도체 생산 계획을 밝히고 하루 지난 25일에 인텔과의 협력 관계를 강조하는 보도자료를 전세계에 배포했다.

고용량 DDR5 메모리를 컴퓨팅 시장에 내놓겠다고 하면서 인텔과 긴밀한 협력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 인텔의 캐롤린 듀란 부사장(VP)도 "인텔은 인텔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인 사파이어 래피즈와 호환되는 DDR5 메모리를 선보이기 위해 삼성전자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인텔이 CPU 플랫폼을 만들 때 삼성의 D램을 끼워야 하고, 삼성이 노트북 만들 때 인텔의 플랫폼을 사서 넣고 우리의 제품을 덧붙이기도 한다"며 "하지만 파운드리 부문은 경쟁도 하게 되는 등 반도체 업계는 경쟁과 협력이 혼재됐다"고 설명했다.

◇ 파운드리 경쟁 구도는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계획은 삼성이나 TSMC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인텔은 그동안 외부에 크게 알리진 않으면서 파운드리 사업을 해온 것은 사실이나, 이번에 간판을 내걸고 제대로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인텔은 미국 정부 사업을 수주하거나 일부 민간 업체의 일을 하기도 했으나, 규모가 미미했다.

인텔 관계자는 "일부 보도에 인텔이 파운드리를 사업을 하다가 접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한번도 접은 적이 없다"며 "외부에 노출할 정도가 아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부(Intel Foundry Service)를 새롭게 만들고, 해당 부문장은 사장급으로 선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폭발하는 파운드리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2025년까지 1000억달러(약 113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퀄컴 등 협력사이자 경쟁사들은 인텔의 계획에 긍정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겔싱어 CEO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설립에 지지를 보내줬다"며 "연내 미국과 유럽 등 기타 지역에도 추가로 공장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텔의 사업 계획이 나옴에 따라 물량을 받기로 한 TSMC는 물론 삼성전자 역시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협력과 함께 경쟁에도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전자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상황부터 재정리해야 한다. 미 오스틴 공장이 한파 여파로 여전히 정상 가동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공장 증설 계획도 현재까지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인텔의 저력을 주목하고 있다. 다만 당장 삼성전자나 TSMC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허지수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이 있어도 많은 물량을 TSMC나 삼성에 맡기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인텔이 반복적인 공정 지연에 직면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오히려 인텔의 가세로 반도체 생산 장비를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반영하듯 극자외선(EUV) 장비를 만드는 네덜란드 ASML의 주가는 지난 24일 나스닥 시장에서 3.5% 올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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