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입니다. 에너지 분야도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매년 주요 국가의 에너지 분야 장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매년 열리는 G20 정상회의때 함께 열리는 장관급 회의를 통해서입니다. 주제는 다양합니다. 경제와 금융, 농업, 식량, 노동, 교육, 문화, 그리고 환경 등 참여국의 협조가 필요한 모든 분야를 망라합니다.
2008년 출범한 G20 정상회의는 2019년부터 에너지분야의 장관급 회의를 함께 열었습니다. 올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서도 에너지분야의 장관들이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고민을 나눌 예정입니다. 지난 2017년부터 G20 회의에 참석한 한국도 에너지 장관급 회의에 꾸준히 참석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회의는 장관급 회의(Ministerial Conference)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G20 에너지분야 장관급 회의에 장관급 인사를 보낸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부 조직에 에너지 분야를 따로 다루는 장관급 인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정부조직에서 에너지 분야의 최고 조직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속한 에너지자원실입니다. 매년 열린 G20 에너지분야 장관급 회의에 우리나라는 에너지자원실장이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자원실장은 직제상 장·차관 급(정무직)이 아니라 1급 공무원에 그칩니다.
한국의 '격'이 이대로 괜찮을까요?
# 정부조직 중 에너지 분야, 점점 작아져
그동안 우리 정부에는 에너지 분야를 맡는 장·차관급 인사가 없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난 2005년 기준 당시 '산업자원부'에는 기획조정업무와 산업정책업무를 총괄하는 1차관과 에너지 관련 업무를 맡는 2차관이 있었습니다. 2차관은 자원정책과 관련 산업 등을 총괄하며 에너지 관련 정책을 집행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조직개편부터 에너지 분야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조금씩 가벼워진 겁니다.
이 시기 '산업자원부'는 '지식경제부'로 이름을 바꿉니다. 2차관 산하에는 무역투자실이 설치되고 에너지 관련 부서는 '에너지자원실'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합니다.
2013년까지는 이 구조가 큰 틀에서 유지되다가 지식경제부가 현재의 산업통상자원부로 이름을 바꾸는 2013년에는 2차관 산하로 통상관련 업무가 대폭 늘어납니다. 기존 외교통상부 통상부문을 산업통상부로 이관한 결과입니다.
이후 2017년에는 2차관을 통상교섭본부장(장관 대우)으로 격상합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자원실은 차관(기존 1차관) 밑으로 배치합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통상업무는 당연히 중요합니다. 국제적인 교류가 많아질수록 더 그렇습니다. 통상업무가 2차관 산하의 업무에서 장관대우의 본부장급으로 격상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조직의 외형적 한계에 부딪혀 에너지 관련 업무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작아졌습니다.
# 에너지자원실, 외형은 작아도 하는 일은 커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G20 회의를 보더라도 각국은 에너지 분야를 장관급 업무로 다루며 정책을 집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의 조직 외형은 작을지라도 역할은 작지 않습니다.
에너지자원실은 에너지 관련 분야 공기업 30여 곳의 예산을 다루는 부서입니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다루는 예산 규모는 11조원 수준입니다. 이중 5조원을 에너지자원실에 배치했습니다. 산업부 내 7개 실 중 단 1개 실이 예산의 절반 가까이 담당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정부도 에너지 관련 업무의 격상이 다시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정부가 에너지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차관직을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발의했습니다. 정부와 국회 관계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편안에 따르면 기존 에너지자원실을 신설되는 제2차관 소관으로 이관하며 에너지전환실과 에너지산업실로 나눕니다. 그 아래 에너지전환정책관·전력혁신정책관·재생에너지정책관·자원산업정책관·수소경제정책관·원전산업정책관을 배치합니다.
각 정책관 밑에는 수소경제기반과, 태양광에너지과 등 총 27개 과를 둘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증원규모는 105명입니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거친 뒤 실제 조직규모가 확정됩니다.
# 대·내외적으로 차관급 격상 필요성 대두
국회에서 에너지 분야 조직 확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국회의원은 조직의 비대화를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도 법안을 검토한 뒤 "조직이 비대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우선 대내적으로도 격을 맞출 필요성이 큽니다. 특히 탄소중립과 관련된 이슈는 관계부처와 또 지역 간에 협력할 일이 많습니다. 에너지자원실장은 각종 규제와 지원 등을 통해 각기 다른 입장을 조율합니다. 하지만 실장급 인사가 다른 부처의 장·차관이나 각 지자체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에너지 분야의 장관급 논의가 많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외교는 격이 맞아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장관이 나오는 자리에 실장을 보내는 것은 '궁여지책'(窮餘之策)입니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혁신정책관은 법안이 논의되는 국회에 출석해 "그동안 에너지실장이 외국의 장관이나 차관과 면담을 해야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며 "(그러다보니)우리가 좀 더 설득력 있게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조금 부족했던 점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 두 번의 G20 장관급 회의에 실장급 인사를 보낸 정부입니다. 올해 10월에 열리는 회의에는 누가 참석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