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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극과 극의 외침 속…이재용 돌아왔다

  • 2021.08.13(금) 14:1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출소 현장
"걱정·비난·우려·기대 잘 듣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가석방됐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의왕=김동훈·백유진 기자] "이재용 화이팅! 백신 구해오세요!", "재벌특혜! 이재용을 구속하라!"

13일 오전 10시4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정문에서 홀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포착되자 현장은 '극과 극'의 목소리가 더욱 경합을 거듭했다.

이 부회장은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 노타이 차림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시선은 20도가량 아래를 향해 있었다. 무테안경에 흰색 마스크를 쓴 그는 야윈 모습이었다. 맨눈으로도 정장이 커 보일 정도였다. 피부는 푸석해 보였고 옆머리에 자란 새치는 10미터 밖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정문을 나와 잠시 멈칫했던 그는 '희망의 시작, 서울구치소입니다'라고 쓰인 구치소 정문 오른편에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수많은 카메라가 진을 치고 있는 정면으로 주춤주춤 위치를 바꿨다.

확성기를 타고 각종 시민단체의 외침이 터지고 있었던 데다, 경찰의 호위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탓에 맨 귀로는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국...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의 첫마디였다. 처음 입을 뗐다가 목이 멘 듯 다시 말을 이었고, 짧은 문장 속에서도 목소리는 떨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허리를 90도 이상 굽혔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 잘 듣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현장을 감싼 극과 극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씨에 대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형이 확정됐던 그를 엄단해야 한다는 비난, 반대로 그가 이제라도 리더십을 발휘해 삼성전자 경영을 정상화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기를 바라는 기대다.

"재판을 계속 받아야 하고, 취업제한 문제도 있는데 심경이 어떤지"와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진행 중인 재판과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특경가법)에 따라 5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것에 대한 얘기다. 

하지만 그는 자리를 마치고 싶다는 듯, 짧게 고개를 숙인 뒤 입을 열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대기한 차량까지 10여 걸음 걷는 중에도 입은 굳게 닫은 채였다. 경제 활성화 대책에 대한 고민, 반도체 사업과 코로나19 백신의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특혜라고는 생각 안 하십니까"라는 마지막 질문을 뒤로하고 이 부회장은 검은색 제네시스 EQ900 승용차에 올라탔다. 차량은 경찰과 사복 경호원, 삼성 임직원들의 보호 속에 이동을 시작했다. 구치소 정문 앞을 가득 채운 기자, 유튜버, 시민, 시민단체, 노동계, 정치권 관계자들이 그의 뒤를 쫓았다.

시민단체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돼 나오는 도로 위에서 시위하고 있다./사진=김동훈 기자

"경제발전을 위해서 경제사범을 풀어준다고요?"라는 플래카드를 펼친 이들은 도로 위에서 차량의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이사모'라는 단체는 "고생하셨습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드십시오"라는 현수막을 들며 차량을 맞았다. 

이 부회장의 차량은 그러나 구치소 앞 삼거리를 향해 2차선 도로를 유유히 내려갔다. 차량은 삼거리에서 서울 과천 방향의 인덕원 사거리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9일 법무부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상황"을 이유로 가석방을 결정하며 수감 207일만인 이날 풀려났다. 그는 올해 1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아 재수감됐다.

그는 앞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지난 2017년 2월 구속돼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수감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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