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의 턱밑까지 추격 중이다. 일부 주유소에선 휘발유보다 경유 가격을 더 비싸게 받는 '역전 현상'도 발생했다. 업계에선 휘발유 대비 수요가 더 많은 경유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급 불균형 현상이 더 심했을 것으로 분석한다.
유류세 인하 확대에도 경유 가격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물류업계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결국 물가 상승에 대한 압력이 커지면서 일반 소비자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경유값, 휘발유 턱밑까지
정부는 지난 1일 유류세 인하폭을 기존 20%에서 30%로 확대했다. 기존 유류세 인하에도 휘발유, 경유 등 가격이 잡히지 않자 그 폭을 더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에도 경유가격은 그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이 기간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지만 경유가격은 오히려 상승했다.
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인 오피넷(Opinet)에 따르면 이날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ℓ)당 1937원을 기록했다. 유류세 인하 확대 전날인 지난달 30일과 비교했을 땐 38원 하락했다. 반면 이날 경유 가격은 리터당 1927원으로 유류세 확대 인하 전보다 가격이 2원 상승했다.
유류세 인하 확대에도 경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휘발유와 가격 격차는 10원으로 좁혀졌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휘발유는 경유보다 리터당 180원가량 비쌌다.
최근엔 휘발유보다 경유를 더 비싸게 파는 주유소도 생겨났다.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역전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싼 주유소는 전국 3548곳에 달한다. 전국 주유소 3곳 중 1곳에서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왜 역전현상 발생했나
경유 가격 상승세는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정유사 출하 가격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석유 현물 시장에서 경유 가격(6일)은 배럴당 160.7달러로 연초 대비 77.9%가 상승했다. 이 기간 휘발유는 138.2달러로 연초 대비 52.4% 올랐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유 수요는 여전히 견조한데 러시아산 수입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가격이 치솟았단 분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러시아는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다"면서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 주요 국가들이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제한하거나 금지해 수급 불균형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 러시아산 경유를 수입하는 비중이 약 60% 정도"라며 "결국 경유 수급 불안정 상황이 발생하면서 가격이 급등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휘발유가 경유와 비교했을 때 사용처가 더 다양하다"며 "그만큼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타격이 경유가 더 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번째는 휘발유의 유류세 인하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현재 휘발유, 경유 모두 30% 유류세 인하를 하고 있다. 하지만 휘발유가 가격이 더 높아 가격 할인 효과를 더 크게 보고 있단 얘기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휘발유가 경유보다 더 높은 가격에 형성돼 유류세 인하폭은 휘발유가 더 크다"며 "가령 휘발유 1000원, 경유가 700원인 상황에서 유류세 30%를 똑같이 적용하면 휘발유는 300원, 경유는 210원이 할인되는 효과를 본다"고 밝혔다. 유류세 인하에 따른 휘발유 가격 할인 효과는 더 큰 셈이다.
"언제 진정될지 아무도 모른다"
경유 가격이 잡히지 않자 산업계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경유는 제조업, 농업, 금속업 등 산업 전반에 이용된다. 특히 유조선, 기차, 트럭 등 경유를 주로 사용하는 물류업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박귀란 화물연대 정책국장은 "최근 경유 가격이 오르면서 25톤(t) 화물차 기준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100만원 가량 늘었다"며 "보통 한달 매출이 350만원 정도인데 유류비 등 각종 비용을 빼면서 남는 돈이 150만원으로 줄었다. 유류비 인상분에 대한 운임료 상승을 기업들에게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 현상이 계속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하게 된 배경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며 "전쟁이 멈춰야 러시아산 석유가 풀리면서 수급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는데 언제 (전쟁이) 종식될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유국들의 대폭적인 증산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실상 가격을 잡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전쟁이 장기화 되면 될수록 경유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셈"이라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경유 가격 인상이 물가 상승을 더욱 자극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결국 물가 상승의 부메랑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운임료 등을 포함해 생산 단가가 오르고 결국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이라며 "특히 경유는 산업용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그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현재로서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확대할 수 있을 만큼 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란 얘기다"면서 "안타깝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 되면서 유가가 안정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