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은 전기차 화재로 시장 내 '전기차 포비아(공포증)'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탑재된 배터리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한번 불붙은 안전성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캐즘에 포비아까지 덮친 탓이다. 일각선 포비아 확산을 제때 막지 못할 경우, ‘전동화 시대’로의 전환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단계적·체계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생산 단계서부터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화재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사전에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책 강화의 필요성도 강조된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생산업체를 단순 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배터리 인증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배터리에 火나는 이유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주 요인으로는 '분리막 손상'이 꼽힌다. 배터리 셀의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분리막에 문제가 생기면 전극 간 합선이 발생, 열과 스파크가 일면서 화재로 이어진다. 분리막이 손상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과충전 및 제품 불량이 주효하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열폭주 현상'은 더욱 치명적이다. 배터리의 연쇄적 폭발을 뜻하는 열폭주는 전기차 화재의 피해를 키우는 요인이다. 수백 개의 셀이 직렬로 연결된 전기차 배터리 특성상 하나의 셀에 불이 붙으면 다른 셀까지 폭발, 열폭주가 동반된다. 이때 온도는 1000도까지 치솟는다.
불을 끄기도 어렵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내부에 습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완전 실링돼 있다. 쉽게 설명해 방수처리가 돼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화재가 났을 때 소방대원이 아무리 물을 뿌려도 배터리 내부까지 스며들지 못한다.
한 번 불이 나면 불길을 키우는 산소와 가연성 가스까지 배출된다. 전기차에 불이 나면 결국 전소가 돼야 끝이 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기술로는 배터리 화재를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근본적으로 리튬이온배터리에 쓰이는 물질 자체가 다루기 까다롭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물질을 안정화하는 것이 굉장히 힘든 작업"이라며 "온도가 안 맞거나 제조 과정서 불량이 일어났거나 혹은 이동 중 충격이 가해졌거나 등의 경우로 실제 배터리 생산 공장서도 폭발이 일어나곤 한다"고 말했다.
전기차 화재 건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전기차 화재 사고를 살펴보면, 2019년 7건에서 지난해 72건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화재에 따른 재산피해 규모도 2억7002만원에서 14억6398만원으로 5배 이상 대폭 늘었다.
전기차 화재 논란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안전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배상 책임에 대한 소재 등 현실적 고민이 발목을 잡는다.
소비 전문 조사업체 컨슈머인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 소비자 10명 중 6명은 차량 화재 발생 후 배상 책임 소재를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임 소재를 놓고 완성차 기업·배터리 제조사·아파트 건설사 및 관리자·보험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 '소비자 역시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면서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이란 분석이다.
"EV 생산 단계서부터 과충전 막아야"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할 경우를 가장 경계하고 있다. 전동화 시대로의 전환이 늦어질수록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다. 때문에 시장의 불안감을 적합한 방법으로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포비아가 퍼지면 그 파장은 캐즘 이상일 것"이라며 "캐즘과 미국 대선은 글로벌 이슈라 우리가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지만, 포비아 확산을 막는 것은 가능하고 무엇보다 정부 및 정책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방법은 크게 '예방 방안'과 '피해 최소화 방안' 등으로 나뉜다.
우선 화재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충전율을 줄이는 방법이 언급된다. 과충전을 지양하는 것만으로도 화재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란 설명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전기차 차주가 차량 세팅을 통해 평상시 충전율을 90% 미만으로 설정하거나 △완성차 기업이 90% 미만으로 충전되게끔 초기 세팅해 생산·판매하는 방안 등이다.
김 교수는 "급속 충전기는 80% 수준에서 충전이 멈춰지지만, 전국 아파트에 있는 약 30만개 완속 충전기엔 충전율 제어 기능이 없다"며 "때문에 전기차 생산 단계서부터 과충전이 되지 않게 세팅한 후 생산하는 방안도 현재 정부 및 지자체 등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인증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기차 배터리를 국가가 인증하는 '배터리 인증제'가 오는 2025년 2월부터 시행되지만 1년간은 회사가 자체 검증할 수 있는 특례가 적용, 사실상 2026년부터 실효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국가가 배터리를 인증하는 제도가 시급하다"며 "인증제가 본격 시행되기 전까지 2년 정도 공백이 있을 텐데 배터리 성능을 점검할 별도 대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 교수는 "자동차 정기검사 시 검사 항목에 '배터리 정보'도 넣어야 한다"며 "배터리 셀당 전압이나 온도, 수명 등 배터리 관련 상세한 정보를 차주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를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제언이 나온다. 주차장 내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늘리고, 가령 전기차 3~5대씩을 캡슐처럼 에워싸는 주차시설을 통해 화재 확산을 막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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