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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대미(對美) 외교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주 주요 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민간 경제사절단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대응책 마련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 및 의회 주요 의원들과 만나 관세와 통상정책을 논의, 양국 간 협력 발판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보편관세 현실화 전 민관 외교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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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현실화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비상이 걸렸다. 당장 철강과 알루미늄이 관세 25% 사정권에 들었고, 오는 4월 2일부터는 자동차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알려진다.
철강과 알루미늄처럼 일률적 관세율을 매길 것인지 혹은 나라마다 차등을 둘 것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막대한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 수출 1위 품목은 자동차로, 수출 규모는 366억달러(52조7000억원) 가량이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이 중국에 추가 관세 10%, 멕시코와 캐나다에 각각 25%, 모든 국가에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총수출액은 132억4000만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 관세조치 장기화 및 확대에 따라 추가적으로 세계 경제·교역이 둔화될 경우 한국 총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악화할 것이란 설명이다. 관세 부과 대상국이 보복조치에 나설 경우 대외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양지원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보편관세 부과가 현실화되기 전 대미 아웃리치(외교 접촉) 활동을 확대하는 등 민관 합동의 외교적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중간재 수출 등을 통해 미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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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이끄는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이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현지시각) 양일간 미국 워싱턴DC를 공식 방문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민간 경제사절단의 첫 공식 방문 일정이다.
경제사절단에는 대미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철강·조선·에너지·플랫폼 등 한미 경제협력의 핵심 산업 대표들이 대거 참여한다.
최 회장을 비롯 조현상 HS효성 부회장·김원경 삼성전자 사장·유정준 SK온 부회장·이형희 SK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성김 현대자동차 사장·윤창렬 LG글로벌전략개발원 원장·이계인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임성복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 실장·주영준 한화퓨처프루프 사장·이나리 카카오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위원장·김민규 신세계 부사장 등 26명이다.
대한상의는 "한국은 트럼프 1기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약속을 적극 실천한 대미 투자의 모범 국가이자 우등기업임을 적극 강조할 예정"이라며 "트럼프 2기에도 한국기업은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임을 확인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협상'은 신이 약자에게 준 선물"
실제 한국은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미국의 최대 그린필드 투자국으로, 2017년 이후 자동차·반도체·배터리 분야 등에 1600억달러(약 231조원)를 투자했다.
이에 경제사절단은 관세 관련 백악관 고위 당국자와 의회 주요 의원들과 만나 다양한 통상정책을 논의하고, 양국 간 전략적 협력 의제와 대미 투자 협력을 위한 액션플랜을 소개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조선 분야 협력 △완성차 및 부품 제조 시설 투자 △미국 차세대 원전 개발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 등에 대해 언급한다는 설명이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국의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이번 아웃리치 활동은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중요한 계기"라며 "미국 정부·의회와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통상 당국자의 첫 미국 방문도 이뤄진다.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17일부터 오는 21일까지 워싱턴을 방문,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 등 고위 당국자를 만날 예정이다.
최근 미국 정부가 발표한 관세부과 방침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 한국 측 입장을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안덕근 산업부 장관의 방미 일정을 조율하는 등 장관급 회담 사전 작업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협상 전문가들은 트럼프식 '하이볼*' 전략에 대비, 무조건적 수용이 미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선 보다 과감한 기싸움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과도하고 극단적인 조건이나 제안을 내거는 협상전략.
박무승 한국협상학회 부회장(BNE협상컨설팅 대표)는 "협상은 신이 약자에게 준 선물"이라며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Tit For Tat' 즉 맞받아치는 것인데, 우리는 기싸움을 하지 못해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할 수용·타협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중국과 캐나다가 트럼프 관세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을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며 "결국엔 미국 측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라도 수용은 협상 마지막 단계에 논의할 일이고, 이를 일찍 받아들일수록 국가적 손실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 측 논리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 부당함을 강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부회장은 "트럼프 관세부과 정책이 최종적으로 미국 국민·기업에게 피해를 끼치고, 부당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한 책임자가 정치적 상처를 입을 것이란 걸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