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세판이 지점 한 면을 가득 채우고, 고객은 객장에서 시세판을 보면서 영업점 직원에게 주식을 사거나 팔아달라고 주문하던 때가 있었다. 증권사 지점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랬다. 하지만 이제 이런 풍경은 더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대신증권이 마지막 남은 시세판을 없앤 건 증권사 지점의 변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풀이된다.
변신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직접적으론 금융서비스의 온라인화에 따른 구조조정 성격이 강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
변신의 방향은 선택과 집중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점을 통폐합해 대형화하거나 증권은 물론 은행과 보험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거나 아니면 이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그 이유와 방향이 무엇이든, 증권 지점의 변신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 증권사 지점의 변신은 무죄
한 증권사의 여의도 지점에 들어섰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이 일반화되면서 수년간 굳이 지점을 찾을 필요가 없었던 터라 모든 게 새로웠다. 넓은 객장과 3층에 걸쳐 배치된 고객 상담 창구 등 일단 규모가 압도적이다.
자산관리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하자 별도로 마련된 상담실로 안내했다. 자산이 얼마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등의 기본적인 조사도 없이 VIP룸으로 이동했다. 이어 직원이 들어와 상담을 시작했다.기존 지점의 북적거림과 기다림은 없었다. 편안한 휴식처에 온 기분이었다. 고액 자산가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자산 규모와 관계없이 서비스하는 점포라고 소개했다. 당장 상품 판매보다는 고객이 원하는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해 장기적인 투자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증권사 지점들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금융그룹에 속한 증권사는 은행과 보험 등 이업종 서비스 위주의 복합점포를, 일반 대형 증권사는 금융투자 서비스를 더 다양화한 초대형점포를, 그리고 중소형 증권사는 이색적인 특화점포를 통해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 NH금융PLUS 삼성동금융센터 로비. (사진=NH투자증권) |
◇ 선택과 집중…한곳으로 모아라
복합점포에선 은행과 증권 등 다른 업종의 금융업무를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증권은 물론 은행과 보험 등 금융 계열사를 거느린 금융그룹들이 복합점포에 공을 들이고 있다.
KB증권이 가장 많은 30곳의 복합점포를 운영 중이고, 신한금융투자가 27곳, NH투자증권이 11곳, IBK투자증권이 4곳 등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복합점포에선 증권사와 은행뿐 아니라 보험사까지 연계해 다양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금융 계열사가 없는 증권사들은 초대형점포 형태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더욱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제공한다. 한 점포에만 전문인력 100여 명이 근무하면서 퇴직연금과 기업금융 연계, 개인금융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형태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2월 여의도에 투자자산관리센터(IWC)2를 공식 오픈하는 등 현재 총 4개의 초대형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오는 4월까지 판교와 삼성동, 대전, 대구, 광주, 부산지역에서도 순차적으로 오픈할 예정이다. 삼성증권 역시 강북금융센터와 강남금융센터, 삼성타운금융센터 등 3곳을 운영 중이다.
▲ 한화투자증권 압구정 갤러리아점. (사진=한화투자증권) |
◇ 고객 눈높이 맞춘 이색점포도
높아진 고객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이색점포도 눈에 띈다. 한화투자증권 압구정 갤러리아점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화점포의 원조 격이다. 최근엔 다른 증권 지점들도 단순 점포에서 벗어나 갤러리나 카페와 같은 편안한 분위기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갤러리와 음악감상실, 식음료와 휴식 공간 등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갤러리아 백화점과 제휴해 명품을 전시하는 등 지점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NH투자증권도 복합점포 내 아트갤러리를 마련해 고액 자산가들이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투자도 할 수 있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아트갤러리에 전시된 미술품의 가치만 6억원 안팎에 이른다. 대신증권 역시 부산 동래지점 영업점 공간을 활용해 미니 아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미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해 고객에게는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주고, 지역 미술인들에겐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 단순한 서비스와는 달리 이제는 전 금융상품을 아우르는 자산관리는 물론 다양한 문화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관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증권지점 역시 이런 흐름에 따라 변신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