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헤지펀드'는 10년 전 기업의 창업‧성장‧회수 생태계에 자금을 공급하는 매개체로 출발했다. 이후 전문운용사들이 출현하면서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가파른 성장의 대가는 잇단 사건사고라는 혹독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때 K팝 열풍에 비견됐던 사모펀드의 존재감은 어느새 사기판, 복마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모펀드의 태생과 총체적 부실 우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자들의 책임론까지 복잡다단한 사모펀드의 세계를 조명해본다. [편집자]
◇ 라임운용, 위법 종합 선물 세트
라임자산운용의 환매중단 사태는 폰지사기, 수익률 조작, 불완전 판매 등 죄질이 불순한 금융 범죄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위해 규제의 고삐를 풀어준 틈을 악용한 사례로, 금융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신뢰도 추락과 함께 대규모 피해자를 양산했다.
라임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처음 문제가 터진 때는 지난 201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라임운용은 3개 모펀드와 그 아래 157개 자펀드의 환매중단을 선언했다.
3개 모펀드 중 하나인 '플루토 FI D-1'은 국내 사모사채에 투자하는 펀드다. 테티스 2호는 국내 메자닌 채권(채권과 주식의 중간 위험 단계에 있는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에 투자하는 것)을, 플루토 TF 1호 해외 무역금융 관련 자산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올해 1월에는 무역금융 펀드인 크레딧 인슈어드 1호(모펀드) 펀드의 환매도 추가적으로 중단했다. 해당 펀드는 16개의 자펀드를 두고 있는 상품이다. 이로써 피해 펀드는 4개의 모펀드와 173개의 자펀드로 늘어났고 총 피해액도 전체 설정액의 42%에 달하는 1조6679억원으로 증가했다.
라임운용의 급성장은 규제 완화 시기가 맞아 떨어진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 이후 라임운용의 성장세는 가히 기록적이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의 지난해 펀드 운용자산(AUM, 설정원본+계약 금액)은 2016년 연말 2991억원 대비 20배 가까이 폭증한 4조1169억원에 달했다.
그만큼 투자금이 물밀 듯 들어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쏟아진 자금만큼 고객과 약속한 고수익 투자처를 발굴하지 못하면서 비상장 채권과 무역금융 등 상대적으로 손실 위험이 높은 자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라임운용은 법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부족한 투자처는 기형적인 펀드 운용 구조로 이어졌다. 투자대상이 부족하다 보니 모펀드를 설정하고 그 밑에 자펀드를 두는 복잡한 복층·순환 구조의 형태를 띠게 됐다.
복층구조란 말단 펀드부터 최상단에 있는 펀드까지 층층이 투자하는 구조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라임운용이 굴리는 무역금융펀드가 A부터 D까지 있다고 가정하면, A펀드로 모집한 자금을 B펀드에 투자하고, B펀드에 모인 자금으로 C펀드에, 그리고 D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순환구조는 이런 복층구조에서 상위에 위치한 C, D펀드가 밑에 있는 A와 B펀드에 다시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대기업 계열사 간 순환출자와 비슷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각 펀드 상품들이 연결된 탓에 한 펀드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전이도 빨랐다. 결과적으로 연쇄 부실로 이어진 원인이 됐다.
각 투자 상품 간 만기가 맞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됐다. 대부분의 모펀드들은 만기가 3~5년으로 긴 편이지만 자펀드들은 6~12개월(폐쇄형)로 짧았다. 자펀드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청했음에도 투자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모펀드의 만기가 한참 남았기 때문에 환매를 해줄 수 없었다.
◇ 대놓고 사기친 옵티머스운용
라임운용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굵직한 환매중단 사태가 또 터졌다. 이름도 생소한 옵티머스자산운용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환매중단 펀드는 17개로 피해액만 1500억원을 넘어선다. 현재 환매가 중단된 펀드에 가입한 개인 투자자는 298명, 법인 투자자는 44곳에 달한다.
2017년 첫 출시된 이 상품의 전체 판매액은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1조5000억원가량이 환매됐고, 남은 5000억원 중 1500억원 남짓이 묶인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상 잔액도 환매가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펀드는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공기관이 발행한 우량한 매출채권 등을 만기 전 할인 가격으로 매입해 수익을 내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만기를 1년 미만으로 짧게 설정하고 수익률을 연 3% 수준으로 약속해 상품 출시 초기부터 입소문을 타고 인기몰이를 했다.
그래서 피해 규모는 라임 사태와 비교가 안되지만 죄질은 더 불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옵티머스운용의 설명과는 달리 해당 펀드는 대부업체나 부실 기업의 사모사채를 마치 우량 공기업의 채권인 것 마냥 둔갑해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규제의 허점을 활용해 사기를 친 정황과 함께 문서 조작 의혹까지 제기됐다. 펀드를 만든 운용사는 판매사를 통해 판매한 투자금을 보관해주면서 운용사의 거래 지시에 따라 투자를 대행해주는 수탁사와 신탁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를 '집합투자규약'이라고 부르는데 통상 자금을 관리하고 집행해야 하는 특성상 시중 은행이 수탁사 역할을 한다.
수탁사와 함께 펀드의 가치를 공시하는 주체인 '사무관리회사'가 있다. 사무관리사는 운용사가 특정 펀드의 자산명세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회계장부시스템을 제공하는데 보통 운용사가 주는 정보에 의지해 자산의 정보를 기록한다.
이번 옵티머스운용 사태에서는 하나은행과 예탁결제원이 각각 수탁사와 사무관리회사의 역할을 맡았다. 즉, 표면적으로 이런 판매 구조를 감안했을 때 운용사는 수탁사, 사무관리사의 '갑'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수탁사는 투자 계획과 다른 운용사의 거래 지시를 별다른 의심 없이 이행했고, 사무관리사는 이렇게 조작된 거래 정보를 기록한 셈이 된다.
이를 바꿔 말하면 이는 운용사가 마음만 먹으면 투자자는 물론, 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 투자 자산을 보관·집행하는 수탁사, 펀드의 자산을 관리하는 사무관리회사까지 속일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 라임 무역펀드 100% 배상 결정⋯역대 분조위 결과는?
금감원은 지난 1일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열고 지난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투자자 원금 전액 반환을 결정했다.
운용 구조 변경(복층구조)을 통한 수익률 조작, 손실이 예상되는 데도 판매를 지속한 대목을 위법행위로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금감원 창립 이래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한 분쟁에 대해 전액 보상 판결이 나온 것은 사상 최초다.
무역금융펀드에 대한 100% 원금 전액 반환 결정이 나왔지만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분조위 결정을 기다리는 분쟁 건이 남아 있는데 최종안이 나오려면 최소 5년가량 기다려야 하는 등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금감원이 시기상 기준으로 삼은 2018년 11월 이전에 판매된 상품들은 이번 배상안에서 제외돼 추후 추가 분조위 개최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환매를 중단한 나머지 3개 모펀드는 손실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다. 펀드의 투자 자산 회수가 마무리되는 2025년이나 돼야 손실액 규모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고, 배상액은 이 이후에나 나올 전망이다.
게다가 분조위 결정이 나오더라도 권고사항일 뿐이지 강제성이 없어 투자자와 판매사 간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손실액 확정 기간 및 분조위 결정에 더해 추가적인 시간이 더 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과거 금융 분쟁 분조위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머지 라임펀드와 옵티머스운용 사태에 대한 배상액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임운용 사태 전까지 금감원 분조위 배상비율은 20~80% 수준이었다. 가장 최근 결정인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배상비율이 80%로 최고였다. 투자 경험이 전무한 고령자 대상 판매에 대해 금융사 잘못이 명백하다고 판단해 책임을 물었던 결과로 풀이된다.
그 이전에는 2014년 발생한 동양그룹 사기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 사태에 대해 70% 배상 권고가 있었다. 동양사태는 옛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이 지난 2013년 9월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사기성 강한 CP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사건으로 투자자만 약 5만 명에 달했다.
지난 2008년 불거진 '우리파워인컴펀드' 사건은 배상비율이 40%였다. 우리파워인컴펀드는 2005년 우리은행이 판매한 구조화채권 파생상품이다. 복잡한 구조화 채권에 투자하는 고위험 파생상품으로, 손실 가능성이 없다는 판매 직원 말과는 달리 1700억원의 전체 투자액 중 97.5%가 증발했고, 피해자만 약 2300명을 양산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