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책임을 묻거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절도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법 조항이 없으면 책임을 물을 수도, 피해자가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주식회사의 모든 주주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또는 '주식회사의 경영진은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말은 어떨까.
우리 회사법(상법)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 그래서 상장회사의 경영진이 회사 또는 지배주주에 유리하고, 일반주주에는 불리한 결정을 내려도 책임을 묻거나 보상을 요구하기 어렵다.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후 재상장, 동원엔터프라이즈-동원산업 합병비율 논란 등 최근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나타난 주주가치 훼손 이슈의 배경을 되짚어보면 결국 이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 최근 공감을 얻고 있다.
회사의 중요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이사회가 회사뿐만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고 보호할 의무를 상법에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 분명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10년 넘게 주장해온 학자가 있다.
법학과 경제학, 증권과 금융규제를 두루 섭렵하고 국내 초대형 로펌에서 10년 넘게 회사법 관련 문제들을 바라보며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왔던 상법 전문가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상훈 교수는 앞서 2008년부터 이 문제들을 지적하고 해법을 제시해 왔다.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힘 있는 방법을 이상훈 교수를 만나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 코리아디스카운트는 거버넌스 문제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 근본 해결책으로 '상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 상법은 회사를 이끌어가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상충을 막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활동에서 이해상충 문제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지점이 바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상충이다.
이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배주주 체제의 기업에서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들의 이익과 손해가 같지 않은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때 이사회는 '회사'에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주주가 손해를 본다고 해도 말이다.
일반주주의 이익 침해라는 거버넌스 문제가 발생하고 이는 곧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연결된다. 하지만 현재의 상법에는 일반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것이 상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다.
- 그동안 상법 개정 움직임이 없었나
▲ 상법 개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 상법 개정은 이뤄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이 개정되지 않으면서 코리아디스카운트, 일반주주의 이익 침해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즉 회사의 경영을 이끌어가는 이사진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에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길이다. 물적분할 대책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개별 사안들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한다고 법안을 고치다 보니 '누더기 법'이 됐고 개정한 법들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도둑질을 하면 안된다'는 당연한 말이 법에 들어가 있듯 '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도 법에 명시돼 있어야 한다. 법적 문제는 근거가 명확히 있어야만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적분할 후 재상장 사례 등 이사회의 결정이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손실을 끼치는 것이 명확한데도 이를 '법적 문제'로 보고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근거가 될 '주주 보호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 근본 해결책으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에 '회사'와 함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동일한 내용의 법안도 발의됐는데,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란 무엇인가.
이용우 의원 대표 발의 <상법 개정안>
상법 382조의 3(이사의 충실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 개정안 :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로 기존 LG화학 주주들의 주식 가치는 크게 낮아졌다. 미래먹거리인 배터리사업을 분할하면서 일반주주들은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주주의 이익 침해는 이처럼 주식의 가치를 낮아지거나 희석되게 한다. 저평가된 주식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면서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LG화학의 지배주주는 LG에너지솔루션을 100% 자회사로 갖게 돼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침해된 일반주주의 이익이 지배주주에게로 간 것이다. 지배주주는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일반주주 몫의 이익까지 더한 '프리미엄'이 붙은 주식을 일반 주식시장이 아닌 M&A(인수·합병) 시장에서만 거래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기업 가치를 지배주주가 독점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한다고만 하면 이처럼 지배주주에게 이익이 쏠리는 것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 모든 주주가 똑같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주식 1주당 가치를 보호한다는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이 '주주의 비례적(지분적) 이익' 보호다.
모든 주주가 똑같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 의무가 필요하다.
- 상법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 규정이 생기면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가 가능한가.
▲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래서 상법 개정만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모두 해소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주식시장에서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개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법안들이 나오고 상법의 다른 부분들을 개정한다고 해도 출발점을 고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금융기법의 발달로 다른 보완책들은 회피할 방법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 상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나.
▲ 상법 개정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크게 4가지다. 첫 번째는 주주의 이익 침해를 막을 수 있다. 자사주 매매, 신주발행, 합병, 분할 등 자본거래 시 발생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 발생하는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이사회가 주주 전체의 이익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고민하면서 이해상충에 대한 실질적인 해소 절차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집단소송이 가능해질 것이다. 아무리 금전적 손해를 입어도 주주 보호 의무가 없어 법적인 손해로 볼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주주에게 손해를 입힌 이사회에 배임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산운용의 효율화, 정상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회사'의 이익만 보면 총자산의 증감만 따지면 되지만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하면 회사 자본운용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지배주주에게만 이익이 되는 계열사 지원이나 낮은 배당, 지배주주의 친인척들이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법적인 문제 지적이 가능해진다. 주주들이 회사의 결정에 대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따져봤냐는 질문도 던질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잉여자금 활용과 배당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생기는 것이다.
- 그럼에도 상법 개정이 쉽지 않다는 의견들이 많다. 상법을 개정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우리 법은 사전적으로 기업의 개별 행위 규제를 촘촘하게 짜놓는 규정방식(rule-based approach) 규제로 발전해 왔고 거버넌스 해결책도 이런 방식에서 논의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규제가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규제한 내용을 제외하면 빠져나갈 부분들이 있는데다, 규정만 지키면 부당한 결과가 생겨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합병비율 산정방법을 법에 정해놓은 게 대표적이다.
반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은 시시콜콜한 규제들을 다 열거하지 않고 '기준(standard)'을 제시하는 원칙중심(principle-based approach) 규제다. 다른 규정들은 상관없이 주주 이익을 침해하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으로 규제완화 효과가 있다.
기업들이 규정을 미리 정해주는데 익숙한만큼 아직 우리에겐 어색할 수 있다. 또한 원칙중심 규제는 규제완화로 국가가 주도권을 일부 내려놔야 한다는 점에서 개선이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가 터질 때마다 법 일부를 바꾸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막을 수 없고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던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봐왔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 해야한다'는 원칙중심 규제로 바꾸면 이사회가 소송을 대비해 자체검열을 하도록 하는 사전 규제 효과가 있고 규제를 빠져나가는 문제들도 해결이 가능하다.
이사회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건 주주의 이익침해 문제를 최우선에 두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거수기 문제나 사외이사의 전문성 지적 문제들도 사라질 것이다.
답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거버넌스 문제는 일반주주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가 화두이고 결국 해결책은 '상법에 보호하라고 써야한다'라는 것이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은 어렵고 다른 방안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근본적인 이유인 상법 개정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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