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엔진부품을 만드는 A 공장. 지난해부터 스마트팩토리(자동화 공장)를 적용해 24시간 부품제작을 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라인별로 8시간씩 3명의 근로자가 3교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라인당 1명이 무인공장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기존 8시간 고정근무를 했던 근로자는 24시간 가동체제 안에서 유연근무를 한다. 근로 개념이 기존과는 완전히 바뀐 셈이다.
인공지능(AI)이 업무를 보조하고 업무처리가 지능화되면 될수록 인간의 근로형태는 유연근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직접 제조하던 것을 기계가 대체하면 24시간 동안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 관리·감독하는 업무만이 남기 때문이다.
이는 퇴근 후 카톡금지라는 규정을 모든 산업, 노동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4차 산업시대는 보다 유연한 근무형태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해당 부분을 고려한 섬세한 법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이 11일 주최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도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력근무가 맞는 근로자에게까지 일률적으로 카톡금지법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 있다"며 "실제 프랑스 경영계 관계자도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는 근로자나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법이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오은경 고용노동부 근로기준혁신추진팀장은 "IT기술 발달로 유연근무제가 확산될텐데 근로기준법에 업무 외 카톡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는다면 예외적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주 일생활균형재단 WLB연구소장은 "유연근무제를 적용받는 근로자는 업무지시를 디지털 디바이스로 받고 업무가 관리되기 때문에 항시 호출대기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섬세한 규정마련을 통해 무엇이 일이고 일이 아닌지 경계의 선명함을 만들어주는 작업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는 고정적 근무형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카톡금지 법안 자체가 의미 있지만 유연근무제나 온디맨드 경제 상황에 적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며 "결국 노사가 사업의 성격, 업무내용, 근로자의 희망을 토대로 내부적으로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 |
퇴근 후 카톡금지는 말 그대로 업무 외 시간에는 카카오톡 등 메신저나 전화로 업무지시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일명 연결되지 않을 권리로도 불린다.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국내에도 현재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 법률안에 퇴근 후 카톡금지 내용이 담겨있다. 개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근로자에게 전자 전송 매체(스마트폰 등)를 이용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지시를 내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상시적으로 일이 발생하는 4차 산업시대 특성상 항상 업무와 연결될 수 있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고정적으로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업무만을 반영한 것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