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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투어]삼바 대표이사의 바이오특강과 '금기어'

  • 2019.03.22(금) 15:55

22일 인천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총
총 77분 중 45분간 김태한 대표 '설명'
안건 속전속결…주총 끝나고 질문 행렬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에선 주주총회를 '자본주의의 축제'로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주총은 엄숙·경직이란 단어가 더 어울립니다. 그동안 국내 언론의 주총 관련 보도 역시 극히 예외적 이슈를 제외하면 형식적 결과 전달에 그쳐왔습니다. 주총 현장을 보다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소액주주의 시선으로 주총에 참석, 경험을 공유하는 [주총투어]를 연재합니다. 우리나라 주총 문화가 조금씩 나아지는데 작은 발걸음이 됐으면 합니다. 주총투어 세 번째 이야기는 22일 정기주총을 개최한 삼성바이오로직스입니다. [편집자]

 
22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글로벌캠퍼스 공연장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8번째 정기주주총회. 주총장 옆에는 취재진을 위한 프레스룸도 마련돼 있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한 주를 가지고 있는 기자는 주총장 안에 자리 잡았다. 이날 주총에는 291명(오전 9시 기준)의 주주가 현장을 참관했고, 사전 위임장 포함 전체 의결권있는 주식수의 87.35%가 참석했다.

오전 9시 6분 사회자의 안내멘트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주총은 77분이 흐른 10시 23분에 끝났다. 주총이 한 시간 이상 걸린 이유는 77분 중 절반을 훌쩍 넘는 45분간 김태한 대표이사의 경영현안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영상 시청과 사회자의 출석주주보고가 끝난 뒤 마이크를 잡은 김태한 대표는 9시13분부터 58분까지 주주들을 상태로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활용한 경영현안설명을 진행했다.

삼성그룹이 헬스케어산업을 미래주력산업으로 선정한 이유, 바이오의약품이 우리 몸을 치료하는 원리,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흐름이 표적치료제에서 면역항암제로 넘어온 배경,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무엇을 하는 회사이며 앞으로 어떠한 경영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장시간 설명이 이어졌다.

한 편의 바이오특강이었다. 꽤 어려운 바이오산업 용어를 최대한 쉽게 전달하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도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한 노력이 느껴졌다. 바이오산업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기자가 이해하기에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김 대표는 45분간의 경영현안설명을 마칠 즈음 주총 전날 전해진 '2019 CMO(의약품 위탁생산) 어워드에서 3년 연속 전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다시 한 번 전하며 "론자(Lonza)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 등 경쟁사도 해내지 못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22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글로벌캠퍼스 공연장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정기주주총회에서 김태한 대표이사가 경영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45분간 분식회계 논란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을 단 한차례도 하지 않았다. 우리말로 '회계', '금융당국' ‘검찰’ 등 민감한 단어는 배제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업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어카운팅(회계) 이슈가 있지만 2012년 바이오젠과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현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젠이 50%씩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짧게 설명한 것이 전부다.

고의 분식회계 논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자신에게 해임권고 결정을 내린 금융당국과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총장에서의 불필요한 언급이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모습으로 읽혔다. 자신들의 예상대로 바이오젠은 콜옵션을 행사했고 삼성바이로오직스의 회계처리는 정당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려는 모습으로도 느껴졌다.

김 대표의 ‘바이오특강’이 끝난 후 주총 안건 의결에 돌입했다. 주총이 열리기 이틀 전 국민연금이 재무제표 승인, 사내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 반대한다고 밝힌 터라 관심이 모아졌던 사안이다.

국민연금은 분식회계 사태 당시 재무책임자였던 김동중 사내이사 재선임과 관련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가치 침해 이력에 해당한다"고 밝혔고, 정석우·권순조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재선임에 대해선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삼성물산·전자 등 특수관계자 지분율이 75%에 달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구조는 일반결의는 물론 특별결의까지 어려움없이 가결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특성상 안건처리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주총 진행흐름은 예상을 더 뛰어넘는 속전속결이었다.

제1호 안건. 문제의 그 재무제표를 승인하는 안건을 김태한 대표가 상정하자 곧바로 주총장 앞 열에 자리 잡은 한 주주는 "대외이슈야 어찌됐던 경영진이 합심해서 회사를 계속 발전시켜줬음 좋겠다. 안건을 원안대로 처리하는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들의 박수가 나오자 김 대표는 다른 주주들의 이의가 없으면 다시 한 번 박수로 안건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박수와 함께 안건은 통과됐다.

이후 정관변경, 김동중 사내이사 선임 건이 포함된 이사선임 안건, 정석우·권순조 후보가 올라가있는 감사위원 선임 안건, 이사보수한도 승인까지 나머지 4개의 안건 모두 '복붙'(복사해 붙여넣기)처럼 앞자리에 자리 잡은 30·40대 남성 주주들의 선제적인 동의와 뒤를 이은 박수로 통과됐다.

5개 안건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13분이었다. 안건이 상정되고 의결되는 동안 단 한차례의 질문이나 이견도 없었다.

김 대표는 “항상 회사를 믿고 함께 해주시는 주주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기대와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주총 폐회를 선언했다.

77분의 주총. 45분의 바이오특강. 13분의 안건처리.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식 주총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주총장 뒤편에선 비공식적인 주총도 열렸다. 77분간의 공식 주총에선 '회계' 또는 ‘금융당국’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게 마치 금기시 된 듯한 모습이었으나, 주총이 끝난 후 나이가 지긋한 몇몇 주주들이 회사직원들에게 분식회계 이슈에 대한 회사의 입장, 금융당국과의 행정소송 진행과정 등 쌓아뒀던 질문을 쏟아냈다.

‘왜 책임 있는 사람들이 답을 하지 않느냐’는 항의도 있었다. 만약 이들이 소위 '주총꾼'이었다면 정식주총 시간에 금기어를 꺼내들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게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총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들어야할 말만 들을 수밖에 없었던 주총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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