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초반 직장인 A씨는 전세 만기일이 다가오자 이사를 위해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자, 불안한 마음에 등기부를 떼봤다. 등기에는 건물이 강제 경매에 들어간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집주인에게도 법원에서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한 A씨는 전재산에 가까운 전세보증금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A씨는 채권자 중에서도 선순위였지만 배당요구 신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억울한 A씨는 법원에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지만 법원에서는 "구제 방법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중 A씨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본에 주소를 잘못 기재하거나 호실을 적지 않는 등 행정적 문제 등으로 '배당요구종기일' 통지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다.
권리 '2순위'였는데 보증금 0원
배당요구종기일은 집주인(채무자)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야 하는 세입자(채권자)가 경매로 건물 매각 시 법원에 자기 몫의 배당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선순위 채권자라고 해도 배당권을 갖지 못한다. 즉 건물이 경매로 매각돼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A씨의 경우 채권자 중에서도 권리 순위가 높은 점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후순위 채권자가 없다면 피해받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법원이 배당요구종기일을 연기하는 재량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종기일을 넘긴 상황에서 A씨에게 혜택을 주게되면 나머지 후순위 채권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형평성 문제로 재량권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A씨는 "통지를 받지 못해 경매 관련한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 "채권자 중에서도 2순위로 권리순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통지를 받지 못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A씨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법원 경매담당 관계자는 이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입자들은 등기부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집행관이 점유자 조사에 직접 나가지만 초본에 나와 있는 주소만 확인할 수 있다"면서 "세입자 연락처나 다른 정보가 없어서 초본의 주소지가 잘못됐을 경우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초본 주소로 종기일 통지를 수차례 통지한다. 따라서 절차상 문제가 없어 법원이 해당 내용을 책임지거나 구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법원 관계자는 "이해관계가 너무 첨예해 종기를 연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연장으로 새로운 채권자를 받아줄 경우 그에 따른 피해자가 발생하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확정일자, 대항력도 무용…소송 통해 권리 찾아야
전세사기 피해자인 경우 등기부에 올라있지 않아도 확정일자를 받으면 구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전입신고를 통해 대항력을 갖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법원 관계자는 "만약 등기부에 기재된 임차인이라면 배당요구종기일 이후 신청해도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확정일자가 있다고 해도 등기부에 내용이 실리지 않는다"면서 "권리신고를 안 하면 법원은 권리자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원칙적으로 배당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는 남은 방법은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경매 낙찰로 배당을 한 후에도 채무자가 가져갈 잉여금이 있다면 채무자 대상 배당잉여금채권 압류 및 추심 관련 소송을 통해 일부를 보전받을 수 있다. 단 잉여금이 없거나 적으면 보증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낮다.
경매 낙찰자를 대상으로 임차보증금 권리 소송을 통해 보증금을 받는 방법도 있다. 부동산 법률 전문가는 "임차권이나 전세권 등기가 안 돼 있을 경우 배당 요구를 법원 기일 내 하지 못하면 법원을 통해 배당받기는 어렵다"면서 "낙찰자에게 임차보증금에 대한 권리 주장으로 보증금 회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배당요구종기일에 대한 권리 신고 해태로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며 "전세사기나 깡통전세 등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배당종기일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