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속철도 역사는 이제 막 30년을 지났다. 1990년대 경부고속철도를 지을 때만 해도 국내 기술이 부족해 선진국에 의존했다. 이 위에 달릴 고속차량 선정에도 프랑스 테제베(TGV), 독일 ICE(이체에), 일본 신칸센(新幹線)이 수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상황은 180도 변했다. 지금은 우리의 철도 기술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K-철도' 위상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초석을 받치고 있는 국가철도공단(KR)은 해외 영토 확장에 한창이다. 공단은 국내에 경부고속선(서울~부산), 수도권고속선(수서~평택) 등 굵직한 고속철도를 놓은 경험을 바탕으로 철도 건설 기술부터 신호·통신 시스템까지 적극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올해 몽골·페루 등 해외사업 수주 속속
13일 국가철도공단에 따르면 글로벌 철도 시장은 연간 256조원 규모로 매년 성장하고 있다. 한국 철도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한정된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필수인 셈이다.
공단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공단은 지난 2004년 창립 이후 총 27개국, 93개 해외철도 사업에서 6667억원의 일감을 따냈다. 올해 들어서는 몽골, 타지키스탄 등 6개 국가에서 총 672억원어치의 사업을 수주했다.
해외 진출 지형도 확대되고 있다. 재작년부터는 한국 철도 최초로 아프리카 및 유럽 고속철도 사업에도 나섰다. 2022년 모로코 고속철도 누아서~마라케시 구간 설계용역, 2023년 폴란드 고속철도 카토비체~오스트라바 구간 설계 용역 등을 수주하면서다.
이 중 모로코철도청이 발주한 사업은 203km 구간의 인프라·토목 및 철도설비운영시스템의 기본·실시설계를 하는 것이다. 철도 설계속도는 360km/h, 운행속도 320km/h다.
올해는 몽골 울란바토르 지하철 건설 PMC(사업 관리) 용역 사업의 수주액이 580억원(공단분 58억원)으로 가장 크다. 울란바토르 선스걸렁역~암갈랑역을 잇는 도시철도 1호선(17.7km)에 대한 사업 관리(PMC), 감리, 개념 설계 등을 맡는다.
공단과 도화엔지니어링, 수성엔지니어링,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이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 유수의 엔지니어링사와 경쟁한 끝에 국내 민간기업과 협업해 몽골 지하철 사업에 진출한 첫 사업이라는 점이 괄목할 만하다.
앞서 공단은 몽골철도공사에서 몽골 최초로 자체 건설하는 타반톨고이~쥰바얀 신설 철도 구간(416km)에 신호통신시스템 구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인도 뭄바이 메트로 6호선 차량기지 공사 컨설턴트 용역(33억원)도 수주했다. 차량기지 및 부대공사 설계검토 및 단계별 건설공사 품질·안전·인터페이스·공정 등 종합감리 업무를 수행한다.
공단은 다양한 ODA(공적개발원조) 제도를 활용해 수혜국의 철도 환경을 조사하고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등 신규 해외사업 발굴을 위한 초석도 마련했다.
올해는 국토부 ODA 사업인 '페루 친체로 공항철도 건설 타당성조사'와 '엘살바도르 태평양철도 타당성조사', 한국수출입은행 ODA 사업인 '타지키스탄 노후철도 전철화 및 신호 현대화 사전 타당성조사'를 따냈다.
타지키스탄 노후철도 전철화 및 신호 현대화 사업은 타지키스탄 중부노선(파크다바드~두샨베~바흐닷) 92.4km 단선 비전철 구간의 전철화 및 신호현대화 예비타당성조사 사업이다.
공단과 대한콘설탄트, 세종기술, 에이알텍 등의 기업이 함께 참여한다. 공단 측은 "노후철도를 현대화하려는 타지키스탄 철도 시장은 한국의 철도 시스템 기술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K-철도 1호 영업사원' 이성해 이사장…내년 성과 주목
최근 두드러진 변화는 이사장이 직접 해외사업 확대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임기 내 'K-철도' 해외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다져놓겠다는 것이 올해 2월 취임한 이성해 이사장 목표다. 그는 국토교통부에서 '3차관'이라는 별칭이 붙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낸 뒤 공단으로 왔다.
이 이사장은 지난 4월 대전 본사를 방문한 '이스라엘 대도시광역교통공사 사장단'을 대상으로 K-철도를 홍보하고 이스라엘 철도건설 사업 관련 협력을 논의했다.
지난 6월엔 K-철도의 유럽 진출 기반 확대를 위해 폴란드, 프랑스를 방문했다. 폴란드 신공항공사의 필립 체르니키 신임 사장을 만나 신공항과 주요 거점 도시를 고속철도로 연결하는 '폴란드 신공항 고속철도 설계사업'(지난해 6월 수주)의 추가 수주를 위해 한국의 고속철도 사업 관리 역량과 기술력을 소개했다.
폴란드 철도공사에도 방문해 표트르 비보르스키 사장과 만나 한국의 기존 철도노선을 고속화한 현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약속했다. 인접국인 우크라이나의 철도재건 사업과 폴란드-우크라이나 철도연결사업 등에 대한 상호협력도 논의했다.
파리개발공사(SEMAPA), 국제철도연맹(UIC)도 방문했다. 이 이사장은 국제철도연맹 프랑수아 다벤느 사무총장과 알스톰 부사장을 만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고속철도 열차제어시스템(KTCS) 등 한국의 철도기술력을 홍보하고 양 기관의 철도 협력을 논의했다.
이 같은 노력이 내년도 해외 수주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공단은 내년엔 △UAE 아부다비~두바이 고속철도 사업 △파나마시티~다비드 간 일반철도 건설사업 △베트남 남북고속철도 건설사업 △몽골 타반톨고이~준바얀 신호·통신 시스템 구축사업 등을 따내기 위히 힘을 주고 있다.
이중 베트남 남북고속철도 건설사업은 사업비만 약 91조원의 대규모 사업이다. 하노이~호치민 간 고속철도를 놓는 사업이다. 아부다비~두바이 고속철도 사업(1단계)은 총 연장 152km, 5개 역사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사업비가 약 18조6000억원이다.
철도공단 측은 "한국철도 산업의 리딩 역할을 수행하며 K-철도 패키지 수출을 위해 민간기업, 유관기관과 함께 팀코리아를 이루고 있다"며 "기술집약적 대심도 터널 GTX나 고속철도 건설 노하우 보유로 해외발주처로부터 큰 신뢰를 받아 다양한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특히 KTCS-2(열차제어시스템) 등 K-철도의 신호와 통신 기술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만큼 적극적인 기술 이전을 추진하겠다"며 "시스템 분야 신기술을 지속 개발하고 민간 기업의 동반 진출을 위한 가교로서의 역할도 해 대한민국 철도산업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