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김용민 기자] |
오뚜기가 1조5000억원 규모의 제분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과거 ‘무궁화표’ 밀가루로 유명했던 대선제분 단일 최대주주에 오르면서다. 오뚜기 측은 "경영권 인수는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과거 대선제분 오너가로 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회사(조흥)를 인수한 사례가 있어, 경영권 인수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오뚜기, '수익 악화' 대선제분에 232억 투자
28일 업계에 따르면 오뚜기는 최근 대선제분 지분 26%(21만3433주)를 232억원에 인수했다. 주당 인수가는 10만9000원. 오뚜기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대선제분 지분 5.3%와 함께, 총 31.98%(25만5847주)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대선제분은 작년 말까지 창업주인 고(故) 박세정 회장의 아들인 박내회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9.57%), 박관회 대선제분 대표이사(7.79%),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7.54%) 등이 24.9%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의 지분율은 2012년(30.24%)보다 5.34% 감소하는 등 오너가의 영향력은 약해지고 있다.
이번에 오뚜기는 대선제분 오너가 외의 기타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1958년 설립된 대선제분은 ‘무궁화표’, ‘제비표’, ‘쌍룡표’ 등 밀가루를 만들며, 지난 56년간 국내 제분업계를 이끌어왔다. 대선제분과 동아원이 함께 소유 중인 ‘무궁화표’와 ‘별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 중 하나다. 현재는 ‘해두루’란 브랜드의 밀가루와 쌀가루를 생산하고 있다.
1조5000억원 규모의 국내 제분업계는 CJ제일제당, 대한제분, 한국제분, 동아원, 삼양밀맥스 등 8개사가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에서 소맥을 수입해 국내에서 밀가루로 가공하고 있다.
연간 총 생산량 200만톤을 넘어선 국내 제분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대선제분은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400억원대 머물던 대선제분 매출은 2009년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지만, 성장세는 그 이듬해 바로 꺾였다. 지난해 812억원까지 주저앉았다. 최근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지난 2011년 2000년대에 들어 처음으로 영업손실 41억원을 냈다. 2012년 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난해 다시 적자전환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분사는 해외 선물시장에 얼마나 싸게 밀을 사오냐가 관건인데, 중소 제분사의 경우 점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며 "FTA 체결로 관세까지 인하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제분의 덩치도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으로 밀가루를 공급할 수 있는 거래처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08년 우리밀 전문 가공업체 ‘밀다원’은 SPC그룹에 인수된 뒤, 6년만에 매출이 13배 이상 급성장했다.
오뚜기와 대선제분은 창업 시절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의 가족인 고(故) 함형준 조흥 회장과 고 박세정 회장은 대선제분, 조흥, 계동산업 등의 회사를 세운 동업자이자 친구였다. 후대의 경영 성과는 오뚜기가 앞섰다. 지난 2003년 박관회 대표 등이 최대주주였던 '조흥'이 오뚜기로 넘어간데 이어, 이번엔 대선제분까지 오뚜기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보통 라면 회사들은 제분회사의 지분을 일부 보유하고 있다"며 "최근에 지분을 늘린 것은 단순 취득이고, 경영권까지 인수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