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 안준형 기자] 지난 26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게이오대학 미타캠퍼스. 경제학부 3학년인 스즈키 유이(가명) 씨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기업체 3곳을 돌며 일일 인턴으로 일할 계획이다. 취업을 위해 어학 시험이나 각종 자격증 준비에 매진하는 한국 대학생들과는 취업준비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보였다. 그는 “지금은 학과 공부만 하고 있다”며 “취업을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취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4학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학부 4학년인 사토 미오 씨는 취업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토익을 공부하는 친구들도 일부 있지만, 굳이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며 “취업설명회에 다니는 게 전부”라고 답했다. 한국과 비교할 때 일본 대학생들의 취업 준비활동은 어쩌면 한가해 보이기까지 했다. 일자리를 구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내년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중인 엔도 히로시 씨는 “학과 친구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한 군데 씩은 입사가 내정이 된 상태고, 취업을 하려는데 안 된 친구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취업 잘되고 임금 오르고
일본의 취업률은 아베노믹스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올해 봄 일본 대졸자의 취업률은 72.6%다. 대졸 취업률이 70%를 넘긴 것은 1994년 이후 21년 만이다. 취업자 중 95%가 정규직으로, 질적인 면에서도 취업상황은 양호하다.
대학생들이 학교 문턱을 나서자마자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이유는 기업이 살아나고 있어서다. 아베노믹스로 돈이 풀리고, 엔화가치가 떨어지는 엔저(低)효과로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된 일본 기업들이 너도나도 인재채용에 나선 것이 주원인이다. 올 2분기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기업의 총 경상이익은 작년동기보다 24% 늘어났다. 반면, 기업의 도산 건수는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회사건물이 밀집한 긴자의 한 거리에 '취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구직자들. 검은색 정장과 가방, 하얀 와이셔츠는 일본 구직자를 상징하는 패션이다. |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국내 상황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우리 교육부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을 포함한 고등 교육기관의 취업률은 2013년 59.5%에서 2014년 58.6%로 감소했다.
실제 우리 청년층의 취업 현실은 통계보다 더 심각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토익과 해외연수, 자격증 등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취업 '문'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공기업이나 금융권, 대기업의 정규직 같은 양질의 취업 문턱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만큼 어렵다. 취업에 실패해 졸업을 미루는 이른바 '9학기 학생'이 지난해 12만명을 넘었다. 4년간 전공학문을 공부하고도 취직이 안돼 졸업후 1~2년간 학원에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도 적잖다. 일자리가 없는 젊은층이 구매와 소비에 나서지 않고, 침체된 내수 시장에서 물건을 팔지 못하는 기업들은 실적이 좋지 않아 신규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일본은 취업률뿐만 아니라 대기업 월급봉투도 두둑해지고 있다. 올해 일본 임금상승률은 2.59%로, 1998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높은 취업률과 임금 인상으로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가 살아나면서 내수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가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 일본 설비투자와 임금관련 변화(자료 : LG경제연구원) |
◇ 중국 관광객, 한국 대신 일본으로
도쿄의 번화가 긴자는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다. 엔저가 장기화되고, 일본 물건들을 예전보다 싼 값에 살 수 있게 되면서 중국 관광객들이 면세점이 밀집한 긴자로 몰려들고 있다. 긴자에 위치한 미츠코시(MITSUKOSHI) 백화점의 명품 잡화점에서 일하는 사유리 씨는 “매출이 작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물용으로 버버리 손수건을 100장 넘게 사가는 중국 관광객도 있었다”며 “이들은 꼭 ‘메이드 인 재팬’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긴자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에도 중국 관광객들이 주고객으로 자리를 잡았다.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 1층. 비교적 한산한 오전 시간대에도 이 곳은 중국 관광객 등이 몰리면서 붐볐다.(사진 = 안준형 기자) |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여행수지는 2099억 엔으로, 1959년 이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2014년 관광객 수는 1341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 관광객수는 작년동기보다 43.7% 증가했다. 올 4월 일본 면세점 수는 1만개를 돌파했고, 일본 항공사들은 중국 노선을 늘리고 있다. 메르스 여파 등으로 해외 관광객 수가 감소하고 있는 국내 상황과는 반대인 셈이다.
◇ 아베노믹스의 그늘
아베노믹스에 양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서민층은 아베노믹스의 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회사나 중소기업의 경우 엔저로 인한 피해가 적잖다. 일본 미즈호은행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10엔씩 떨어질 때마다 상장기업의 영업이익은 1조7000억엔 늘지만, 비상장기업의 영업이익은 8000억엔 감소한다. 규모가 적은 기업에게 엔저는 생존을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인 셈이다.
엔저로 수입물가가 오르면서 서민층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해외에서 원재료를 수입하는 식품기업들은 최근 잇따라 소스, 밀가루 등의 가격을 올리고 있다. 최근 일본 롯데는 41년 만에 ‘가나 밀크’ 초콜릿 가격을 10% 올리기도 했다. 여기에 작년 4월 소비세가 5%에서 8%로 오르면서 소비자 체감 물가는 더욱 높아졌다. 아베 정부는 현재 또 한 차례 소비세 인상이 예고하고 있어,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실제로 위축된 민간소비는 일본 경제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올 4~6월 일본 실질 GDP가 전기대비 0.4% 감소했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이 기간 0.8% 감소한 ‘민간소비’가 지목되고 있다. 민간소비는 소비세 인상의 영향으로 약 1년여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 경제는 모처럼만에 활력을 되찾으며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날 탈출구 앞에 서있다. 하지만 막대한 돈을 풀고, 통화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린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고령화 등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일본 경제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는 세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느냐에 달렸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 27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무역관에서 만난 정혁(사진) 일본지역본부장은 “아베노믹스는 아직까지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엔저 효과를 앞세워 대기업의 실적은 좋아지고 있지만, 고령화와 정부부채 등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일문일답이다. ▲3년 차에 접어든 아베노믹스를 평가한다면.
비즈니스워치가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코트라(KOTRA)가 후원하는 국제경제 세미나 '위기의 한국경제,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가 내달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부활하고 있는 일본 경제와 산업계의 현실을 살펴보고, 급속한 고령화와 저성장 등으로 일본의 전철을 밟으려는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 지를 점검하는 자리다.
이번 세미나에는 나오유키 요시노(Naoyuki Yoshino) ADB(아시아개발은행) 연구소장이 '아베노믹스와 일본경제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한다. 도시히로 이호리(Toshihiro Ihori)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GRIPS) 교수는 '고령화가 일본 경제에 미친 충격'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정혁 KOTRA 일본지역본부장은 '일본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와 전략'에 대해,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의 시사점과 한국 산업계 대응전략'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한다. 패널 토론에서는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모더레이터로 진행을 맡는다.
이번 세미나는 9월 11일 오후 2시~6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에서 개최되며 참가비는 무료다. 사전 참가신청은 비즈니스워치 홈페이지(http://www.bizwatch.co.kr) 혹은 세미나 사무국(02-783-3311)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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