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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스타벅스는 어쩌다 '우파의 상징'이 됐을까

  • 2026.05.22(금) 07:00

1999년 이대 앞 '스타벅스 1호점' 오픈
'된장녀' 비하 극복하고 카페 문화 지배
2021년 이마트 인수 이후 정체성 흔들
'5·18 탱크데이' 논란에 멸공 리스크 소환

그래픽=비즈워치

1999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앞. 한국 커피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스타벅스'입니다. 당시 국내에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 전문점들이 태동하고 있는 시기였는데요. 스타벅스가 들여온 미국식 커피 문화는 한국 커피 시장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브랜드를 넘어 국내 소비 트렌드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초기 '허영의 상징'이라는 낙인부터 최근 '우파의 상징'으로 소비되기까지 스타벅스가 겪어온 이미지 변천사를 짚어봤습니다.

스타벅스 1호점

2000년대 스타벅스는 한국 사회에 등장한 신조어 '된장녀'의 핵심 소품이었습니다. 밥값보다 비싼 스타벅스의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손에 들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비하하는 맥락에 단골로 등장했죠. 이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브랜드 소비에 대한 기성세대의 거부감 그리고 사회적 혐오 정서가 투사된 현상이었습니다. 이 시기 스타벅스는 '사회적 허영심'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낙인찍히며 혹독한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타벅스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합니다. 1999년 1호점을 연 뒤 2007년 200호점, 2011년 400호점을 돌파했고 올해 1분기 기준 총 점포 수는 2136개에 달합니다. 매장 수가 빠르게 늘어나며 대중적이고 친근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글로벌 표준에 기반한 안정적인 맛, 세련된 분위기, 눈치 주지 않는 서비스는 고객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진=스타벅스

무엇보다 스타벅스의 성공 신화는 단순히 '비싼 커피'에 있지 않았습니다. 스타벅스가 판 건 원두가 아니라 '공간 경험'이었습니다. 스타벅스 창업자는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스타벅스를 단순 커피 매장이 아닌 '제3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집과 직장 사이에서 사람들이 쉬고, 교류하고,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 말이죠.

당시 스타벅스 매장은 짙은 원두 향과 편안한 소파, 감성적인 음악이 흐르는 도시인의 안식처처럼 소비됐습니다. 고객의 닉네임을 불러주는 문화 역시 단순 서비스 이상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졌죠. 여기에 매년 연말마다 다이어리를 받기 위한 프리퀀시 대란이 이어지고, 매 시즌 선보이는 텀블러는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습니다. 결국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카페 문화'를 팔며 성장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타벅스는 일종의 문화 브랜드 역할을 해 온 셈입니다.

달라진 분위기

그러나 2021년 이후 스타벅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마트가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보유하던 스타벅스코리아 지분 17.5%를 추가 인수하면서 지분율을 67.5%까지 끌어올린 시점인데요. 경영 주도권이 완전히 신세계그룹으로 넘어가며 사명도 'SCK컴퍼니'로 변경됐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스타벅스 고유의 정체성이 흐려졌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타벅스의 핵심 경쟁력이었던 '머무르는 공간' 기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과거 스타벅스는 일부러 회전율을 높이지 않는 브랜드였습니다.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았고 넓은 테이블과 소파, 콘센트와 잔잔한 음악까지 모두 체류 경험에 맞춰 설계됐습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에 간 게 아니라 공부를 하고, 회의를 하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았습니다. 이른바 '제3의 공간' 전략이었죠.

하지만 최근 스타벅스는 점차 '효율성' 중심 운영으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습니다. 일부 매장에서는 고객 닉네임을 직접 불러주는 대신 진동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상징적인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또 모바일 주문 서비스인 사이렌오더 이용 비중이 커지면서 매장 역시 '머무는 공간'보다는 음료를 빠르게 받아가는 '픽업 거점' 역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사이렌오더/사진=스타벅스

여기에는 국내 커피 시장 경쟁 심화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과거 스타벅스는 사실상 독보적 프리미엄 브랜드였지만 최근에는 블루보틀·팀홀튼 같은 해외 브랜드는 물론 메가커피·컴포즈커피 같은 초저가 브랜드까지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결국 스타벅스 역시 대중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잡기 위해 '빠른 유행 대응' 전략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최근 디저트 시장에 두바이초콜릿과 쫀득 쿠키류가 유행하자 스타벅스 역시 유사 콘셉트 제품을 내놨습니다. 여름철 컵빙수 경쟁도 비슷합니다. 메가커피, 컴포즈커피 등 저가 프랜차이즈에서 유행한 컵빙수 트렌드를 스타벅스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셈입니다. 

즉 과거에는 스타벅스가 문화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유행을 뒤쫓는 위치가 된 겁니다. 한때 스타벅스가 시장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SNS에서 뜨는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반영해야 하는 브랜드가 된 셈입니다. 결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스타벅스만의 특색이 사라졌다", "결국 유행 따라가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됐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탱크데이'

브랜드 정체성에 균열이 가던 시점, 스타벅스는 새로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탱크데이' 이벤트입니다. 지난 18일 진행된 이벤트에서 '책상에 탁', '탱크' 등의 키워드가 사용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탱크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소비자들은 "민주화 운동의 비극을 조롱하고 모욕한 마케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온라인에서는 '탈벅(탈 스타벅스)' 움직임까지 확산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논란 이후 일부 우파 성향 커뮤니티에서는 오히려 "스타벅스를 지켜주자", "불매에 맞서 더 소비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정치적 소비가 브랜드 이미지에 본격적으로 덧씌워진 겁니다.

이 과정에서 다시 소환된 인물은 정용진 회장입니다. 정 회장은 과거 SNS에서 '멸공' 메시지를 올리며 정치·이념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는데요. 당시에도 스타벅스 불매 움직임과 동시에 '스타벅스 인증 소비'가 이어졌습니다.

탱크 데이 프로모션 갈무리/사진=스타벅스

결국 스타벅스는 의도했든 아니든 정치적 진영 소비의 상징처럼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역사의식 없는 소비'로, 또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신념의 표현'으로 해석되는 지경에 이른 셈이죠.

사실 글로벌 브랜드가 특정 정치 진영 이미지와 결합하는 순간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보편성'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브랜드가 특정 집단의 상징처럼 소비되기 시작하면 반대 진영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커피 브랜드처럼 일상 밀착형 소비재일수록 이런 변화는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브랜드 이미지라는 건 한번 굳어지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이 정치적 메시지와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스타벅스는 여전히 국내 커피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스타벅스가 진짜 잃어버린 것은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찾고 소비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대중성'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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