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홈플러스에 대한 소비자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비교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밀린다는 인상이 강했다. 특히 홈플러스의 신선식품 평가는 더욱 좋지 않았다. 홈플러스의 신선식품 담당자에게는 다소 가혹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그런 홈플러스가 최근 파격적인 정책을 선보였다. 경쟁업체와 비교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신선식품에 대해 애프터서비스(A/S)를 하겠다고 나섰다. 전자제품 A/S는 들어봤어도 식품 A/S는 금시초문이다. 내용은 더욱 놀랍다. 예를 들어 30구짜리 달걀 한판을 구매해 29구를 먹었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말없이 교환 혹은 환불해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왜 이처럼 파격적인, 어찌 보면 위험 부담이 큰 정책을 내놨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만나봤다.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홈플러스 본사에서 홈플러스의 신선식품을 총괄하고 있는 김웅 홈플러스 신선식품본부장(상무)을 만나 신선식품 A/S의 모든 것을 들어볼 수 있었다.
▲ 김웅 홈플러스 신선식품본부장. |
"23년간 신선식품 바이어로 일했습니다". 그는 신선식품 전문가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하고, 94년 신선식품 바이어의 길로 들어선 후 지금까지 이쪽 일만 해왔다. 홈플러스에는 2003년 합류했다. 축산팀장, 수산팀장 등을 거쳤다. 신선식품과 관련해선 손에 꼽히는 전문가다. 그런 만큼 이번 신선식품 A/S 제도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김 상무는 "이번 신선식품 A/S제도를 도입하기까지 회사도 결정이 쉽지 않았다"며 "신선식품은 100% 품질로 검증을 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사들의 동의와 협조다. 그래서 협력사들에 가격은 물론 당도, 신선도 등의 기준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그동안 홈플러스의 신선식품 평가가 좋지 않았다고 넌지시 공격성 멘트를 던졌다. 그러자 그는 "맞다. 홈플러스의 신선식품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의외였다. 날 선 반박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차분히 수긍했다. 살짝 김이 샜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멘트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묻어났다.
김 상무는 "대형마트가 신선식품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면서 "이 때문에 이번 A/S제도를 시작하면서 2중, 3중으로 감시와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홈플러스의 신선식품 A/S제도의 프로세스는 무척 깐깐하다. 산지에서 고객의 카트에 실리기까지 우수한 품질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홈플러스의 신선식품은 각 산지 및 업체를 직접 방문해 품질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이어 각 물류센터에서 검사자가 검품을 진행해 또 걸러낸다. 각 점포에서는 '신선지킴이'가 매장 내 상품의 품질을 다시 한번 체크하고 품질이 좋지 않은 상품은 즉시 폐기한다.
아울러 이 모든 과정은 '신선의 정석' 캠페인을 진행해온 '빅벤(Big Ben)' 프로젝트팀이 검수한다. 그야말로 깐깐한 프로세스를 통해 신선식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셈이다. 홈플러스가 신선식품 A/S제도를 실시할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이기도 하다.
현재 국내 대형마트 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 채널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오프라인 채널의 대명사인 대형마트들의 타격이 크다. 그나마 대형마트를 찾는 건 신선식품을 사기 위한 수요가 많다. 따라서 대형마트가 신선식품을 잃는다는 것은 곧 대형마트로서 수명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홈플러스가 파격적인 제도를 앞세워 신선식품 품질 및 서비스 강화에 나서는 이유다.
김 상무의 설명을 들으며 비용 문제가 궁금해졌다. 신선식품 A/S를 하려면 그만큼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그는 "품질 향상에 집중하기 위해 마진율을 종전보다 2%가량 낮췄다. 연간 수백억원 수준이다. 신선식품 A/S제도 도입에 필요한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진 목표를 낮춰 바이어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각종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면 그 여력을 신선식품 품질 독려에 쓸 수 있다"며 "이 과정을 거쳐 우리 신선식품 품질이 오르고 고객이 찾아준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인 셈이다. 홈플러스의 신선식품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블랙컨슈머 문제도 궁금했다. 품질에 이상이 없는데도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소비자들은 어디에든 꼭 있다. 어찌 보면 신선식품 A/S제도는 블랙컨슈머 대응이 가장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대책이 궁금했다. 솔직히 걱정도 됐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김 상무는 "크게 걱정 안 한다"며 "제도 시작 2주 만에 약 200건 정도가 들어왔는데 과거처럼 실랑이는 전혀 없었다. 고객이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바꿔드린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최고 경영진도 신선식품 A/S제도를 눈여겨 보고 있다. 임원 회의 때 마다 해당 데이터를 뽑아보고 공유하면서 대책을 마련한다. 특히 여성 CEO인 임일순 사장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 직접 장을 보는 CEO다. 장을 보다가 품질이 좋지 않은 신선식품을 발견하면 곧바로 김 상무에게 '제보'한다. CEO이면서 동시에 현장 '신선 지킴이'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얼마 전 퇴근길에 사장님에게 카톡이 왔다. 사과 사진과 함께 품질이 별로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차를 돌려 경기도 안성에 있는 물류센터로 갔다. 현장 담당자들을 모두 불러 4종의 사과를 갖다 놓고 품질을 점검했다. 실제로 품질이 좋지 않았다. 기준이 제각각이었고 당도도 기준에 못 미쳤다. 그래서 문제 파악을 위해 수십 년간 사과업체를 운영해온 사장님들께 과외를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 상무는 "아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의 직장이 홈플러스라고 선뜻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주변에서 홈플러스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할 때면 더욱 그렇다고 하더라"라며 "하루아침에 홈플러스의 신선식품이 확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처럼 꾸준히 하다 보면 3~6개월 후에는 방점을 찍을 것이다. 매출 1등보다 홈플러스 품질이 제일 좋다는 말을 꼭 듣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임 사장이 지적했던 사과의 문제점 해결을 위해 사과업체 사장님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했다. 김 상무는 "사장님들께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대신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1등 사과를 뽑고 그 사과를 생산한 사장님의 노하우를 들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23년 경력의 신선식품 베테랑은 여전히 배우는 중이었다. 목표는 오직 하나 '최고 품질'이다. 그가 사장님들에게 어떤 노하우를 전수받았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