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퇴사도 언젠가 맞을 현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미리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때를 위해 30대들이 모여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매달 적게는 80명, 많게는 100명가량이 모여 직장인으로서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이 모임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하나로 시작했다. 지난 1월 24일, 그는 잠들기 전 '1인 기업이나 퇴사에 대해 함께 고민하실 분 있으신가요?'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글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100개가 넘는 '좋아요'와 댓글을 얻으며 호응을 받았다.
실천은 빨랐다. 글을 올린 바로 다음날 그는 온라인 설문을 만들어 관심을 보인 사람들과 공유했다. 그리고 글을 올린 지 1주일 만인 1월 31일, 약 50명 정도가 참석한 '월간서른' 첫 모임을 성사시켰다.
워크베터 컴퍼니(Workbetter Company)라는 1인 기업과 함께 30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모임인 '월간서른'을 운영하는 82년생 강혁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월간서른'은 직장생활 이후 맞이할 삶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에서 출발한 커뮤니티다. 이름에 걸맞게 매월 마지막 주, 다양한 직업군에서 각자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30대를 대상으로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기업이나 단체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뤄진 프로젝트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달 10일 용산CGV에서 '서른의 대화'라는 주제로 11번째 모임을 앞두고 있다.
▲ 월간서른 강연 현장/자료=월간서른 제공 |
강 대표가 강연에 초대하는 연사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한 인사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유명하다는 사실 자체가 섭외의 기준이 되진 않는다.
강 대표는 "기존 강연을 듣고 나면 내 이야기보다는 남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듣는 사람이 기분 좋고 마는 그런 강연이 아니라 작게나마 청중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강연을 준비하고 싶었다"고 나름의 원칙을 소개했다.
그가 연사를 섭외할 때의 가장 큰 기준은 '30대 다수와 얼마나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느냐'다. 그는 "대학을 나와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다가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 뭔가 조금씩 이루다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연사를 섭외한다. 그런 이야기가 '월간서른'의 청중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퇴사 준비생의 도쿄'로 유명한 최경희 트래블코드 이사, 718일 동안 24개국 97개 도시를 여행한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공동저자 위경은∙김연우 등 지금까지 연사로 나선 이들의 면면을 보면 강 대표가 지향하는 바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강 대표 혼자 100명에 가까운 강연행사를 성황리에 이끌어올 수 있던 건 그의 주전공 덕분이다. 대학에서 행정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그의 전공은 마케팅이다. 2010년부터 BC카드에서 광고와 전략기획, 마케팅 등을 담당하면서 실전 노하우를 쌓았다.
강 대표는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마케팅 노하우를 살려 세심하게 고객들에게 접근한다. 비가 오면 현저하게 떨어지는 참석률을 끌어올리려고 "비가 와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센스있는 메시지를 행사 전에 전송하거나, 참석자와 일일이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유대감을 쌓아 자연스럽게 단골로 만드는 식이다. 덕분에 '월간서른'의 행사 재참석률은 80%에 달한다.
'월간서른'과 회사일을 병행하던 지난 6월, 그는 과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연 퇴사했다.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어느 시점 이후엔 더는 배울만한 것이 없다고 느꼈다는 게 퇴사 이유였다.
그러나 퇴사 자체를 충동적으로 선택하진 않았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퇴사 준비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온 케이스다.
레고를 사용해 회사 워크숍이나 회의의 목적 달성을 돕는 '레고 퍼실리테이터' 자격증 취득이 대표적이다. 회사에서 마케팅과 대내외 행사를 주로 담당했던 그는 '레고 퍼실리테이터'에 대한 수요를 미리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퇴사 후 넉 달째 접어든 지금 그의 주소득은 바로 이 '레고 퍼실리테이터' 일과 마케팅 강연에서 나온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과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수입이 줄긴 했지만, 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고려하면 부족하진 않다고 설명했다.
퇴사를 맞을 그리고 퇴사를 고민하는 30대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퇴직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30대에 나의 선호를 발견하는 데 몰두했으면 좋겠다"고.
미리 죽음을 경험해보는 임종 체험과 영정사진 촬영이 최근 20, 30대 사이에 유행했다.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남은 삶이 하루든 십 년이든 마음 편하게, 가치있게 죽음을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죽음처럼 퇴사도 외면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직면해야 할 현실이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와 시간이 남아있는 지금 우아하게 퇴사 이후를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