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벽에 절망하지 말고, 눕혀 다리를 만들자', '고객에게 광적으로 집중하자.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 '기존의 일하는 방식에서 군더더기를 빼야 한다'
신축년 새해 유통업계 수장들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고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변화와 혁신을 꾀하자는 메시지 자체는 예년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표현의 강도는 어느 때보다 강했다. 이대로 변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 더욱 높아진 위기감…"이기는 싸움 하자"
유통업계 빅3로 불리는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그룹 수장들은 2021년 새해를 맞아 한목소리로 위기감을 드러냈다. 지난해에도, 전 해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더 큰 절박함을 담았다. 지난해 빅3는 쓴맛을 봤다. 이미 시장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쏠리는 와중에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업체들은 1년 내내 휘청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주요 사업으로 두고 있던 빅3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물론 이런 위기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공격적으로 가격 경쟁에 나서고 온라인 사업 확대에 공을 들이는 등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새해에는 더욱 공격적으로 경쟁에 나서겠다는 게 유통 빅3 수장들의 메시지다.
국내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지켜온 롯데그룹 역시 지난해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기존 오프라인 점포들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는 동시에 롯데ON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선보이며 사업을 재정비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런 과정을 겪어온 임직원들을 다독이면서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 회장은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곳도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많은 부문이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우리의 역량이 제 기능을 발휘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며 "유능한 인재들이 베스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특히 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는 말을 인용해 위기 극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눈앞의 벽에 절망하지 말고, 함께 벽을 눕혀 도약의 디딤돌로 삼자는 메시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근성을 갖춰야 한다"라며 전의를 다졌다. 그동안에는 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관성에 빠져 있었다면, 이제는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정 부회장은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후 르네상스라는 화려한 꽃이 피었다"면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장 경쟁환경이 급격하게 재편되는 올 한 해가 오히려 최상의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지금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고 10년, 20년 지속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판을 바꾸는 대담한 사고로 도전해달라"고 주문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역시 위기감을 내비쳤다. 그는 "유례없는 코로나19와 수년째 지속하는 경기 침체, 그리고 디지털 전환을 축으로 한 산업 패러다임의 급변으로 어려운 사업 환경이 예상된다"며 "변화의 흐름을 읽고 잠재적인 고객의 니즈를 찾아내는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빠르게 변화를 실천하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우리의 사고와 행동 기준으로 삼고 변화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고객에 집중…"본원적 가치 찾아야"
위기감 속에서 내놓은 해법은 고객과 시장의 변화를 발 빠르게 파악해 대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더욱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동빈 회장은 "고객과 사회로부터 받은 신뢰를 소중히 지켜나가며, 긴 안목으로 환경과의 조화로운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스타트업을 비롯한 다양한 파트너들과는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며,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협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자"라고 주문했다. 또 "이런 노력은 시장에서 우리의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고객의 요구에 '광적인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의 바뀌는 요구에 '광적인 집중'을 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 한발 더 나아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대담한 사고'를 해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어 "새로운 기회를 잡을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신세계그룹을 스스로 재정의하는 한 해로 만들어달라"라고 강조했다.
'불요불굴(不撓不屈)'이라는 사자성어도 인용했다. '결코 흔들리지도 굽히지도 않고 목표를 향해 굳건하게 나아간다'는 의미다. 정 부회장은 "우리에게 불요불굴의 유일한 대상은 고객"이라고 했다.
정지선 회장은 '고객의 본원적 가치'를 찾자고 했다. 그는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의 생활 속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고객의 본원적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답을 도출하는 과정을 통해 본원적 가치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는 업계의 경쟁적 관점에서 벗어나 고객의 가치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시장 상황을 판단하고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면서 "기존의 사업 프로세스와 일하는 방식에서 군더더기를 뺀 '의미 있는 단순화'를 구현해 고객 입장에서 의미 있고 유용한 가치를 창출해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