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행을 앞둔 유통업계가 '파업 리스크'에 긴장하고 있다. 물류업계를 중심으로 촉발된 파업이 진정되지 않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당장 파업이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하루 앞으로 다가온 민주노총 총파업 이후의 사태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되거나 확산될 경우 업계·자영업자·소비자 모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파업
민주노총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조합원들은 지난 15일부터 부분파업을 개시했다. 신선식품 등 일부 배송을 거부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오는 20일 일일 경고파업도 진행한다. 이어 21일부터는 반품·편의점 물품 배송을 거부를 예고했다. 이에 앞서 시작된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리바게뜨 규탄 파업도 지난달부터 진행중이다. 이 파업에는 GS리테일·홈플러스·롯데마트·하림 등의 물류노조도 동참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도 소규모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백면노조)는 추석과 한글날 연휴에 연이어 백화점 내 샤넬·로레알 등 화장품 매장에서 파업을 진행했다. 또 홈플러스 노조는 지난 14일 '홈플러스 폐점매각 저지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홈플러스의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이익 추구를 위해 점포를 폐점·매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배송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배송기사와 판매직원 등의 업무량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오프라인 매장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보상 및 근무조건 개선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들의 파업 이유다. 실제로 CJ대한통운 노조는 사측이 배송원 처우를 위한 요금 인상분 중 일부를 이익으로 챙기려 한다고 주장한다. 백면노조는 근무시간 현실화와 온라인 판매 수당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물류와 유통업계 노동자들의 근무 조건이 다소 가혹해졌다. 물류는 인원 대비 배송량이 늘었고 판매직들은 온라인 판매 업무 등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며 "업계가 내놓은 자체 조치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불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선뜻 협상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
사측도 노조의 파업 취지를 일정 부분 수긍하고 있다. 다만 파업을 일부 노조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파리바게뜨의 물류 파업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배송기사들의 운행 코스 선택 과정의 갈등에서 시작됐다. 홈플러스에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계열 노조가 모두 결성돼 있지만, 민주노총 소속 노조와 사측의 대립이 보다 첨예한 상태다.
이는 현재의 파업을 노조 사이의 '인정 투쟁'으로 왜곡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조건 개선보다 노조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회사가 어느 한 쪽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타 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또 다른 방식의 파업이 전개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업체들이 섣불리 노조와의 협상 테이블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결국 '의사표현의 통합'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스타벅스코리아 파트너들이 시작한 트럭 시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빈번한 프로모션에 따른 노동조건 악화를 이유로 목소리를 냈다. 나아가 민주노총의 지원 의사를 거부하면서 통합된 목소리를 사측에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그 결과 비교적 빠르게 사측으로부터 처우 개선 및 인원 충원 약속을 받아냈다.
일각에서는 노동계의 요구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이를 기준으로 한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면 포스트 코로나 이후 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노조의 요구는 증원·임금인상 등에 집중돼 있다. 향후 시장 동향을 섣불리 예상하기 어려운 만큼 관련된 결단을 내리기도 어렵다는 것이 사측의 입장이다.
파업 확산은 피해야
업계에서는 현재의 파업이 '유통 대란'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파업이 물류 분야에 집중돼 있어서다. 다만 파업의 확산과 장기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오는 20일에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진행된다. 이 파업에서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노동 문제를 ‘사회적 의제’화 하기 위한 움직임이 예상된다. 때문에 파업이 전 산업계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통업계는 위드 코로나 이후 반전을 노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1포인트 올랐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된 7월 이후 두 달만에 상승했다. 소비심리지수는 100을 기준점으로 100보다 높을 시 많은 소비자가 경기 호전을 예상한다는 의미다. 이에 업계는 다음달 '코리아세일페스타'부터 연말까지의 대목 기간을 노리고 있다. 파업이 확산될 경우 타격은 불가피 하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자영업자는 물론 소비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정부는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 파업을 계기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된다면 위드 코로나 시행이 늦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이를 우려한 움직임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자영업연대는 지난 6일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전개했다. 총파업을 이유로 위드 코로나 시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변화한 노동 조건 등으로 노동계의 요구 사항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만큼 과거와 같이 노사간의 협의로 사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이를 이유로 파업이 확산되거나 길어진다면 대부분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정부가 불법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노사간 협의를 이끌 수 있는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