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오프라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조던 스니커즈 전문 매장에 이어 롤렉스·샤넬 등 명품에 집중한 매장을 열었다.
번개장터는 이를 '취향 플랫폼'으로의 변신 과정이라고 밝혔다. 플랫폼 내에서 거래량이 많은 상품에 집중한 매장을 통해 트렌드를 주도하고 구매력 높은 소비자를 '록인(Lock-in)' 시키겠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중고거래 플랫폼 양대 축인 당근마켓과 전혀 다른 차별점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중고거래앱이 만든 '명품샵'의 모습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 센터필드에 위치한 'bgzt(브그즈트)' 컬렉션을 찾았다. 브그즈트는 번개장터의 초성에서 이름을 따 온 오프라인 매장의 브랜드명이다. 브그즈트는 앞서 두 곳의 조던 스니커즈 전문점 '브그즈트 랩'을 오픈한 바 있다. 이번에 찾은 브그즈트 컬렉션은 지난달 말 오픈한 세 번째 매장으로 기존 브그즈트 랩과 달리 롤렉스·샤넬 등 명품을 판매한다. 프리미엄 매장명에 주로 붙는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쓴 이유다.
입구에서부터 이름에 걸맞는 고급스러움이 느껴졌다. 백화점에서 접할 수 있는 명품 매장과 비슷했다. 내부도 고급스러웠다. 손님이 직원의 안내를 기다리는 '라운지존'에는 고급 소파와 에르메스 쿠션이 비치돼 있었다. 롤렉스를 판매하는 '젠틀맨존'은 위스키 바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적용해 여유로운 이미지를 줬다. 마지막으로 샤넬 백과 의류를 판매하는 '레이디존'은 패션 라이브러리와 같은 느낌이었다.
브그즈트 컬렉션에는 인기가 많지만 쉽게 구하기 어려운 제품이 많았다. 이미 단종된 '서브마리너 헐크' 등 40여종의 롤렉스가 구비돼있었다. '클래식 미디움 백' 등 재고를 구하기 어려운 샤넬 제품도 넉넉했다. 제품 상태는 새것과 다름없었다. 번개장터가 전문 구매·검증팀을 신설해 관리한 결과다. 게다가 '오픈런'도 없었다. 브그즈트 컬렉션은 온라인 예약제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소비자가 여유롭게 상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격은 백화점 소매가 대비 20%~30% 가량 비쌌다. 정가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평균 리셀 가격에 맞춰 판매가를 설정하고, 부가세를 포함해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판매는 꾸준히 이뤄졌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롤렉스와 샤넬 상품은 소장을 목표로 하는 소비자가 많고, 추후 되팔게 되더라도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며 "오픈 후 롤렉스와 샤넬 상품이 10여개 이상 팔렸다"고 밝혔다.
번개장터가 브그즈트 늘리는 이유
번개장터는 브그즈트가 단순 판매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판매보다는 체험에 중점을 두고, 이 과정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날 살펴본 상품에는 가격 태그가 붙어있지 않았다. 매장 직원과 상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격이 공개됐다. 매장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길었다. 한 고객은 1시간 이상 상품을 직접 착용해 보며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매장 운영 전략도 일반 판매점과 다르다. 번개장터는 플랫폼 내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상품군을 브그즈트에 입점시킨다. '트렌드'를 만들어 이목을 끌기 위해서다. 실제로 앞서 문을 연 브그즈트 랩 2곳은 앱 내 스니커즈 리셀 거래액 성장에 착안해 기획됐다. 브그즈트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번개장터의 지난 9월 명품 거래액은 134억원이었다. 월 거래액의 1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번개장터는 향후 거래 트렌드 변화에 따라 브그즈트의 취급 상품군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브그즈트의 궁극적 목표는 번개장터의 신성장동력 마련이다. 가성비 중시 트렌드에 힘입어 중고거래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명품·패션 브랜드들이 공급량을 줄이고, 구매 가능 수량을 제한하자 리셀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 중고 의류 유통업체 스레드업에 따르면 전 세계 리셀시장은 오는 2025년 7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소비 시장이 정상화된다면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
이 경우 중고거래 플랫폼이 지속 성장하려면 차별화가 필요하다. 번개장터는 이를 '취향저격'에서 찾았다. 거래를 중개하는 것을 넘어 희소성이 높은 상품 거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번개장터는 이를 통해 트렌드에 민감하고 구매력 높은 소비자를 '록인(Lock-in)' 시킬 수 있다. 이는 추후 신사업 확장 등에 확실한 강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상품은 거래 단가도 높다.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 '번개페이'의 수수료 수익도 끌어올릴 수 있다.
당근마켓과는 다르다
번개장터의 전략은 이용자수 1위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과 사뭇 달라 눈길을 끈다. 당근마켓은 오프라인 접점 만들기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 대신 앱에 지역 소상공인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여전히 지역 시장 기반의 전략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지역광고 기반의 수익 모델도 번개페이 수수료로 수익을 내고 있는 번개장터와 다르다. 당근마켓은 간편결제 서비스 '당근페이'도 중고거래보다 앱 내 마켓에서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런 전략적 차이의 이유는 두 플랫폼의 '입지'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번개장터의 월간 사용자 수(MAU)는 340만명 가량이다. 이는 당근마켓의 4분의 1 수준이다. 당근마켓은 단독사용률도 80%에 달했다. 5% 수준의 번개장터를 압도한다. 당근마켓이 충분한 이용자 풀을 갖추고 있다면, 번개장터는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고객을 늘릴 필요가 있다. 따라서 브그즈트 등 고객 접점을 늘리는 전략이 효율적이다.
두 플랫폼이 중고거래를 활용하는 방식도 다르다. 당근마켓에게 중고거래는 사용자 확대 수단이다. 넓은 사용자 풀을 활용해 하이퍼로컬 플랫폼으로 변신하는 것이 목표여서다. 반면 번개장터에게는 중고거래가 핵심 사업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여야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때문에 타 중고거래 플랫폼과의 차별화 요소를 어필해야 한다. 브그즈트가 이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브그즈트 확대 등 번개장터의 다양한 시도는 대부분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하이퍼로컬 플랫폼을 노리는 당근마켓과는 사업 모델도, 미래도 다르다"며 "두 플랫폼 모두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