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플랫폼 발란이 오프라인 공략을 시작했다. 더현대서울 개점 이후 '핫플'로 떠오른 여의도가 첫 거점이다. 매장의 콘셉트는 온·오프라인의 장점을 결합한 '커넥티드 스토어'다.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을 오프라인으로 끌어와 고객 만족도를 높이겠단 구상이다.
명품 플랫폼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명품 플랫폼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다만 주요 명품 플랫폼은 한정된 명품 수요를 두고 출혈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 업계에선 발란이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충성 고객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온·오프라인 장점 결합…"커넥티드 스토어"
발란은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IFC몰에 '커넥티드 스토어' 1호점을 열었다. 지난 2015년 설립된 발란은 데이터와 재고관리를 기반으로 성장한 명품 전문몰(버티컬 플랫폼)이다. 머스트잇, 트렌비와 함께 국내 3대 명품 플랫폼으로 꼽힌다. 이번 매장은 온·오프라인의 장점을 결합, 심리스(Seamless)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파일럿 매장이다. 정식 개점을 하루 앞둔 지난 28일 오후 발란의 첫 오프라인 매장을 찾았다.
발란은 매장을 4가지 '멀티 포맷' 형태로 구성했다. 각 구역(조닝)을 △브랜드 로고 제품 '로고매니아' △신명품(컨템포러리) '트렌드럭셔리' △골프와 테니스 라인업 '스포티앤리치' △하이 럭셔리 브랜드 '메종발란'으로 나눴다. 기존 편집숍처럼 브랜드별로 제품을 진열하지 않고, 테마별로 제품을 묶은 게 특징이다.
매장에 들어서자 조닝마다 다른 분위기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발란 관계자는 "스토리로 브랜딩을 제안하고, 이로써 발란이 소비자에게 일종의 가이드인 인덱스(목차) 역할을 담당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매장의 콘셉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이다. 이를 가장 잘 구현한 것이 '스마트 피팅룸'이었다. 발란 매장 내 모든 제품엔 QR코드가 붙어있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제품의 정보나 구매 후기 확인은 물론 최저가 비교도 가능했다. 사실 여기까진 아주 새롭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무신사 등 최근 오프라인 실험에 나선 플랫폼이 앞다퉈 도입하는 기술이었다.
특별한 점은 '앱을 이용한 피팅'이었다. 피팅하고 싶은 제품의 QR코드를 스캔한 뒤 앱의 피팅 리스트에 담으면 매장 기둥에 커다란 QR코드가 나타난다. QR코드를 확인한 직원은 해당 제품을 찾아 피팅룸에 갖다 놓는다. 제품이 준비되면 고객에게 알람이 간다. 고객은 피팅룸에 가서 여러 벌의 옷을 입어볼 수 있다. 피팅룸에 설치된 '스마트 미러'로 사이즈나 제품 변경을 요청하면 직원이 그에 맞는 제품을 다시 가져다준다. 리테일 테크 기술로 피팅의 번거로운 과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셈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로 재미를 더했다. 피팅룸을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공간이 아닌, 스타일링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스마트 피팅룸은 피부 톤에 맞춰 조명을 바꿀 수 있고, 스마트 미러에 스티커나 해시태그도 붙일 수 있도록 조성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민감한 MZ(밀레니얼·Z)세대 소비자를 공략하기 충분해 보였다. 발란은 고객 정보를 기반으로 추천 제품을 제안하는 등 고객 맞춤형 서비스도 올해 안으로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명품 플랫폼이 '오프라인' 찾는 이유
지난해는 명품 플랫폼의 '전성기'였다. 명품 플랫폼 빅3(머·트·발) 모두 연간 거래액 3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들 명품 플랫폼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팬데믹 장기화로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명품 구매로 터져 나온 덕분이다. 또 모바일에 익숙하고 구매력을 갖춘 MZ세대가 명품 쇼핑 트렌드의 온라인 전환을 이끌었다. 웃돈을 주고 되파는 리셀 문화도 인기 상승에 보탬이 됐다.
그러나 최근 명품 구매 패턴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명품 시장 소비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품질과 신뢰도다. 가격이나 배송 속도 같은 서비스보단 정품 여부를 확인하려는 니즈가 강하다.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확인하고 사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실제로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백화점 3사의 지난 1분기 매출(1조6666억원)은 지난해(1조3297억원)보다 25.3% 늘었다.
여기에 체험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간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명품 플랫폼의 핵심 소비자층으로 떠오른 MZ세대에게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다. 이들은 구매보다 브랜드 경험을 중시한다. 이에 따라 패션 플랫폼의 오프라인 진출도 빨라지고 있다. W컨셉은 지난 3월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연 데 이어 최근 대구점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무신사도 이달 초 두 번째 플래그십 매장을 냈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12월 명품 플랫폼 최초로 오프라인 쇼룸을 마련했다.
발란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오프라인 공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발란 측은 온라인의 편리함을 오프라인으로 끌어오는 데 주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고 확인이 어렵고 비싼 오프라인의 단점과 배송이 길고 체험이 힘든 온라인의 단점을 개선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충성 고객까지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연구에 따르면 옴니채널(온·오프라인 연계)에선 단일 채널보다 재구매율이 23% 높게 나타났다.
오프라인, '충성 고객' 확보 열쇠될까
명품 플랫폼에 대한 업계의 전망은 엇갈린다. 주요 명품 플랫폼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발란의 거래액은 지난 2019년 256억원에서 지난해 3150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매출도 2019년 150억원에서 지난해 522억원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올 상반기 거래액은 381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 뛰었다. 지난해 연간 거래액을 6개월만에 20% 초과 달성한 셈이다. 6월말 기준 누적 모바일앱 다운로드 수는 420만건에 달했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600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수익성은 악화됐다. 발란은 지난해 18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 2019년과 2020년 영업손실은 각각 21억원과 64억원으로 매년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한정적인 명품 시장을 두고 명품 플랫폼이 출혈 경쟁을 펼치고 있어서다. 공격적인 '스타 마케팅'을 전개하면서 지난해에만 광고선전비로 191억원을 투입했다. 전년보다 450% 증가한 수치다. 업계에서는 명품 플랫폼 간 치열한 경쟁 탓에 이커머스식 적자 경쟁이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국 명품 플랫폼의 미래는 '충성 고객' 확보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을 장악해야 수익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명품 플랫폼의 경우 다른 이커머스보다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주요 브랜드는 독자적으로 온라인 사업을 진행할 만한 지배력을 갖췄다. 백화점은 SSG닷컴·롯데온 등 자사몰의 명품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도 명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명품 플랫폼 시장의 소비자는 언제든 신뢰도가 높은 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
업계에선 발란이 이번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지에 주목한다. 업계 관계자는 "연이어 터진 가품 논란과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자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국내 명품 플랫폼의 인기가 이전보다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오프라인 매장이 플랫폼의 신뢰도를 높이고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MZ세대 소비자를 록인(Lock-in)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