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가 체면을 구겼습니다. 네이버의 중고거래 플랫폼 크림과의 '에센셜 티셔츠' 짝퉁 공방전에서 완패했습니다. 상품 제조 브랜드 '피어오브갓'이 무신사가 판매한 제품을 짝퉁이라고 판정했습니다. 이에 무신사는 상품 착용 여부와 무관하게 200% 보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에센셜 등 관련 제품의 판매도 전면 중단했고요.
무신사는 이번 사태 초기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습니다. 공식 유통사에게 상품을 공급받고 있는 만큼 100% 정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크림을 공정위에 제소하는 등 법적 대응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품 감정은 브랜드사의 권한"이라며 크림을 자극하기도 했었죠. 크림도 강하게 반발하며 '강대강 대치'가 이어졌습니다. 그랬던 만큼 패배의 파장도 더 큰 모습입니다. 무신사는 어쩌다가 이런 처지가 됐을까요.
어찌 보면 무신사도 피해자로 볼 수 있습니다. 피어오브갓은 국내에 직접 진출한 브랜드가 아닙니다. 팍선·센스·미스터포터 등 공식 유통사 3곳을 통해 상품을 공급합니다. 무신사는 이 중 팍선에게 상품을 공급받았습니다. 계약 전 검수는 물론, 논란 이후 CCTV까지 살펴봤다고 해명했고요. 무신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팍선이 애초부터 정품이 아닌 상품을 공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신사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제대로 찍힌 셈이고요.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복잡합니다. 단순히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패션플랫폼 시장의 경쟁은 치열합니다. 무신사의 점유율이 가장 높지만, W컨셉·에이블리·지그재그 등도 규모를 키우고 있죠.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들도 꾸준히 패션 시장을 노크하고 있습니다. 이 시장의 핵심 경쟁력은 '브랜드'입니다. 하나라도 더 많은 브랜드를 유치해 '유행'을 만들어내야 플랫폼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시장은 매우 빠르게 변합니다. '신명품'이라 불리는 컨템포러리 브랜드가 수없이 론칭됩니다. SNS에서 갑자기 유행하는 브랜드가 나타나기도 하고요. 이들은 아직 규모가 작아 국내에 정식 진출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패션플랫폼이 이들을 직접 수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빠르게 유행이 식을 수 있어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경쟁에서 밀릴 수는 없으니 일단 팔아봐야 합니다. 상품을 떼다 파는 소규모 유통사를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 과정에서 '병행수입' 제품이 끼어들 여지가 있습니다. 병행수입은 정식 수입 대비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관세청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수출입통관 사무처리 고시'에 따르면 병행수입품은 상표권 침해 등의 사유만 없다면 누구나 들여올 수 있습니다. 사유를 정해둔 규정 또한 유권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합니다. 따라서 검증되지 않은 사업자라도 상품을 취급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짝퉁이 유통될 가능성도 높아질 테고요.
플랫폼들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신뢰도 제고를 위한 노력도 하고 있고요. SSG닷컴·발란 등은 NFT(대체불가토큰)을 활용해 보증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크림 등은 검수 과정에 위조지폐 판별에 쓰는 UV(자외선)라이트를 도입했고요. 다만 이는 완벽한 대책이 아닙니다. 유통사인 플랫폼이 모든 상품을 검증하기에는 인적·물적 인프라와 경험이 부족합니다. 반면 짝퉁 제조 기술은 갈수록 진보하고 있고요. 이번 사건이 무신사만의 일이 아닌 이유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플랫폼 시장이 커지며 브랜드 유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소비자 니즈도 다양하기 때문에 경쟁을 위해서라도 브랜드가 필요하다"며 "각 업체가 검수플랫폼을 인수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시장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100%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플랫폼이라도 이번 사건과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비판은 무신사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식 SNS게시물에 '짭신사'라는 비아냥 섞인 댓글이 달리고 있죠. 이는 무신사가 자초한 일입니다. 무신사는 사태 이후 보완책을 내놨습니다. 관세청 산하 무역관련지식재산보호협회(TIPA)와 협력해 검수체계를 마련하기로 했죠. 브랜드사와의 직접 협력도 강화키로 했습니다. 반면 공식 사과는 없습니다. 크림을 비판하던 공지사항만 스리슬쩍 사라졌을 뿐입니다. 소비자 불만은 여전한데 말이죠.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무신사가 낸 보도자료가 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 자료는 무신사·마켓컬리 등 '유니콘 플랫폼'이 개발자가 선호하는 직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신사가 배달의민족 출신 최고기술경영자(CTO)를 영입했다는 소식도 담겨 있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뜨악'할 수밖에 없었던 자료입니다. 홍보성 자료로 이슈를 묻어보려는 의도가 뻔히 읽히니까요. 사과는 물론 재발 방지 대책의 진정성까지 의심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무신사는 명실상부한 1위 패션플랫폼입니다. 지난해 거래액은 2조3000억원에 달합니다. 경쟁 플랫폼들의 거래액을 모두 더해야 무신사에게 간신히 견줄 수 있습니다. 인지도도 압도적입니다. 패션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무신사는 알고 있습니다.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다 무신사랑 해"라는 광고 문구는 여기저기서 밈으로 쓰이고 있고요. 무신사가 곧 패션플랫폼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무신사가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무신사의 신뢰도 훼손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패션플랫폼 전체에 대한 불신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아울러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실된 사과는 때로 도약의 계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 단순한 원리를 외면한다면 짭신사라는 꼬리표가 오랫동안 따라다닐 겁니다. 무신사가 시장의 리더다운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이는 리더의 '책임'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