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시장의 트렌드를 바꾼 코로나19의 위력은 지난해에도 여전했다. 가정간편식(HMR) 소비가 계속 늘고, 내식·혼술이 문화가 됐다. 이에 제과·HMR·라면 등 가공식품이 주력 분야인 기업 대부분의 매출이 늘었다. 식자재유통업계도 조금이나마 나아진 시장 환경과 비용 효율화에 성공하며 실적을 개선했다.
내실은 엇갈렸다. 많은 식품기업이 매출 성장에도 영업이익은 줄어들었다. 가격인상으로도 원자재·물류비 등 비용 폭등의 영향을 상쇄시키지 못했다. 주류업계의 명암도 엇갈렸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업종이었던 라면업계는 성장세가 꺾였다. 원가 상승은 물론, 지난해 역대급 호실적에 따른 역기저효과도 작용했다.
그럼에도 식품업계의 올해 전망은 밝다는 분석이 많다. 업계가 코로나19로 바뀐 시장 상황에 이미 적응했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해외시장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K-푸드가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K-푸드, 어쨌든 스마일
식품업계 맏형 CJ제일제당(대한통운 제외)의 지난해 매출은 15조7444억원, 영업이익은 1조1787억원이었다. 매출은 전년대비 11.2% 늘며 15조원의 벽을 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3.2% 증가했다. 바이오사업부문의 급성장 속 식품사업부문의 내공도 빛났다.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9조5662억원, 영업이익은 5547억원이었다. 각각 전년대비 6.7%, 8.8% 늘어난 수치다. 비비고 등 HMR제품의 판매 호조와 해외사업 성장이 실적을 이끌었다.
동원F&B도 호실적을 거뒀다. 동원F&B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3조4909억원, 영업이익 1302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대비 10.11%, 11.94% 늘었다. HMR사업의 호조 속 식자재 계열사 동원홈푸드의 매출이 늘어난 데 힘입었다. 풀무원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대비 9% 끌어올렸다. 다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8% 줄어들었다. 물류비 부담으로 해외법인의 이익이 줄어든 영향이다.
제과 선두 오리온은 아쉬움을 남겼다. 오리온의 매출은 전년 대비 5.8% 증가한 2조3594억원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0.9% 줄어든 3729억원이었다. 판관비·물류비 증가에도 주요 제품 가격을 동결한 결과다. 음료·주류업계의 명암은 엇갈렸다. LG생활건강 음료부문 매출은 전년대비 5.2% 늘었다. 롯데칠성음료도 주류부문을 흑자전환시키는 등 호실적을 거뒀다. 반면 소주 비중이 높은 하이트진로는 유흥시장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식자재유통업계도 반등했다. 급식시장 상황이 다소나마 나아진 가운데, 비용 효율화에도 성공하면서다. 특히 CJ프레시웨이의 실속이 돋보였다. CJ프레시웨이는 지난해 매출 2조2914억원, 영업이익 55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이 전년대비 7.6% 줄었음에도 흑자전환했다. 신세계푸드는 매출·영업이익을 각각 전년대비 7.5%, 278.6% 끌어올리며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현대그린푸드는 매출 증가에도 영업이익이 줄었다. 소비재 시장 공략 등 신사업 투자에 따른 결과다.
라면 전성시대 끝? 주요기업 모두 '주춤'
반면 라면업계는 부진한 지난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가격인상 카드도 소용없었다. 농심의 지난해 매출은 2조6630억원, 영업이익은 1061억원이었다. 매출은 전년대비 0.9% 늘어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33.8%나 줄었다. 라면·스낵 등 핵심 제품 판매량이 정체를 겪었다. 같은 기간 오뚜기는 연결기준 매출을 5.5% 끌어올리며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다만 농심과 마찬가지로 영업이익은 16.6% 줄었다. 삼양식품은 매출·영업이익 모두 줄어들며 쓴맛을 봤다.
업계에서는 2020년의 역기저효과를 저조한 실적의 이유로 꼽는다. 실제로 2020년은 라면업계의 황금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소비자들이 생수·라면 등 비축식품 사재기에 나섰다. '짜파구리'가 등장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라면을 새롭게 즐기는 방법도 주목받았다. 이에 힘입어 대부분 라면업체가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때문에 지난해 실적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대외환경 악화의 영향이 더 컸다는 분석도 많다.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며 집밥 트렌드가 정착됐다. 식품업계가 이를 겨냥해 양질의 HMR제품도 쏟아냈다. 자연스럽게 라면 등 비축식품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게다가 코로나19에 따른 원자재가격 상승도 지난해부터 현실화됐다. 라면의 주원료인 팜유·밀가루 가격이 폭등했다. 생산지 노동 시장 마비로 물류비까지 크게 올랐다. 가격인상만으로 이를 상쇄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미래는 밝다
업계에서는 식품업계가 올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코로나19 이후 HMR 등 카테고리가 주요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건강기능식품 등 새로운 시장도 떠올랐다. 소비자 물가 폭등으로 라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시장 구조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식품업계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가 불러온 변화에 대응해 제품·사업구조를 개편한 바 있다. 이 효과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 단행된 가격인상의 효과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된다. 영업이익이 개선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아울러 K-콘텐츠의 세계적 유행으로 국내 식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를 겨냥한 식품업계의 해외 진출 시도도 활발하다. 주요 식품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해외 개척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국내 식품시장이 정체되더라도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결과만 놓고 보면 코로나19는 식품업계에게 위기라기보다 기회였다. 대부분 기업이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 바뀐 시장에 적응하고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며 "올해는 가격인상 효과 등도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니 수익성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 시장 규모에 한계가 있는 만큼, 매출을 더 성장시키려면 해외를 비롯한 신시장을 꾸준히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