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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남아돈다는데 왜? '우유값 상승 미스터리'

  • 2022.11.17(목) 07:40

수요 감소에도 꾸준히 오르는 가격에 '갸우뚱'
원유 가격 연동제→용도별 차등가격제로 개편
생산 과잉 시 생산비 증가액 마이너스 반영 가능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얼마 전 우유 가격이 또 올랐습니다. 우유 한 팩(1ℓ) 가격은 지난해 200원, 올해 500원 가까이 올라 이젠 거의 3000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 사이에선 원성이 자자합니다. 우유가 남을 정도로 문제라는데 왜 가격이 오르냐는 겁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지적입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결정되니까요. 수요가 줄면 가격이 내려가는 게 '상식'입니다. 

하지만 우유 가격은 반대입니다. 수요가 줄어드는데 가격이 오르는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국내 원유(原乳) 가격이 어떤 구조로 결정되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원유'는 우유와 유제품을 만드는 원료입니다. 사실 이 원유 가격은 100%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낙농진흥회라는 곳에서 정합니다. 낙농업계, 유가공업체, 정부가 함께 만든 단체죠. 

이들은 '원유 가격 연동제'를 기준으로 원유 가격을 정합니다. 낙농업계와 유가공업체의 협의를 거쳐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최종 결정하죠. 원유 가격 연동제는 말 그대로 원유 가격을 낙농가의 생산비 증감에 따라 정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시장의 물가 상황도 일정 부분 반영됩니다. 

제도 취지는 낙농가의 '원유 가격 보장'입니다. 납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는 낙농업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낙농업은 단기 생산조절이 어렵습니다. 원유는 살아있는 젖소에서 얻죠. 기계처럼 자유로운 수급 조절이 불가능합니다. 젖소는 한 번 젖을 짜기 시작하면 1년 365일 같은 양을 짜야 합니다. 여기에 저장성마저 떨어집니다. 이 때문에 수급 불균형이 다른 상품보다 심합니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이를 방지하려 했던 것이 원유 가격 연동제입니다. 원유 가격 연동제가 도입된 것은 2013년입니다. 당시 낙농업이 구제역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 때죠. 젖소 사육 마릿수가 급감하고 우유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낙농업자들의 고충이 커지면서 우유 가격이 폭등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농가의 생산비를 보전해 줄 방안이 필요했던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한 번 가격이 정해지면 시장 수요와 상관없이 같은 가격이 계속 유지됩니다. 하지만 우유의 소비는 계속해서 줄고 있죠. 우유의 주 소비층인 영유아 수가 감소하고 있고요. 예전처럼 우유가 완전식품으로 취급받던 시절도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01년 36.6㎏에서 2021년 32.0㎏으로 줄었습니다.

팔리지 않는 우유가 남아도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유 가격은 내려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매년 매입 가격을 올려주는 원인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우유 가격이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겁니다. 가격 폭등을 우려한 정책이 도리어 가격 인상의 원인이 된 셈입니다.

특히 한국 농가는 대농장이 많은 미국, 유럽에 비해 영세합니다. 생산비가 높아질지언정 낮아지기는 힘듭니다. 실제로 한국 농가의 생산 단가는 높은 편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한국 원유 가격의 상승률은 72%에 달했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의 상승률은 10%대였죠. 특히 농가 입장에서 생산비를 굳이 낮출 이유가 없습니다. 매입가가 '보장' 되니까요.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비판이 커지자 최근 정부는 원유 가격 연동제를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원유 가격의 인상이 다른 유제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겁니다. 우유와 빵 등의 가격이 오르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계속되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정부는 내년부터 원유 가격 연동제 대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큰 골자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해 각기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겁니다. 음용유는 마시는 우유를 뜻하고요. 가공유는 유제품을 만드는 우유입니다. 특히 원유의 생산이 과잉일 경우 생산비가 증가해도 원유가를 인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최대 생산비 증가액의 마이너스(–)30%까지 가능합니다. 

차등가격제의 초점은 음용유보다 가공유입니다. 국내 유가공업체는 국내 가공유 가격이 높아지자 값싼 수입산 가공유의 사용 비중을 높여왔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원유 수요는 더 감소했죠. 정부는 차등가격제로 국내 가공유의 가격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렴한 수입산 가공유를 상대로 유가공업체와 낙농업계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입니다. 

특히 2026년부터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과 유럽산 우유가 무관세로 들어올 예정입니다. 각종 수입 유제품이 저가로 밀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국내 우유 가격이 지금처럼 비싸다면 수입 유제품과 경쟁이 힘들 겁니다. 차등가격제는 이를 대비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합니다.

소비자가 궁금한 점은 일반 '흰 우유'의 가격 인하 여부일 겁니다. 다만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앞서 낙농진흥회는 원유의 기본가격을 1ℓ당 49원 인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년 1월부터 음용유 가격은 996원이 되고요. 가공유 가격은 1ℓ당 800원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원유 가격 연동제' 도입 이래 사상 최대 수준입니다. 앞서 우유 업체들이 가격을 올렸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원유 가격에 차등가격제 효과가 나타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아직 유제품의 가격 인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흰 우유는 높은 가격을 유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료 등 원부자재 가격이 오르는 것도 변수죠. 차등가격제는 낙농업계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우유 가격까지 낮출 수 있을까요. 다가올 미래를 함께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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