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마트 우유 코너에 가면 예전엔 보지 못했던 제품들이 매대 한 켠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우유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식물성 대체유다. 유당불내증으로 우유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물론 친환경적인 측면에서 더 우수하다는 이유로 인지도가 부쩍 높아졌다.
매일유업과 CJ제일제당, 남양유업, 동원F&B 등 주요 식품 기업들도 식물성 대체유 시장을 눈여겨보고 잇따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대체유의 인기가 확인된 만큼 국내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요새 '핫'한 그 이름 '대체유'
식물성 대체유는 소의 젖으로 만든 우유를 대체해 마시는 식물성 음료다. 맛과 향이 우유와 비슷해 우유의 대체재로 쓰인다. 그래서 이름도 식물성 대체유다. 서양에서는 주로 오트(귀리)나 아몬드를 이용해 대체유를 만든다. 오트나 아몬드를 찌거나 볶은 뒤 갈아낸 분말을 물과 섞어 만드는 음료다. 반면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쓰이는 코코넛밀크는 코코넛 과육을 짜 즙을 내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전체 대체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아몬드유가 차지하고 있다. 오트밀크 비중은 9% 수준이다. 하지만 성장세가 높아 2020년에만 250% 이상 성장했다. 유럽에서는 반대로 오트밀크가 대세다. 전체 대체유 시장의 42%가 오트밀크다.
아몬드유나 오트밀크라고 하면 우리에겐 낯설지만, 한국에도 널리 이용되는 대체유가 있다. 바로 두유다. 현재 국내 식물성 음료 시장은 약 7000억~8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중 6000억원가량이 두유 시장이다. 아몬드 대체유 시장은 수백억원대에 불과하며 오트밀크는 이제 발을 디딘 수준이다. 두유가 국내에서 우유의 대체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립적인 음료 카테고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국내 대체유 시장은 이제 시작 단계다.
식물성 대체유 대세는 '오트밀크'
기업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식물성 대체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매일유업이다. 매일유업은 지난 2015년 식물성 대체유 '아몬드 브리즈'를 들여와 제조·판매, 일찌감치 식물성 대체유 시장을 선점했다. 매출 규모만 1000억원에 가깝다. 최근에는 오트를 이용해 만든 자체 식물성 대체유 브랜드 '어메이징 오트'를 내놓고 오트밀크 시장 공략에 나섰다.
매일유업은 서울 대표 '핫플' 성수동에 오는 8일 팝업스토어를 연다. 식물성 대체유 '어메이징 오트'를 소개하는 공간 '어메이징 오트 카페'다. 이곳에서 어메이징 오트를 활용한 음료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오트밀크 외에도 오트를 활용한 다양한 비건 식음료를 선보여 소비자들이 오트라는 생소한 식재료를 친근하게 여길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매일유업은 어메이징오트를 식물성 대체유의 대표 주자로 키울 계획이다. 두유의 경우 특유의 향 때문에, 아몬드유는 맛 때문에 우유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트는 우유와 맛과 질감이 비슷해 우유를 마시는 소비자들이 오트밀크로 전환하는 데 큰 부담이 없다는 설명이다.
어메이징오트는 우유와 비슷한 질감을 내기 위해 경쟁사 대비 4분의 1 수준인 2㎛까지 입자 크기를 줄여 식감을 개선했다. 파우더·페이스트를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기존 오트밀크 제품과 달리 핀란드산 오트를 껍질 째 가져와 가공했다. 오트밀크를 찾는 소비자가 친환경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만큼 팩과 빨대를 모두 종이로 제작하고 비건 인증도 받았다.
성은경 매일유업 식물성사업본부 상무는 "어메이징오트는 식물성 음료에 대한 니즈는 있지만 기존 두유나 아몬드유에 만족하지 못하던 소비자들을 위해 개발한 제품"이라며 "식물성 음료에 대해 잘 모르거나 거부감이 있는 소비자, 식물성 음료는 맛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타깃"이라고 말했다.
대체유 경쟁자는
국내 대체유 시장의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현재 눈에 띄는 대체유 브랜드의 상당수는 외국 브랜드 제품이다. 이 중에도 싱가포르산 오트밀크 브랜드인 '오트사이드'는 힙한 디자인과 맛으로 2030 힙스터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이미 더벤티, 커피빈 등에서 오트사이드와 손잡고 오트밀크 메뉴를 내놓는 중이다.
스웨덴제 오트밀크 '오틀리'는 오트밀크 시장의 큰 손이다. 오프라 윈프리, 나탈리 포트만, 하워드 슐츠 등이 오틀리에 투자했다. 지난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해 현재 시가총액이 2조원이 넘는다. 국내에는 동서가 지난 2020년부터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이 밖에도 영국의 루드헬스, 릴크, 마이너피겨스 등의 브랜드가 수입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신규 브랜드 '자연이 답'을 통해 식물성 대체유를 출시했다가 시장에서 철수했던 남양유업은 지난달 캘리포니아산 아몬드로 만든 대체유 '아몬드데이'를 출시하며 재도전에 나섰다. 3년 사이에 대체유 시장이 크게 성장한 만큼 시장에서도 반응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몬드 음료 특유의 밍밍하고 심심한 맛을 개선하기 위해 아몬드의 맛을 최적으로 살리는 로스팅 공법으로 향과 풍미를 더욱 고소하게 살렸다는 설명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 6월 식물성 대체유 사업 전문 브랜드 '얼티브(ALTIVE)'를 론칭했다. 얼티브는 CJ제일제당의 식품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브랜드다. 현미와 완두콩 단백질로 만들었고 유럽 비건 인증인 'V라벨'을 획득한 비건 음료다. 동원F&B도 지난해 말 '그린 덴마크 아몬드·귀리 2종'을 통해 대체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체유 시장 미래는
식품업계에서는 국내 대체유 시장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잠재 수요가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유당불내증을 겪는 인구가 많다. 국내에서도 2명 중 1명 이상이 유당불내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식생활의 서구화, 카페라떼의 대중화 등의 이유로 우유를 접하는 기회가 적지 않다. 식물성 대체유가 각광받는 이유다.
최근 식품업계의 글로벌 트렌드인 친환경과 윤리적 소비도 식물성 대체유의 성장과 무관치 않다. 우유를 얻기 위해 암소에게 수유 촉진제나 호르몬제를 투입하고 좁은 공간에서 사육하는 것을 대체유 소비를 통해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유는 탄소발자국(제품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 감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오트는 재배 시 물과 토지가 적게 드는 '친환경 곡물'로도 알려져 있다.
업계에선 현재 7000억~8000억원 규모인 식물성 음료 시장이 2025년에는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성장의 중심에는 오트밀크와 아몬드유가 있다. 두유 시장이 정체하는 사이 새로운 식물성 음료 트렌드를 이끄는 오트와 아몬드가 시장 성장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아몬드유는 벌써 1000억원대 시장을 형성했다. 시장 초기 단계인 오트밀크도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성은경 매일유업 상무는 "나중에는 오트밀크 시장이 아몬드유 시장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우유를 더이상 마시지 않는 소비자들이 다양한 대체유를 통해 다시 시장에 유입되며 대체유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