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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과징금 받은 쿠팡, '허위 가격 발주' 원인은 '집안 싸움'

  • 2024.02.27(화) 06:40

내부 부서간 '가격 정보 유출' 막으려다
견적서·발주서에 다른 가격 적어 논란
쿠팡 "피해자 없는데 과징금 수준 과도"

쿠팡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또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이번에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제조하는 하청업체와의 계약서에 허위 가격을 적었다는 이유다. 쿠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쿠팡의 내부 싸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한다.
하청업체 발주서에 '허위 가격' 적은 쿠팡

공정위는 지난 22일 쿠팡과 쿠팡의 PB사업 계열사 CPLB(씨피엘비)에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78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쿠팡은 2019년 3월부터 2022년 1월까지 218개 하청업체에게 PB상품 제조를 위탁하면서 실제와 다른 허위 하도급 단가를 기재한 발주서를 발급했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게 제조 위탁을 하면서 허위 사실을 기재한 서류를 발급한 경우 하도급법 위반에 해당한다.

쿠팡과 CPLB가 이 기간 실제 계약보다 높거나 낮은 허위 단가를 기재해 발주한 건수는 3만1405건, 발주금액은 1134억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익명의 제보를 받아 관련 조사를 벌이다 이 같은 내용을 적발했다. 

쿠팡과 CPLB는 견적서에 실매입가를 기재해 그에 따른 대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발주서에는 허위 가격을 적었지만 견적서에는 실제 가격을 적었고 견적서에 적힌 대금을 하청업체에 지급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전에 하청업체들과 협의를 거쳤고 하청업체 측도 실매입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게 쿠팡 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견적서가 하청업체의 의사 표시에 불과하고, 실제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가 발주서라는 점을 고려해 쿠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하나 공정위 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 제조하도급과 과장은 "쿠팡에 대해 하도급 관련 불공정행위가 있다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며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일반적인 조사를 하다가 서면 계약이 불완전한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매입·PB 조직 경쟁시킨 쿠팡

하청업체 측과 이미 합의가 다 된 상황이라면서 쿠팡이 발주서와 견적서에 가격을 다르게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쿠팡 측은 "하청업체 보호를 위해 하청업체의 핵심 경쟁력인 상품 단가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합의한 임시가격을 기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하청업체를 위해 가격을 숨겨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의미다.

쿠팡이 가격의 유출을 막기 위해 허위 가격을 기재한 이유는 바로 쿠팡의 독특한 구조에 있다. 쿠팡은 기업들로부터 NB(National brand)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한편 가격 경쟁력이 높은 PB(Private brand) 상품도 판매하는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 

쿠팡은 PB 사업부문을 지난 2020년 7월 별도 계열사로 물적분할, 자회사 CPLB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유통업체들은 NB와 PB 조직이 한 회사 내에 있지만 쿠팡은 NB를 직매입하는 조직과 PB 조직이 별도의 회사로서 서로 경쟁하도록 한 것이다.

다수의 하청업체들은 쿠팡에 자사 NB 상품을 공급하는 동시에 쿠팡 브랜드를 단 PB 제품을 위탁 제조해 납품한다. 같은 회사에서 제조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NB 상품의 가격이 더 높다. 만약 NB를 담당하는 직매입 부서가 PB 공급단가를 알게 되면 자신들에게도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서로에게 가격을 숨기기 위해 발주서의 가격을 허위로 적은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NB와 PB를 분리한 유통업체는 아마 쿠팡 외에 없을 것"이라며 "NB와 PB 조직이 한 하청업체에게 서로 가격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게 되면 하청업체 입장은 난처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NB 제품을 공급 받는 것도 중요하고 동시에 PB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NB 담당 부서와 PB 담당 부서가 서로 내부에서 조율하고 협력해 적당히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쿠팡, 공정위와 대립각

쿠팡은 '피해자가 없는 사안에 과징금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쿠팡 측은 "합의한 임시가격을 기재하고 별도로 합의된 서면을 작성한 것을 '허위가격 기재'라고 형식적으로 판단한 공정위의 결정에 불복,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공정위는 '계약서를 잘못 쓴 것은 엄연히 법 위반'이고 이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업계에서는 소송에 들어 자원과 비용을 생각했을 때 쿠팡이 계속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 공정위와의 대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쿠팡이 공정위와 법정 다툼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정위는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쿠팡이 LG생활건강 등 납품업체에게 '갑질'을 해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법을 위반한 혐의로 2021년 약 3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쿠팡은 납품업체들에게 경쟁 온라인몰 판매가를 올렸고 마진 손실을 보전 받기 위해 광고를 강매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당시 쿠팡이 "순손익이 나지 않는 회사 구조를 과징금 산정에 고려해달라"고 요청하자 공정위가 과징금을 절반으로 낮췄고 고발 조치도 하지 않는 등 '선처'를 했다. 그럼에도 쿠팡은 이 결정에 대해 불복 소송을 냈고 이달 초 고등법원은 쿠팡의 손을 들어줬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수년째 공정위를 포함한 외부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데 최근 들어 더 강하게 반격하고 있다"며 "자사 사업 모델을 철저히 변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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