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차별화된 기술력, 감각적인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 고유의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K뷰티 브랜드들이 있다. 이에 K뷰티 흥행 주역들을 직접 만나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 시장을 압도할 수 있는 비결을 생생히 들어본다. [편집자]
동물성 원료와 동물 실험을 배제한 '비건 뷰티'가 K뷰티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비건 화장품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많은 비건 브랜드들이 스킨케어 제품 중심으로 깨끗한 분위기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재미'와 '컬러'를 앞세워 차별화에 성공하며 잘파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 '비건 앤 웰니스' 브랜드를 표방하는 '어뮤즈(AMUSE)'다.
어뮤즈는 2018년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론칭한 색조 브랜드다. 지난해 10월 신세계인터내셔날에 인수됐다. 트렌디한 디자인과 독보적인 상품 기획력을 앞세워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북미에서도 큰 인기다. 특히 제품을 '굿즈'처럼 만들면서 젊은 세대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 상반기에는 매출 322억원, 영업이익 30억원을 달성하며 설립 이래 최대 실적도 갈아치웠다. 한소담 어뮤즈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리드와 박가나 어뮤즈 제품개발 리드를 만나 잘파세대를 사로잡은 어뮤즈만의 차별화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즐겁게 태어난 제품
어뮤즈의 브랜드명은 '즐겁게 하다'라는 영어 단어 뜻 그대로의 브랜드 철학을 담고 있다. 한소담 리드는 "즐겁게, 행복하게 만들어진 제품이 소비자에게도 즐거운 에너지와 행복을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어뮤즈가 되기까지는 한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브랜드 초창기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공주' 느낌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하지만 어뮤즈는 2020년쯤 비건 키워드를 앞세우며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단행했다. 박가나 리드는 "당시 소비자들은 가치 소비를 중시하고 그것이 자기 개성이 되기 시작하던 때였다"며 "대중성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동시에 지향하는 매스티지 브랜드로서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즐겁게 태어나다'라는 브랜드 철학과 맞물려 선택한 키워드가 비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어뮤즈는 전형적인 비건 브랜드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박 리드는 "많은 비건 브랜드가 차분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내세우지만 어뮤즈는 비건 철학을 지키면서도 컬러풀하고 재미있게 풀어내고자 했다"면서 "패키지와 디자인, 색감 등에서 전형적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한 리드는 "어뮤즈는 비건 뷰티에 그치지 않고 비건과 웰니스를 함께 강조하고 있다"며 "화장품을 넘어 나의 일상, 건강 등 전반적인 것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비건 뷰티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브랜드의 모델(앰배서더)로 인기 K팝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을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한 리드는 "장원영 씨는 예쁜 것뿐만 아니라 긍정적이고 활기찬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서 "서울을 베이스로 해 트렌드를 리드하는 당당한 여성상, 즉 '어뮤즈걸'을 다른 뷰티 브랜드와 차별점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차별화'
어뮤즈가 제품 개발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차별화'다. 박 리드는 "제품의 텍스처, 컬러, 제품 네이밍, 패키지 디자인 전반에 걸쳐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출시된 '듀 틴트'다. 현재도 어뮤즈를 대표하는 제품이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가장 먼저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다.
이 제품은 촉촉한 타입의 립 제품의 무겁고 끈적이는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수차례 제형을 수정했다. 박 리드는 "듀 틴트는 물과 오일이 섞여 있는 유화틴트 제품인데 오일이 많이 들어갈수록 사용감이 무거워진다"며 "수분 함량을 35%로 늘려서 산뜻한 사용감을 내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당시 일반적인 틴트 제품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함량이라고 박 리드는 설명했다.
어뮤즈는 제품 이름에서도 차별화를 꾀했다. 인기 색상인 복숭아 색상 제품의 경우 영문 표기를 'peach'가 아닌 'boksoonga'로 하는 식이다. 듀 틴트가 출시될 당시만 해도 한글 발음을 그대로 살려 표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박 리드는 "최근에는 K푸드, K뷰티 등 해외에서도 한국 문화가 인기가 높아 한글 발음대로 적는 경우가 많은데 어뮤즈는 이를 수년 전부터 시도해왔다"면서 "한글 발음을 그대로 살려서 해외 고객들도 K뷰티 브랜드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뮤즈의 또 다른 차별화 전략은 패키지에 숨어있다. 다른 화장품 브랜드들이 프리몰드(미리 제작된 금형)로 패키지를 만드는 것과 달리 어뮤즈는 패키지 금형 개발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박 리드는 "제품 패키지는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첫 인상을 주는 중요한 관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떻게 하면 패키지 디자인에서부터 차별화 해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듀 틴트의 '꽃캡'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꽃캡은 어뮤즈를 상징하는 데이지 꽃이 달린 뚜껑이다. 이외에도 어뮤즈는 키링(열쇠고리) 형태나 반지 형태의 립밤, 폴더폰 모양의 립앤치크 등 다양한 형태의 패키지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어뮤즈의 투명 패키지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대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어뮤즈의 많은 제품들은 일반 용기에 투명한 유리를 한겹 덧씌운듯한 느낌을 주는 투명 패키지를 쓴다. 박 리드는 "클린과 비건을 키워드로 나 자신을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메이크업을 지향하기에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고민했다"면서 "그 답이 바로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투명성'이었다"고 말했다.
투명 패키지 구현은 쉽지 않았다. 안이 들여다 보여 접착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리드는 "접착제를 쓰지 않고도 내구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며 "수차례 금형 수정과 CT 테스트를 거치면서 투명성은 확보하면서도 내용물이 변색되지 않도록 개선해나갔다"고 설명했다.
더 즐겁게 더 재미있게
이런 어뮤즈의 독특한 패키지는 단순히 눈길을 끄는 요소에만 그치지 않는다. 젊은 고객들의 즐길거리로도 활용되고 있어서다. 어뮤즈의 제품들은 Y2K 트렌드와 '백꾸(가방 꾸미기)' 열풍에 맞물려 젊은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고객들은 어뮤즈의 투명 패키지 쿠션에 스티커를 붙여 꾸미는 '쿠꾸(쿠션 꾸미기)'를 즐긴다. 또 어뮤즈의 틴트 제품을 키링으로 만들어 가방에 달고 다니기도 한다. 단순한 화장품을 넘어 '놀이'이자 '문화'가 된 셈이다.
박 리드는 "단순한 화장품을 넘어서 패션 아이템처럼 연출을 할 수 있는 '투고 뷰티'를 콘셉트로 한다"면서 "소비자의 일상 속에서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뷰티 경험을 더욱 재미있고 특별하게 만드는 장치가 됐으면 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어뮤즈는 이런 재미 요소를 콜라보(협업) 마케팅에서도 찾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온 산리오 캐릭터들과의 콜라보는 고객들로부터 '어뮤즈는 콜라보 장인'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어뮤즈는 지난해 8월 '헬로키티' 50주년을 기념한 콜라보로 옛날 폴더폰 형태의 립앤치크 제품을 내놨다. 이 제품들은 최근 Y2K, 레트로 트렌드에 힘입어 큰 인기를 끌었다. 첫 번째 협업이 성공을 거두자 산리오가 먼저 두 번째 협업을 제안해왔다. '마이멜로디', '쿠로미' 등 인기 캐릭터 협업 제품도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다.
한 리드는 "단순하게 패키지에 캐릭터만 입히는 게 아니라 별도로 제품을 기획해 하나하나 스토리를 담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출시된 '태닝 헬로키티'가 대표적이다. 태닝 헬로키티는 괌, 하와이 등 일부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캐릭터다. 어뮤즈는 산리오와 함께 어뮤즈 제품에 맞춰 태닝키티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키티의 갈색 피부를 어뮤즈의 대표에 컬러에 맞춰 조정하는 식이었다. 또 태닝키티가 듀 틴트를 들고 있는 아트워크 등도 별도로 제작했다. 여기에 바캉스 분위기를 내는 캐리어 형태의 세트 상품도 선보였다.
어뮤즈는 오프라인 매장과 팝업스토어에서도 재미 요소를 더하고 있다. 2023년 더현대서울 팝업스토어에서 패션 브랜드 노우웨이브와 함께 힙 크림(엉덩이 케어 크림)을 내놓은 것 역시 이런 사례다. 한 리드는 "'힙하다'는 뜻과 엉덩이의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재미있게 표현하고 엉덩이 형태의 '히피' 캐릭터도 만들었다"며 "팝업에 와서 브랜드 제품들만 보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경험도 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도 사로잡은 어뮤즈 컬처
어뮤즈는 이런 전략으로 해외의 잘파세대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의 경우 현재 방문객의 80%가 일본, 중국 등에서 온 외국인이다. 어뮤즈가 가장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일본이다. 2019년 일본에 진출한 어뮤즈는 현재 버라이어티숍, 드럭스토어 등 3000여 개 매장에 입점해 있다. 어뮤즈는 일본에서 현지 맞춤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박 리드는 "일본 고객들이 좋아하는 누디한 핑크, 브라운 컬러 등 전용 컬러를 많이 개발한다"면서 "본품과 똑같이 생긴 미니 틴트 등 일본 한정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방식도 다르다. 한 리드는 "일본은 한국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정보 전달이 중요하고, 뷰티 매거진과 오프라인 매장 의존도가 아직 크다"며 "최근에는 일본에서 오프라인 접점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뮤즈는 일본 외에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러시아 등 약 380개 해외 매장에 입점해 있다. 북미에서는 아마존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어뮤즈는 앞으로 해외 진출을 더욱 가속화 할 계획이다. 4분기에는 동남아, 유럽 등에서 주요 리테일과 협업해 B2C 채널을 확장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본격적인 북미 개척에도 나선다. FDA 규제를 준수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한편 해외 소비자를 타깃으로 색상 선택의 폭도 넓힐 예정이다. 이를 위해 어뮤즈는 최근 사명을 기존 어뮤즈에서 '어뮤즈코리아'로 변경했다. 한 리드는 "회사명과 브랜드명을 분리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어뮤즈가 K뷰티의 중심 브랜드라는 입지를 확고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어뮤즈의 궁극적인 목표는 색조 브랜드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도약이다. 어뮤즈는 이미 헤어미스트, 핸드크림, 바디미스트 등 웰니스 라인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한 리드는 "K뷰티라는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문화를 생성하는 광범위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어뮤즈의 아이덴티티를 더 확고하게 다질 수 있는 포트폴리오 확장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