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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자르기냐 살리기냐 이것이 문제로다

  • 2014.03.13(목) 17:46

KT ENS 법정관리 신청…은행은 부글부글 신평사는 호들갑
'대기업이면 OK' 안일한 대출심사·신용평가 관행도 도마

3000억 원대 대출 사기의 진원지인 KT ENS가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꼬리 자르기’ 논란을 낳고 있다.

대주주인 KT만 바라보고 있던 은행들은 꼼짝없이 돈을 떼이게 생겼다. 역시 KT만 믿고 신용등급을 후하게 매겼던 신용평가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11년 LIG건설 사태 이후 대기업 계열이면 쉽게 돈을 빌려주고 또 좋은 신용등급을 매기던 관행을 고치겠다면서 요란을 떨었던 금융당국도 머쓱해졌다.

◇ 은행들은 부글부글…신평사는 호들갑

KT ENS가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대출 사기의 책임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이던 은행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은행들은 KT ENS가 빌린 돈을 갚지 않기 위해 ‘꼬리 자르기’ 식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면서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KT ENS의 100% 대주주인 KT에 대한 배신감도 묻어난다.

신용평가회사들도 호들갑이다. KT ENS는 물론 KT와 KT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하겠다면서 분주하다. KT가 계열사 꼬리 자르기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KT스카이라이프와 KT캐피탈 등 다른 계열사의 신용등급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KT ENS는 오히려 은행권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대출 사기 사건 이후 금융권이 대출과 만기연장을 피하면서 자금난에 내몰렸고 어쩔 수 없이 법정관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KT는 KT ENS의 자금지원 요청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선 긋기에 나섰다. 여기엔 황창규 신임 KT 회장의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이석채 전임 회장이 벌여놓은 일에 괜히 발을 담가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부실 계열사 지원…이러지도 저러지도

사실 대기업의 부실 계열사 지원은 뜨거운 감자다.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면 부당 지원과 배임 논란에 시달릴 수 있고, 그냥 내버려두면 꼬리 자르기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서다.

만도는 대표적인 부당 지원 사례로 꼽힌다. 만도는 지난해 4월 비상장 자회사인 마이스터(현 한라마이스터)가 실시한 3786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 돈은 고스란히 만도의 모회사인 한라건설로 흘러들어 갔다. 만도는 부실에 빠진 한라건설을 우회 지원했다는 비판과 함께 주가가 급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화그룹 역시 그룹이 나서 부실 계열사를 지원했다가 김승연 회장이 최근 부당 지원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현대엘리베이터도 현대상선의 부실에 따른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LIG건설은 대표적인 꼬리 자르기 사례로 꼽힌다. 특히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대규모 기업어음(CP)을 발행해 경영진이 사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그룹도 꼬리 자르기란 비판을 면치 못했다.

◇ 안일한 대출심사•신용평가 관행 점검 필요

꼬리를 자를 지 살릴 지는 전적으로 최고경영자가 판단할 몫이다. 일반적으로 재벌 오너들은 어떻게든 꼬리를 살리려고 애를 쓴다. 공기업 성격을 가진 KT는 다른 케이스다. 특히 새롭게 회장에 취임한 황창규 회장은 부실 계열사 지원으로 추가로 재무 부담을 떠안으면서 배임 논란에 휘말릴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돈을 빌려준 은행과 신용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사를 비롯한 금융권이다. 금융권은 사실 이번 대출 사기에 따른 피해자들이다. KT ENS 직원과 협력사들의 속임수에 깜박 넘어간 만큼 피해를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

반면 피해자인 금융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KT라는 뒷배경만 믿고 대출심사나 신용평가를 게을리한 잘못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LIG건설 사태 후 이런 관행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겠다면서 메스를 댔던 금융당국 역시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

 

특히 모기업을 배제하고 개별 기업의 신용등급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독자신용등급 도입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2012년 이후 매년 독자신용등급 도입을 과제로 내세우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미뤄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건을 계기로 대기업이란 배경만 보고 쉽게 쉽게 장사를 하려는 금융권의 관행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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