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내놨다.
우선 사외이사를 비롯한 이사회를 뜯어고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최고경영자(CEO) 승계 프로그램도 정비했다. 낙하산 경영진과 ‘막무가내’ 사외이사진의 합작품인 KB금융 사태가 결정적인 교훈이 된 셈이다.
다만 이번 모범규준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해당 금융회사 스스로 오너십이 작동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하산에 따라 인사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선 모범규준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사외이사 구성과 자질 문제 많다”
금융위는 우선 사외이사 구성과 자질을 문제 삼았다. 이사회가 교수를 비롯한 특정 직업군의 사외이사로 채워지다 보니 전문성도 떨어지고, 견제와 균형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주요 금융그룹 사외이사 구성을 살펴보면 교수를 비롯한 학계 출신이 42%로 거의 절반에 달한다. 특히 문제가 된 KB금융은 교수 출신이 70%나 된다.
이사회의 자기 권력화(Clubby Boards)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과도한 특권을 누리고 또 상호추천을 통해 스스로 권력 집단화하는 부작용을 말한다. 역시 KB금융이 좋은 사례다.
금융위는 아울러 구체성과 투명성이 부족한 CEO 승계 절차도 개선 대상으로 제시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KB금융 사태를 겨냥해 “최근 일부 사례가 보여주듯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난맥상은 주주가치와 건전경영을 위협하고, 금융시스템 안정과 신뢰까지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CEO는 물론 이사회도 감시 대상에
금융위는 이에 따라 ‘다양성의 원칙’ 등을 도입해 사외이사 구성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사회가 특정 이해관계가 아닌 주주와 금융소비자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또 사외이사를 뽑을 때 자기추천을 금지하고, 상호추천 역시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도록 해 자기 권력화를 차단했다. 은행 금융지주회사 사외이사의 임기를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2년마다 외부평가도 받도록 했다.
CEO 승계 프로그램은 더 치밀하고 촘촘하게 만들도록 했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과 절차로 CEO를 선임해야 하는지 구체화해 혼란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CEO를 비롯해 임직원에 대한 주먹구구식 보상 체계를 합리화하는 방안도 내놨다.
아울러 회사의 지배구조 정책과 이사회 운영, 사외이사 활동과 CEO 승계 등의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은 연차보고서를 새롭게 만들어 주주와 금융소비자가 상시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20일 열린 금융발전심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 지배구조와 함께 오너십 중요성도 부각
이번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CEO에 이어 사외이사를 비롯한 이사회도 견제와 감시 대상에 올려놨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CEO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가 오히려 더 큰 견제 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모범규준보다는 금융회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CEO가 낙하산으로 떨어지고, 외부 입김에 따라 인사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선 모범규준 자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오너십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 내부 혼란과 갈등을 잘 넘어설 수 있었던 것 역시 겉으로 드러난 지배구조보다는 보이지 않는 오너십이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KB금융과 같은 ‘막무가내’ 사외이사들 역시 오너십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당성을 갖춘 오너십이 작동하면 지배구조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린다”면서 “결국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금융회사를 가만히 놔두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