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서민금융 지원방안을 내놨다.
이번 대책은 서민금융 확대와 함께 저신용 한계계층의 가계부채에 대한 구조조정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특히 법정 최고 금리를 29.9%로 내리면 9~10등급의 저신용 한계계층은 사실상 제도 금융권에서 퇴출당하고, 중소 대부업체 역시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금리 대부업체에 휘둘리고 있는 저신용 한계계층을 파산 절차 등을 통해 개인회생이나 공식적인 서민금융의 테두리로 흡수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기존 서민금융 테두리만으론 한계계층을 모두 떠안기엔 턱없이 부족해 이들을 더 궁지로 내모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4대 서민금융 상품 연간 1.2조 확대
이번에 발표한 서민금융 지원방안은 지난 3월 발표한 안심전환대출의 연장선에 있다. 안심전환대출의 혜택이 집 있는 중산층에 집중된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부랴부랴 서민금융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는 안심전환대출에서 소외된 무주택자나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취약계층의 혜택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4대 서민금융 상품의 공급을 연간 1조 2000억 원 더 늘리고, 금리도 1.5%포인트 내렸다.
또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대부업체나 저축은행의 법정 최고 금리를 연 34.9%에서 29.9%로 5%포인트 낮춰 이자 부담도 덜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른 이자 감면 효과만 4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3일 서민금융 당정협의에서 “안심전환대출은 원금상환 능력이 있는 계층에 대한 부채 구조조정”이라며 “안심전환대출보다 더 신경 쓰고 국가가 책임을 떠안아야 할 부분이 바로 서민금융”이라고 밝혔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23일 금융위 기자실에서 서민금융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이명근 기자 qwe123@ |
◇ 저신용 한계계층 부채 구조조정
이번 대책은 서민금융 확대와 함께 저신용 한계계층에 대한 구조조정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법상 최고 금리를 낮춰 저신용 한계계층이 떠안고 있는 고금리 가계부채의 청산을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최고 금리를 5%포인트 낮추면 신용등급이 그나마 나은 대출자들은 이자 혜택을 볼 수 있다. 반면 지금도 대출이 어려운 9~10등급의 저신용 한계계층은 중소 대부업체를 포함한 제도 금융권에서 사실상 대출이 불가능해진다.
그 숫자는 최소 8만 명에서 최대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상당수는 파산이나 채무조정 절차를 밟거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고금리 대출의 악순환을 반복하기보단 파산이나 채무조정 절차를 밟은 후 재기하는 게 더 낫다고 강조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제도 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는 9~10등급은 채무조정이나 파산을 신청한 후에 신용회복위원회나 국민행복기금을 이용해 회생 절차를 밟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 서민금융으로 한계계층 소화 역부족
문제는 기존 서민금융의 테두리에선 제도 금융권 밖으로 밀려난 저신용 한계계층을 모두 떠안기엔 역부족이라는 데 있다. 금융위는 4대 정책 서민금융상품 공급 규모를 현재 연 4조 5000억 원에서 5조 7000억 원으로 확대하면 수혜자가 47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고 금리를 5%포인트 내리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저신용자가 최소 8만 명에서 최대 30만 명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거 사례로 봤을 때 이 경우 사금융으로 흡수되는 비중이 32% 정도 되고, 따라서 서민금융을 확대해 이들을 소화하겠다는 계산이다.
반면 실제로 기존 서민금융 상품이 제도권에서 밀려난 대출자들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기존 서민금융 테두리에선 연체가 있는 9~10등급은 지원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최근 독려하고 있는 중금리 대출은 아예 그림의 떡이다.
실제로 금융소비자원은 “시장을 무시한 일부 업권의 인위적인 이율 낮추기 정책으로 효과가 의문시된다”면서 “제도 금융권에서 밀려난 저신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 중소 대부업체도 구조조정 불가피
이번 대책은 중소형 대부업체에 대한 구조조정 성격도 있다. 현재 대부업계에선 대형 대부업체들조차 평균 조달 금리가 30%가 넘는다고 강조한다. 이 와중에 최고 금리를 29.9%로 낮추면 대출금리가 원가 이하로 내려간다.
그러면 대출을 해줄수록 손해를 보게 되고, 결국 비용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형 대부업체는 상당수 폐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9~10등급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로 대출을 해주면서 살아남은 중소형 대부업체들도 이들과 함께 정리 대상에 오르는 셈이다.
금융위는 대형 대부업체 중 대출 원가가 30%가 넘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손비용을 보수적으로 처리하고, 대부업 방송광고를 제한하면 원가를 낮출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업 금리가 내려가면서 대부업체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는데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면서 “개인 대부업자까지 법의 보호영역으로 봐야 할지는 여러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