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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대신 포탄이 날아왔다, 65년 전 그날처럼…

  • 2015.06.26(금) 11:34

동족상잔의 비극 6.25 65주년인 어제,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의 수장 최경환은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세월호와 메르스로 이어진 악재에 국민의 살림살이는 어느 때보다 어렵다. 나라 살림이라고 다를 리 없다. 나라가 빚(추가경정예산)을 내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답을 내놓는 날이었다.

최경환 부총리는 ‘15조 원+α’의 재정 투입을 설명했다. 돌림병으로 흉흉해진 국민의 걱정을 달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수출기업들의 아우성에 이들의 가려운 곳도 긁어줘야 했다. 그렇게 추경 규모에 온 관심이 쏠린 날, 경제정책방향 당정협의와 부총리의 언론 브리핑에선 빠진 것이 하나 있다.

‘감동’이다. 이날 경제정책 수장의 모습에선 절박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무엇인가 해 보겠다’는 의지는 잘 읽히질 않았다. ‘힘 모아 위기를 극복해보자’는 메시지도 마땅히 없다. 2013년 2월 출범해 만 2년 반이 안 된 이 정부에서 벌써 두 번째로 나랏빚을 내겠다는데, 어디에서도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세월호와 메르스 탓뿐이다. 그러니 추경이라는 파괴력이 큰 아이템에도, 때 되면 한 번 하는 당정협의, 정기적인 언론 브리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날 같았다.

추경 규모가 예상보다 적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난맥에 빠진 수출을 끌어올릴 단기대책이 빠졌다는 얘긴 더욱 아니다. 전 세계 경제가 마치 하나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만병통치 처방은 기대하진 않는다. 그래서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자’며 국론을 모으는 퍼포먼스라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정책방향을 논의하는 아침 당정협의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위기를 극복하자는 한마음 한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통 추경을 한다고 하면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들(여당)이 더 공격적이고 정부가 방어한다. 정부는 나라 살림의 재정균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도 재정균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늘 덜 민감했다.

초반부터 정부는 더 하자고 하고 여당은 깎자는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여당의 ‘추경 용도의 명확화와 균형재정, 국가부채 관리’라는 명분을 폄훼할 의도는 없다. 오히려 정부가 두루뭉술한 추경 계획안으로 우군(여당)의 공격을 스스로 불러왔다. 민간 기업 삼성으로부터 “국가가 뚫린 것”이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싸다는 생각마저 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땠는가?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작심한 듯 의회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과 관련해 여야를 가리지 않았지만, 타깃은 여당이 분명하다. “배신의 정치”로 표현한 여당 지도부에 대한 독설은 서막에 불과했다. 당정협의 중인 여당 지도부에도 실시간으로 전해졌을 터다.

이것으로 이날 당정협의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사실상 끝나버렸다. 국회법 개정안의 논란과 문제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꼭 이날이어야 했을까? 박 대통령으로선 배신자 유승민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당정협의가 불만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꼭 날 잡아 초를 쳤어야 했을까? 그야말로 동족상잔이다.

이렇게 의회는 사실상 마비 상태에 들어갔다. 다음 달 초 당정이 다시 모여 추경 등 경제회생방안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으로부터 대놓고 불신임을 받은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6.25 65주년을 맞은 날, 경제 회복을 위한 정부의 모든 역량 동원과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함을 고백해야 하는 날, 고통을 함께 나누고 힘을 한데 모으자는 메시지가 필요한 날, 정치 지도자들의 퍼포먼스는 정작 이랬다. 대통령의 눈물이라도 필요했던 날, 박 대통령은 포탄을 날렸고, 이렇게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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