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이야기지만 결국 팔·다리 다 잘리고 몸통만 남았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몸통조차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스스로 이 몸통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까지 수행해야 한다.
우리은행 민영화 이야기다. 금융위원회가 과점주주 매각방식을 추가한 우리은행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민영화를 위한 여건부터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또다시 기약 없는 민영화가 될 공산이 커졌다. 그러는 사이 우리은행의 경쟁력은 점차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감도 퍼지고 있다.
▲ 박상용 공자위원장이 '과점주주 매각방식'을 추가한 우리은행 민영화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
◇ 민영화 의지 없다 재확인?
금융위가 21일 발표한 '우리은행 민영화 추진방향'엔 새로 과점주주 매각방식을 도입해 추진하겠다는 설명이 담겼다. 하지만 정작 '언제 할 건데'에 대한 답은 없었다.
박상용 공자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시장 수요 조사 결과 현재 확인된 투자수요만으로 당장 매각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향후 예보와 매각 주관사를 통해 시장수요가 확인되고 매각을 위한 여건이 성숙했다고 판단되면 최대한 신속하게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예보와 공자위가 매각의 구체적인 방안 설계를 즉시 시작하고, 또 투자자 수요조사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해 이 두 가지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되면 언제든지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10월까지 공자위원의 남은 임기 두 달 동안 최대한 빨리한다는 방침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점과 일정이 불분명하고 매각방안 자체도 설익었다는 평가다.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박 위원장 자신도 "과점주주 군이 각자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매각이기 때문에 검토사항이 엄청나게 여러 가지가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정부의 생각은 일단 과점주주 매각방안을 발표해 민영화 의지를 확실히 하고, 우리은행은 은행대로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노력하면 투자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잠재 투자자들도 투자논의를 활발히 할 수 있게 되고, 기업가치도 올라간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의 해석은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은행 안팎의 민영화 여론과 박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 등에 못 이겨 일단 발표해 놓고 시간을 끌겠다는 전략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여전히 검토해야 할 사안들을 남겨둔 채, 민영화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태다. 과점주주 매각 방식 발표만으로 잠재 투자자들이 투자 논의가 활발해질지도 미지수다.
◇ 달랑 남은 몸통 가치부터 올려라?
우리금융은 4차 민영화 과정에서 해체됐다. 이때 비은행 주력 자회사였던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과 자산운용, 우리아비바생명 등이 모두 팔려나갔다. 우리은행만이 민영화되지 못하고 홀로 남았다.
우리은행의 말마따나 팔·다리가 모두 잘려나간 셈이다.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 등 경쟁 금융사들이 모두 금융지주 체제에서 은행·비은행의 진용을 갖춰나가고, 업권 간 시너지 확대에 온 힘을 쏟는 상황에서 우리은행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경쟁력을 갖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초저금리 시대 은행 자체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다양한 고객층·수요에 부응하기도 어렵다. 박 위원장도 "저금리 상황에서 유연성을 갖기 부족하다"고 지적했고, 주가가 저평가된 요인으로 꼽았다.
고육지책으로 삼성증권 등과 제휴해 복합상품 등을 내놓고는 있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회사와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쟁 금융지주와 비교해 자체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화마저 늦춰지면서 우리은행 직원들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 정부가 대주주인 기업 곳곳에서 한계 드러나는데…
정부가 대주주인 회사의 한계와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2~3조 원대의 손실이 드러난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의 통제하에 있다. 최근 한 언론에선 대우조선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전·현직 CEO와 간부들의 청와대 줄 대기가 도를 넘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산은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로도 해석된다.
이러다 보니 책임경영은 고사하고 문제가 되는 부실을 은폐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금융당국 전 고위관계자는 "대우조선은 사실상 산은에서도 통제가 안 됐다"며 "진작에 (산은 지분을) 팔았어야 했는데 갖고 있다가 이런 문제들이 생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은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연말 행장 선임 과정에서 빚어진 서금회(서강금융회) 논란부터 인사 때마다 불거지는 줄 대기·청탁은 고질적인 문제다. 금융경력 없는 정치인 출신의 감사 선임 등 낙하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금융위는 이날 매각방안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우리은행 경영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고 언급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이런 점들이 결국은 은행의 가치와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