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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피, 책임전가, 밀실…기업 구조조조정의 민낯

  • 2016.06.09(목) 15:07

책임 피하고자 폭로한 홍기택과 책임 떠넘기는 당국자들
낙하산 수혜자가 낙하산 꼬집고...의사결정 구조도 불투명

'면피, 책임전가, 밀실, 낙하산 인사……'

기업 구조조정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동안 몰랐던 얘기는 아니지만 구조조정을 책임지는 핵심 축이었던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현 AIIB 부총재)의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그 파장은 더욱 크다.

이는 기업 구조조정의 총체적인 문제를 집약하고 있다. 홍 전 회장 역시 이번 정권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회장으로 재임했던 지난 3년간 가만히 있다 이제서야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모습도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폭로한 홍 전 회장이나 이를 맞받아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나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시점도 교묘하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대우조선 분식회계를 파헤치겠다고 나섰다. 검찰의 칼끝이 어디까지 뻗을지는 알 수 없다. 이제 막 기업 구조조정을 시작하려는 시점에 드러난 이러한 구조조정의 민낯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지난해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부실과 관련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민낯 1.면피
 
홍 전 회장은 어제(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 지원과 관련해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부터 시장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말했다. 당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지목한 발언이다.
 
홍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중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정부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고, 여기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이미 정해져있었다"고 주장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신문에 인터뷰가 실린 이날 기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백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구조조정은 손실의 분담이고, 신규 자금 지원도 이 부담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조정의 문제"라며 "누군가는 해주지 않으면 합의를 신속히 이뤄낼 수 없어 그 역할을 제가 했다"고 강조했다. 홍 전 회장의 주장과 달리 충분한 의견 수렴도 있었다고 했다.

임 위원장은 말로는 이같은 조정의 역할에 대해 "책임지겠다"고도 했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모두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최경환 의원 측에서도 이같은 발언이 나오자 오히려 더 강력한 자구책을 요구했던 게 최 전 부총리라며 발뺌하는데 급급했다.
 

◇ 민낯 2. 책임 떠넘기기
 
홍 회장은 산업은행 회장 재임 시절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이를 폭로했다. 홍 전 회장을 인터뷰한 시점이 지난달 말이었고 어제 신문을 통해 보도됐다. 그리고 같은 날 검찰은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을 압수수색하며 대우조선 부실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결국 이같은 심상치 않은 낌새와 막상 의사결정 권한이 없었던 홍 전 회장 본인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분위기에 책임을 면해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홍 전 회장은 그동안 국정감사 등에서도 대우조선 부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대우조선 부실이 아무도 모르고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냐"는 의원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임 위원장도 면피하려는 속내는 마찬가지다. 기업 구조조정이 산업은행 등 주채권은행에서 주도하거나 경제논리 만으로 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은 늘상 지적돼 온 일이다. 홍 전 회장은 교수 출신이다. 그의 경력이 보여주듯 그동안 관료들과는 크게 부딪힐 일이 없었다. 그의 시각에선 당국이 심하게 좌지우지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였다. 결국 체감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청와대와 관료의 개입 자체가 없어지는 일은 아니란 얘기다.
 
임 위원장은 이를 신속한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조율, 합의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조정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실제 명분으로 삼았던 신속한 구조조정도 없었다. STX조선은 4조5000억원을 지원받고 무너졌다. 
 
야당에서는 난리다. 청문회까지도 거론됐다. 이미 구조조정에 깊숙히 관여했던 고위인사들 사이에선 "분명히 청문회 갈 수 있는 사안"이라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청와대, 정부, 구조조정 핵심 관계자들 간에 한동안 면피를 위한 진흙탕 싸움은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별관에서 산업은행 정용호 기업금융부문장(왼쪽)과 정용석 기업구조조정본부장이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민낯 3.밀실

이같은 문제가 불거진 근본적인 배경에는 명확하지 않은 콘트롤타워와 불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에 있다. 그 진원지는 청와대 '서별관회의'다. 이것이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건 이미 수차례 지적돼 왔다.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 관계부처 장관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고 사실상의 의사결정을 내리지만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다. 대우조선해양 지원 결정도 결국 서별관회의에서 나왔지만 공식적인 책임 주체는 산업은행이다. 공식 발표와 기자간담회도 산업은행이 맡았다.

임 위원장은 서별관회의에 대해 "정책 등을 이뤄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설명했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 불투명해 밀실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데 있다. 이것이 결국 시장논리를 막고 정치논리와 관치를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정부 역시 어제 기업 구조조정의 공식 콘트롤타워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관계장관회의로 명확히 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시장논리를 앞세운 과감한 구조조정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민낯 4.낙하산 인사

이번 폭로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홍 전 회장은 서금회(서강금융인회) 멤버로 이번 정권의 최대 수혜자중 한명이다.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다. 그런 그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청와대나 정부의 낙하산 문제를 꼬집는 것 역시 우스운 일이다. 
 
청와대와 정부 역시 애초에 구조조정 경험이나 민간 금융회사 경력이 없는 교수 출신을 낙하산으로 앉힌 책임은 더 무겁다. 이제와서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이런 기업 구조조정 판을 시장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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