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장밋빛 전망과 근거없는 낙관론에 기대, 구조조정보단 지원에 방점을 찍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까지 마련했다. 정부가 지난 4월26일 발표한 구조조정안에서 한발 앞으로 나갔다는 평가다.
▲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8일 합동브리핑에서 기업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
◇ 웃음기(근거없는 낙관) 사라졌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정부 관계기관 합동으로 8일 발표한 구조조정안엔 근거 없는 낙관론은 사라졌다. 수년간 장밋빛 전망만으로 구조조정을 늦추고, 수조원의 돈을 낭비했던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였다. 뒤늦게나마 웃음기는 쫙 빼는 대신에 심각한 상황 인식을 반영했다.
빅3 조선사의 자구안 10조 2512억원은 보수적인 수주전망을 기초로 마련했다. 현대중공업 3사(현대중공, 현대삼호, 현대미포)의 경우 향후 3년간 수주 전망은 연평균 156억달러 수준으로 과거 6년간 평균의 85% 수준으로 잡았다.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은 회사 수주 전망보다 큰 규모의 수주 감소가 발생해도 대응이 가능한 자구계획으로 평가했다.
삼성중공업은 향후 3년간 수주 전망을 연평균 55억달러로 잡았다. 이는 과거 6년간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향후 3년간 수주전망을 과거의 66% 수준인 연평균 81억불로 잡고 추가 자구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마련한 자구안 1조8500억원을 포함해 총 5조원이 넘는 자구안을 제출했다.
◇ 이중삼중의 촘촘한 보완책 내놨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합동 브리핑에서 "조선업은 오는 2018년까지 큰 개선 기미가 없으면, 그 기간 중 수주 상황이 나빠질 경우의 컨틴전시까지 포함해 이번 계획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대우조선의 경우 가령 ▲올해 수주 전망 62억달러에서 35억달러로, 2017년 90억달러에서 45억달러, 2018년 90억달러에서 55억달러로 수주 급감이 장기화하거나 ▲해양플랜트 예정원가 10% 증가·지연배상금 2624억원 추가 증가 ▲드릴십 인도 지연 장기화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2조원 이상의 별도 추가 생산설비 감축 및 매각안을 마련해놨다.
현대중공업 역시 추가로 3조6000억원에 이르는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했다. 삼성중공업은 이달말 경영진단 결과에 따라 유상증자 규모 등을 결정하고, 두 조선사 모두 오는 8월 경영·재무진단 결과에 따라 필요하면 자구계획을 추가·보완할 계획이다. 이중삼중의 보완책을 마련한 셈이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5조~8조원 정도 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도 11조원 규모로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임 위원장은 "좀 더 충분하게 마련해 완전하고 충실한 방어막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자구안의 현실성 여부는 좀 더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현재 회계법인 등이 참여해 자구계획의 달성 여부 등을 점검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의 자구안에 포함된 하이투자증권 매각만 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선 매각 가격이 기대에 못미치거나 매각 불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뒤늦은 콘트롤타워 강화와 산업재편 추진
▲ 자료:금융위원회 등 |
콘트롤타워는 이제서야 정비했고, 지난 연말부터 정부 스스로 강조해온 산업재편 방안도 뒤늦게 만들겠다고 나섰다.
기존에 임종룡 위원장이 주재하는 차관급협의체를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로 격상하면서 콘트롤타워를 정비했다. 산업부·고용부장관, 금융위원장 등이 참여해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며 신속한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개편, 미래비전을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3개의 분과회의를 거쳐 오는 3분기에 조선·해운·철강·유화 등 산업경쟁력 유지 및 제고방안을 발표한다. 지난 연말 이후 산업재편에 사실상 손 놓고 있더니, 수주 절벽 등의 최악의 상황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국제적인 변화의 흐름을 맞닥뜨리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선 모양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제조업과 ICT융합 등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산업·교역 구조 변화는 우리 경제와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며 "선제적 구조조정과 사업재편 등을 통한 산업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역시도 한참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