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기재부 차관과 국조실장까지 역임한 분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을 지명하면서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정통관료 출신인 그는 흔히 말하는 흙수저로 관료 사회에선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금수저의 엘리트 관료들이 즐비한 경제부처에서 승승장구했을 만큼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업무 능력에 더해 치열했던 삶을 통해 서민과 이 시대 청년의 고달픈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를 적임자로 봤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라는 국정과제를 함께하고 또 경제부처 수장으로서 이를 이끌어나갈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 흙수저, 상고출신의 신화
소년 가장, 고졸신화 등이 그를 따르는 수식어다. 김 후보자는 충북 음성(60세)에서 태어나 홀어머니를 모시고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을 전전하면서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홀어머니와 세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17살에 한국신탁은행에 들어갔다. 공부에 대한 갈증으로 야간대학인 국제대 법학과에 진학해 낮에는 은행원으로 일했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삶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은행 합숙소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시 잡지는 그의 삶을 바꾸었다. 1982년 입법고시(6회)와 행정고시(26)에 동시에 합격했고, 옛 경제기획원(EPB)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엘리트 공무원들만 모인다는 경제부처에서 상고와 야간대 출신인 그가 차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거쳐 부총리겸 장관 후보에까지 오른 것은 그야말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 치밀함과 추진력 바탕 승승장구
김 후보자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함과 추진력으로 업무 능력에서 인정받은 영향이다. 지난 2013년 국무조정실장을 맡을 당시 아들(28세)을 백혈병으로 잃고 발인날 출근해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발표한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철두철미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그의 업무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는 이듬해 7월엔 가족을 돌보겠다며 사표를 내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에선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일했다. 2008년 국내외 경제를 얼어붙게 만든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수습하는 등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2011년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2012년 기재부 제2차관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초대 국무조정실장을 맡았다. 지난 2015년 2월부터 아주대 총장을 맡고 있다.
정치 색이 없는 데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추진력과 기획력 등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덕에 정권이 바뀌면서 두루 기용될 수 있었다.
◇ 사람 중심, 일자리 중심의 새 경제정책 적임자란 평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 후보자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 둘은 직접적인 인연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으로서 중장기 국정플랜인 '국가비전 2030'보고서 작성 실무를 총괄했다는 정도다.
이 국가비전 2030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들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참여정부는 당시 이 보고서에서 한국이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추진하면 2030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 삶의 질 세계 10위를 달성할 것이라는 비전을 내놨다.
그가 이달초에 출판한 '있는 자리 흩트리기'에서 사회문제 해결방안을 다루면서 '킹핀'을 언급한 점도 주목받고 있다. 킹핀은 볼링에서 하나를 치면 10개를 모두 쓰러뜨릴 가능성이 큰 5번 핀을 말한다. 김동연 후보자는 후보자 지명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그 책은 경제현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 "큰 애가 세상을 뜨고 대학총장으로 가서 많은 젊은이를 만나면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썼다"고 언급했다.
김 후보자는 "킹핀 이슈로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 문제를 얘기했다"며 "과거에는 좋은 학교 나오고 대기업, 공공기관 취업하면 많은 보상을 받았고, 그래서 너도나도 그 길을 가려고 해서 교육제도 취업문제 이런 것들이 지금처럼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기존의 보상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발언이기도 하다.
J노믹스를 언급하면서는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생산성은 사람 중심의 성장이나 일자리에서 나오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발언과 생각들이 단순히 부총리 지명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에 호응하는 게 아니라 흙수저로 태어나 험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의 삶에서 자연스레 녹아나온 사상으로 보여진다.
김 후보자의 삶은 물론이고 대학교 총장으로 이 시대 청년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누구보다 청년의 고달픔, 서민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일자리 창출, 사람 중심, 소득 중심의 성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