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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자영업자 힘든게 카드 탓?

  • 2018.07.24(화) 09:03

자영업자 지원정책 카드수수료에 쏠려 카드사 '난감'
"카드매출 1.3% 부가세 환급, 소비유발 효과 무시" 불만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논에 벼를 심었다. 그는 막 심은 벼의 싹을 모두 한뼘씩 뽑아 올리며 말했다.

"모가 자라도록 도와주느라(助苗長) 많이 피곤하구나."

결국 벼는 물을 머금지 못해 모두 말라 죽었다. '성급히 일을 이루려다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는 뜻을 가진 '조장(助長)'의 어원이다.

최근 카드사들에게 '공짜 점심'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많다. 금융당국, 정치권, 시민단체가 나서 카드수수료를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자영업자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영세한 자영업자가 어렵게 번 돈을 카드사가 수수료 명목으로 대부분 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태스크포스(TF)도 가동했다.

카드수수료는 정말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고 있을까.

지난해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에 따라 연 매출 3억~5억원인 신용카드 가맹점은 수수료 1.3%낸다. 연매출액 2억~3억원인 가맹점은 0.8%다.

한 매장이 연매출 4억원을 기록하고 매출이 모두 카드결제로 이뤄졌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카드수수료는 520만원이 된다. 매월 43만원 수준의 카드수수료 지출이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이 지출은 전액 돌려받는다. 현행법에 따라 신용카드를 받으면 긁은 금액의 1.3%에 해당하는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연매출이 3억원이 안되는 매장이라면 신용카드 수수료로 지출하는 돈보다 부가세 환급으로 돌려받는 금액이 더 크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월평균 매출은 2016년 하반기 기준 3870만원이다. 연매출로 환산할 경우 4억6440만원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카드수수료 부담분을 부가세 환급을 통해 보전받고 있다는 얘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가운데).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모든 업소가 카드를 받다보니 가맹점이 특별히 더 누리는 이익이 옅어지고 있다"며 "카드사용에 따른 가맹점의 이익은 보잘 것 없어졌는데 비용은 가맹점 수수료에서 다 나오는 구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든 업소가 카드를 받는다면, 카드결제로 가맹점이 누리는 이익이 오히려 커진다는 설명이다. 신용카드 시장이 발생시키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 때문이다.

네트워크 효과란 사전적으로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형성(네트워킹)된 뒤 다른 사람들의 상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형성된 수요에 따른 이해관계자의 입장에 따라 비용을 어디에서 부담하는지를 설명할 때 쓰는 경제학 용어다.

만약 카드결제시스템에 대한 비용을 카드회원과 가맹점에 각각 부담시킬 경우 카드회원은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진다. 그냥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주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맹점은 이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카드를 받아 매출을 늘리는 것이 유리하다. 수수료보다는 상품과 재화의 판매로 기대되는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백화점에는 수많은 매장들이 매장 임대료를 부담해서라도 입점해 영업을 한다. 임대료 부담이 있더라도 백화점 입점을 통해 기대되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카드시장이 넓게 형성된 상황이라면 가맹점으로서는 수수료를 부담하더라도 카드결제를 하려는 소비자를 고객으로 유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함정식 전 여신금융연구소장은 "수수료가 과도하게 낮은 수준에서 책정된다면 카드회원의 혜택이 줄어들거나 연회비를 상승시키기 때문에 회원 탈퇴나 카드사용을 자제할 것"이라며 "카드결제시스템의 혁신을 위한 노력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수익의 절반 정도는 사용자에게 직접 혜택으로 제공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밴수수료 등 지급결제시스템을 운용하는데 사용되고 남은 것은 카드사의 수익이 된다.

바꿔말하면 만약 신용카드의 각종 혜택을 전부 없앨 수 있다면 현재 수수료율의 절반 수준에서 카드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카드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다. 카드사의 차별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신한이나 국민처럼 은행창구에서 카드영업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몰라도 삼성이나 현대처럼 창구가 없는 카드사로서는 영업을 할 방법이 막막해진다.

게다가 수수료 감소로 각종 카드혜택이 사라진다면 네트워크 효과에 따른 카드시장의 매력도 줄어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결제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소비자들은 카드 결제가 안되는 자영업자를 찾는 대신 대형 마트나 인터넷 쇼핑몰 같은 카드결제가 가능한 대형 유통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당국은 카드수수료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원가분석 작업을 진행중이다. 합리적인 수수료율을 찾겠다는 명분이지만 카드사들은 '인하'라는 뚜렷한 기조가 정해진 상황에서 공정한 수수료율 측정이 가능할지 우려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자영업자를 살리려는 정부의 뜻은 존중하지만 '카드 수수료는 자영업자에게 뜯어내는 불로소득'이라고 전제하는 접근을 걱정하고 있다. 

 

신용카드는 소비자와 가맹점의 필요에 의해 생긴 업종이다.

적정한 수수료율은 결제시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카드수수료는 지난 10년간 10여차례 인하됐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건 악순환이다.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한뼘 뽑아 올린다고 벼가 잘 자라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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