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장 최초로 연임설이 제기되고 있는 윤석헌(사진) 금감원장이 임기 두 달여를 앞둔 시점에 내부 직원들로부터 강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최근 채용 비리 연루자의 승진 인사로 그동안 쌓여있던 내부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원 노조는 윤 원장의 연임 저지 및 퇴진운동 일환으로 지난 15일 청와대에 윤 원장의 특별감찰을 요구했다. 금감원장의 감찰을 내부에서 요구한 것은 처음으로 노조는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인사 취소와 연임포기 선언을 하지 않을 경우 형사고발 등 법적 조치까지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 채용비리 연루직원 승진에 내부 불만 폭발
윤 원장과 노조의 갈등은 지난 2월 19일 인사에서 채용비리 연루 직원들이 승진하면서 폭발했다. 채용비리 여파로 승급제한 등 전 직원이 불이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원인제공자인 연루자가 승진 인사에 포함되자 직원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노조는 인사에 앞서 지난 1월 '채용비리 연루자를 승진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라'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채용비리 연루자를 포함한 승진인사가 이뤄지고 이후 직원들의 항의에도 윤 원장이 인사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까지 보이자 자진사퇴 요구에 이어 청와대에 특별감찰을 요구하는 등 비판과 갈등의 수위가 날로 깊어지는 상황이다.
직원들의 불만과 갈등의 뿌리에는 금감원의 인사적체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2017년 감사원 감사 결과 채용비리로 2024년까지 3급 이상 직원 정원을 35% 미만으로 낮추고 상여금을 삭감하는 등의 조치를 받았다. 사실상 3급 이하 직원들의 승진길이 급격히 좁아진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직원의 채용비리 연루로 전 직원이 연대책임을 지고 고통을 감내해 왔는데 정작 원인제공자를 승진시키자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번 인사에 문제가 된 직원들이 징계를 이미 받았고 고과가 좋아 승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의 퇴진요구와 관련해서는 윤 원장이 노조를 찾아 '국장급 이하 인사는 실무자에게 맡겼으며 연임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는 취지의 언급을 전달해 사실상 자진사퇴 거부와 연임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에 대한 노조와 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윤 원장 연임 시 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것을 우려해 대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노조는 금감원 입장과 다르게 이번 인사가 명백히 내규를 위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감원 인사관리규정은 '징계를 받은 직원에 대해 일정기간 징계기록을 유지하고 징계기록이 말소된 후에는 징계처분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노조는 채용비리 연루자 가운데 팀장으로 승진한 A씨의 경우 2018년 12월 정직처분을 받았고 정직은 5년간 징계기록을 유지해야 하므로 징계처분에 따른 불이익이 2024년 1월까지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A씨가 3급 수석에서 3급 팀장으로 승급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승급과 승진은 다른 개념으로 별도로 봐야 하기 때문에 승진 인사에도 5년간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창화 금감원 노조위원장은 "채용비리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로 회사가 1억2000만원을 배상한 후 2년이 지났는데 연루 직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지도 않고 있다"며 "추가 손해배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승진까지 시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노조는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은 것은 배임소지가 있는 만큼 윤 원장이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인사 취소와 ▲연임포기 선언을 하지 않을 경우 형사고발 등 법적조치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오 위원장은 "금감원은 금융사의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연말에 남은 분담금을 금융사에 반환해야 하는데 원칙적으로 손해배상 금액도 이를 책임자에게 구상하고 회수해 연말 분담금 미사용금 반환에 포함해야 한다"며 "회사는 피해자가 더 있고 소멸시효까지 기다린다는 말도 안 되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는 배임소지가 있는 만큼 윤 원장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형사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내우외환 깊어지는 금감원…차기 원장에도 영향?
이 같은 갈등양상은 윤 원장과 내부 직원들과의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윤 원장은 취임 초기 비관료출신이자 진보학자로 그동안 적체된 금감원 문제를 쇄신하고 위상 제고를 통해 대대적인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의 기대감이 고조되며 안팎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취임 초기부터 주창해온 '금감원 독립론'이 재임 3년 동안 진전을 보이지 않은 데다 오히려 금융위원회와 갈등의 고리로 작용하며 취임 첫해 예산삭감 부메랑을 맞았다.
또 소비자보호를 명분으로 금융사고 시 일괄구제 등 일방적인 피해 보상과 내부통제 의무 위반 등 불완전한 잣대를 들이대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물리면서 금융회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와 제재 결과에 피감기관인 금융회사들이 잇단 반기를 들며 행정소송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슈퍼갑으로 불리던 금감원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기대와 달리 진보학자이자 교수 출신 금감원장에 대한 불만이 안팎으로 터져나오면서 차기 금감원장 후보로 다시 관료 출신들이 힘을 받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 원장과 함께 그 뜻을 이을 진보학자 출신이 차기 원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금융권에선 '학자의 고집' 탓에 소통이 어렵다는 불만이 거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