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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금감원 vs 한은, '100억 줄다리기'

  • 2022.02.08(화) 17:10

한은 "출연금 100억 올해부터 중단" 선언
일각에선 전금법 개정 관련 갈등 해석도
금감원, 감독분담금으로 재원 충당해야

한국은행이 최근 금융감독원에 매년 내던 출연금을 끊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때아닌 눈치 싸움이 벌어질 전망입니다.

한은이 출연금 100억원을 중단하면 금감원의 검사를 받는 금융사 490여곳이 이 부담을 나눠 가져야 하거든요. 각사의 감독분담금이 평균 2024만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죠. 감독분담금은 금감원의 검사·감독 등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를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각 금융사에 할당해 걷는 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한은은 그동안 군소리없이 주던 출연금을 앞으로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을까요? 그리고 왜 금감원은 이제까지 출연금을 당연한 듯 받아왔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그래픽=비즈니스워치

1999년 금감원 출범, 무슨 일이?

때는 1999년 1월입니다.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등이 통합해 현재의 금감원이 출범했죠. 통합과정에서 증권감독원(현 금감원 본원)과 보험감독원(현 금감원 연수원)은 기존에 쓰던 건물을 한 채씩 가지고 왔고요. 금융권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럼 은행감독원도 번듯한 건물 하나는 가져와야 체면이 서겠죠?

금융권에 따르면 당시 금감원은 한은 산하에 있던 은행감독원에게 한은 별관을 가져오는 대신 통화안정증권 가운데 일부 소유권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건물 사용권 대신 채권 이자를 운영비로 쓸 수 있도록 통안증권을 넘겨 달라고 한거거죠. 그러자 한은은 통안증권 대신 매년 출연금 지급을 약속했고, 이를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금융위 설치법)'에 명시하기로 했습니다.

/사진=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홈페이지 캡쳐

한은이 처음 금감원에 출연한 돈은 413억원입니다. 금감원 출범 불과 2년전인 1997년에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었고 그 뒤 1998년엔 대대적인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단행됐죠. 금감원이 금융사에 손을 벌리기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때 한은이 금감원 총 예산의 31.2%나 되는 돈을 흔쾌히 내놓은 거죠. 금감원의 안정적인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너무 많은 돈을 받은 탓에 "은행감독원 출신들이 친정(한은)으로부터 받은 지참금(출연금)으로 은근히 대장 행세를 한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설립 초기 한은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돈 안줄래"…어게인 2010?

한은은 매해 출연금 액수를 줄이다 2006년부터는 연간 100억원으로 고정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은이 출연금 지원 중단을 선언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0년에도 출연금 지원중단을 결정했다가 번복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표면적인 이유는 지금과 같았습니다. 피감기관(금융사)으로부터 받은 감독분담금으로 금감원 살림을 꾸리는 게 맞다는 거죠. 해외에도 중앙은행이 감독기관에 출연금을 내는 사례는 없기도 했고요. 

하지만 당시에도 속내는 복잡했습니다. 한은에 단독조사권 등을 부여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놓고 한은과 금융위·금감원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거든요. 한은 영향권내에 있는 금융결제원에 대해 금융위가 유례없이 강도 높은 감사를 벌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고요.

지금이랑 비슷한 양상이지 않나요? 최근 한은이 출연금 지급을 거절하는 데 대해 금융권 한쪽에서는 한은과 금융위의 샅바 싸움으로 보기도 하죠.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을 놓고 한은과 금융위가 공방을 벌이고 있거든요.▷관련기사: 외부청산 놓고 산으로 간 전금법…밥그릇 싸움만(2021.06.29) 

한은이 금융위·금감원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출연금을 인질로 잡고 몽니를 부려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만 한은 관계자는 "지난 2020년 12월 2021년 예산을 확정하면서 2022년부터 출연금 납부 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금법 논란이 불거진 2021년 이전에 예산을 짰으니 이번 갈등과 출연금 지급 거절은 무관한 일이라는 뜻이죠. 

금감원 "난감하네"…금융사는 도끼눈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그래픽=비즈니스워치

금감원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올해 예산을 전년 대비 8.6% 높인 3973억원으로 잡아놨는데 정작 돈이 안 들어온다니 전전긍긍하게 됐죠.

금감원 관계자는 "계속해서 출연금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위 설치법에 한은의 출연금을 재원으로 경비를 충당한다고 했지만 액수를 정확히 명시해 놓지 않은 데다, 한은의 출연을 강제하지도 않았다는 맹점이 있어서 금감원으로서는 꾸준히 손을 내미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긴 합니다. 

금감원 예산에서 한은 출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를 살짝 넘는 수준이죠. 언뜻 보면 무시할 수 있는 액수지만, 감독분담금 사용에 대해 금융위나 감사원에서 매년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느슨한(?) 한은의 출연금을 어떻게 해서든 확보하는 게 이득인 거죠.

여기에 한은의 출연금 중단이 계속될 경우 감독분담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족한 예산을 메워야 하는데, 금융사들을 설득할 것도 골치가 아픈 겁니다. 금융사들은 분담금을 줄이면 줄였지 더 늘리고 싶어하지 않거든요. 

작년엔 대부분 금융사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선전하긴 했지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는 올해는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고요. 금융사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한은 사이에서는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됐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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