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유통업계의 지형을 바꾸고 있습니다. 단순히 트렌드 변화를 넘어 구체적인 '숫자'로도 변화가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지난 2일 '2021년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통계 자료를 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이 대세였습니다. 온라인은 전체 유통 시장의 48.3%를 차지하며 전년 대비 비중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눈길을 끈 곳은 오프라인 시장이었습니다. 불과 2년 만에 시장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 매출 비중 1위는 17%를 기록한 백화점이었습니다. 이는 명품 보복소비의 결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백화점의 명품 매출 비중은 전년 대비 15% 가량 오른 33%였습니다. 비싼 상품이 많이 팔렸으니 순위도 당연히 올랐겠죠. 하지만 편의점의 약진은 '의외'입니다. 편의점은 지난해 매출 비중 15.9%를 기록하며 대형마트를 0.2% 포인트 차이로 제쳤습니다. 대형마트는 통계 작성 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1위를 내주며 3위로 내려앉았고요.
대형마트와 편의점 사이의 매출 격차는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업부 통계 작성 대상 업체는 △총 12개의 온라인 플랫폼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주요 3사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주요 3사 등입니다. 편의점은 GS25·CU·세븐일레븐이 포함됐습니다. 이마트24와 미니스톱이 빠졌죠. 이 두 업체의 연간 매출 합계는 1조5000억원이 넘습니다. 즉 대형마트는 편의점 '빅 5'중 3개 업체만 상대했음에도 패배한 셈입니다. 충격적인 결과죠.
대형마트는 어쩌다가 이런 처지가 됐을까요. 일단 코로나19의 영향이 큽니다. 대형마트는 많은 상품을 많은 사람에게 판매하는 채널입니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타격도 가장 컸습니다. 더군다나 대형마트는 이커머스와 직접 경쟁도 해야 했습니다. 특히 대형마트는 많은 상품을 '비축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이 갑니다. 급하게 구매하는 사람은 적고요. 때문에 이커머스가 배송 속도와 편의성을 개선하자 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편의점에게 코로나19는 기회였습니다. 편의점은 담배처럼 당장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많이 찾습니다. 덕분에 이커머스와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있었죠.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더라도 편의점까지 봉쇄된 적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동네 상권)'이 떠오릅니다. 슬세권의 대표 주자인 편의점은 이들 고객을 손쉽게 흡수했습니다.
여기에 편의점의 꾸준한 노력도 힘을 보탰습니다. 편의점들은 수년 전부터 자체브랜드(PB)를 강화하며 '편의점은 비싸다'는 인식을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편의점은 사업 구조상 상품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마트는 1평에 달하는 '팔레트'를 기준으로 상품을 대량 매입합니다. 하지만 창고가 좁은 편의점은 재고 관리가 어려워 '박스' 단위로 매입합니다. 여기에 매일 두 번 배송하는 물류비, 본사와 가맹점주의 이익 배분까지 상품 가격에 녹아 있습니다.
반면 PB 상품은 편의점 본사가 개발·마케팅·유통 등을 모두 담당합니다. 당연히 공급 마진이 낮아집니다. 자체 브랜드인 만큼 개성도 충분히 담을 수 있고요. PB 상품이 곧 '싸면서도 특이한 상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새로움에 열광하는 젊은 소비자를 자극하며 '곰표 밀맥주' 등 히트 상품을 낳았습니다. 편의점은 PB 상품의 성공을 통해 단순 유통 채널을 넘어 독자적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고요.
정부 정책도 호재였습니다. 편의점은 대부분 소상공인인 가맹점주들이 운영합니다. 덕분에 지난 2년간 지급됐던 정부재난지원금을 사용처로 선정될 수 있었죠. 지자체가 할인을 제공하는 지역화폐도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가격이 비싸다는 편의점의 약점이 어느 정도 만회됐죠. 반면 대형마트는 대기업 직영 구조인 만큼 정부재난지원금과 지역화폐를 받지 못했습니다. 편의점과의 경쟁에서 당연히 불리했죠.
편의점의 코로나19 대응 전략도 대형마트보다 우수했습니다. 편의점들은 코로나19 이후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택배 사업을 더욱 확대했습니다. 세탁·보조배터리 대여 등 과할 정도의 생활 밀착 서비스도 론칭했고, 최근에는 오토바이로 30분 내 근거리 배송하는 '퀵커머스' 시장도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네 가게가 생활 플랫폼으로 변신했죠. 반면 대형마트는 이 정도로 빠르고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편의점이 대형마트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업계에서는 편의점의 전성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점포 수는 물론, 점포당 매출도 늘고 있으니까요. 반면 대형마트는 현재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점포를 줄이고, 남은 점포는 체험 공간 또는 창고형 할인점으로 리뉴얼하고 있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려는 구상입니다. 이는 '실속'은 몰라도 '규모'를 키우기는 어려운 전략입니다. 따라서 편의점이 매출 규모에서만큼은 대형마트를 앞서나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이것이 대형마트의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형마트들이 리뉴얼한 점포들의 매출은 리뉴얼 전 대비 평균 20% 이상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점포 기반의 빠른 배송 서비스도 내놨죠. 이커머스는 물론 편의점의 퀵커머스와도 경쟁에 나섰습니다. 대형마트는 상품 라인업은 물론, 가격 측면에서도 편의점보다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언제라도 반전을 일으킬 여지도 충분합니다.
코로나19는 유통 시장 판을 완전히 바꾸고 있고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스마트폰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제 해외직구 플랫폼까지 능숙하게 활용합니다. 이전까지는 반드시 보고 샀던 상품들도 이커머스에서 잘 팔리고요. 이 과정에서 잠시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오프라인 채널들의 반격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1년 뒤, 그리고 5년, 10년이 지난 후 우리 소비 생활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요. 요즘 같은 변화의 속도를 감안하면 사뭇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