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가 이르면 내달 국내에 상륙한다. 경쟁 혹은 협력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애플페이가 국내 스마트폰 시장과 간편결제 시장의 '판'을 바꿀 것이란 관측과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예측이 공존한다. 애플페이 도입이 향후 시장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본다. [편집자]
"애플페이 도입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사업자들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애플페이 도입 소식이 전해진 이후 관련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애플페이 도입이 간편결제 시장의 경쟁을 촉발시켜 고객의 혜택을 늘리는 '선순환'을 가져오기 보다는 시장 참여자들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혜택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업계에서는 해당 서비스의 주체인 애플 측에서는 별다른 노력없이 한국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게 된다는 점에 불만이 높다. 재주는 국내 기업이 부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수익은 오롯이 애플에만 돌아간다는 얘기다. '악순환'을 말하는 이유
간편결제 시장 참여자들이 애플페이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를 우려하는 것은 단연 비용문제다.
당장 애플페이는 다른 국내 간편결제 사업자들과 달리 제휴사로 부터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을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이는 결제대금의 약 0.15%수준으로 알려져있다.
제휴를 맺어야 하는 카드사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상당수 카드사들은 애플페이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극적인 결제금액 증가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비용만 추가될 수 있어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국내 9개 카드사를 통해 개인이 결제한 금액(일시불·할부 기준, 국세 지방세 제외)은 630조2440억원 수준이다. 보수적으로 접근해 애플페이가 출시 이후 약 1%의 결제 비중만 가져간다고 가정해도 카드사들은 약 94억원 가량의 비용을 지출해야 되는 셈이다.
가뜩이나 조달금리 인상, 카드론 등 대출상품에 대한 금리 인하 목소리 확대 등으로 수익성 악화를 고민하는 카드사 입장에서는 이같은 비용증가가 달가울 리 없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가맹점 수수료도 바닥을 치고 있는데 마진을 가져가기는 커녕 자기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라며 "당분간 애플페이 도입을 주도한 현대카드 이외 회사들이 애플과의 제휴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기존에 '무료'를 추구하던 국내 간편결제 기업들이 '유료화'를 선언할 가능성도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다.
기존 간편결제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애플에게는 마진까지 포기하면서 서비스 제공을 요청하면서 왜 우리 서비스는 무료로 이용하려 하느냐"라는 주장을 내세울 명분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간편결제 업계 관계자는 "애플페이 도입에 카드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기존 간편결제 사업자들 입장에서도 서비스 제공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라며 "사실 현재 대형 사업자들도 좀처럼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 국내에서 가장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4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카카오페이의 결제액이 118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카카오페이 입장에서 '수수료 부과'는 거부하기 힘든 '선악과' 같은 존재다.
악순환의 정점은 고객혜택 축소로 이어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애플페이 도입 후 새로이 발생하는 카드사들의 비용증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소비자와 카드사 가맹점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말 것을 경고한 상황이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형편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새로운 비용증가 요인이 나타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고객혜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가맹점 수수료는 카드사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결국 고객에게 돌아가던 혜택을 축소시킬 수 밖에 없다"며 "이는 비단 애플페이 사용자를 위한 카드뿐만 아니라 새로 출시되는 모든 카드에 순차적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주는 우리가, 돈은 애플이"
애플페이의 등장으로 인해 경영환경의 변화가 예상되는 업계가 가진 불만은 더 있다. 애플페이 도입을 위한 재주는 국내 기업들이 부리고 애플은 앉아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애플페이 결제를 위해서는 NFC결제가 가능한 결제 단말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그간 NFC결제방식이 대중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 신용카드 가맹점중 NFC결제 단말기를 갖춘 카드 가맹점은 10% 남짓이다. 애플페이 대중화를 위해서는 인프라 확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VAN사 관계자는 "NFC단말기의 가격은 약 15만원에서 20만원 정도인데 단말기의 설치여부는 가맹점주들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새로운 단말기 보급을 위해 서비스 제공자가 비용을 지원하곤 했지만 현재 카드사들은 관련법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애플이 인프라 구축을 위해 투자는 할 수 있지만 그런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카드사 입장에서는 가맹점주들에게 단말기 설치를 요청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으로 NFC결제 단말기 보급이 늘어날 경우 다른 간편결제사업자들도 NFC결제 기능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역시 삼성페이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최근 출시한 제품에는 이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핵심은 애플 측은 아이폰에서 NFC결제를 지원할 때 애플페이가 아닌 다른 결제 수단은 차단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아이폰에 NFC가능 결제 가능 기능을 넣고 애플외 다른 개발자들이 내놓은 앱에 대해서도 NFC를 사용할 수 있게는 해놨다. 그런데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앱이 NFC의 무선결제 기능을 이용하려고 하면 이를 차단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최근 NFC결제 기능을 탑재한 간편결제 서비스 '로카페이'를 내놓은 롯데카드의 간편결제 서비스는 아이폰에서 원활하게 사용할 수 없다. 아이폰이 NFC결제에 접근하려는 '로카페이'의 접근을 막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로카페이가 지원하는 NFC 기능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에서 밖에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해 유럽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애플측의 이러한 행태는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관련 혐의 조사에 나섰다.
유럽은 아이폰의 시장점유율이 70%가 넘는 상황인데, 애플이 NFC를 활용한 결제 기능에 접근하려는 제3자의 접근을 막으면서 사실상 간편결제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는 시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현재 심의가 진행중이다.
애플이 국내에서도 이같은 정책을 이어간다면 국내 업계가 나서 NFC인프라를 확대해도 아이폰 사용자들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업계가 NFC인프라 확대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핵심 근거중 하나다.
업계 한 디지털 부서 관계자는 "결제관련 업계가 힘을 모아 NFC결제 인프라 확대에 성공하더라도 아이폰에서 애플페이 외에 다른 결제수단의 접근을 막는다면 다른 사업자들은 아이폰 사용 고객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애플의 이같은 행보는 이미 금융권을 제외한 타 업권에서는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애플의 시장 독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야 하며 금융당국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같은 측면을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애플페이 도입으로 국내의 기존 사업자들이 짊어지게 될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애플이 시장 장악력을 무기로 삼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한 감시망을 미리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지난 20일 있었던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애플페이 도입 이후 독과점 가능성을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물으면서다. 이에 대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내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열심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