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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금융당국 '금산분리' 함구령의 이유

  • 2023.05.27(토) 15:10

김주현 금융위원장 취임일성 '금산분리 규제' 완화
금융위, 금융회사 비금융업 진출 방안 지속 논의
규제 완화시 비금융사업자 '반발' 변수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취임일성이었던 '금산분리'라는 키워드가 쏙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최근 다양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금융위원회의 정책에서 '금산분리'란 단어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사실 금융위원회가 '금산분리 규제완화'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금산분리'라는 단어 사용에는 신중을 기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금융위원회는 왜 '금산분리' 함구령을 내린걸까요

김주현 금융위원장. /그래픽=비즈워치

금산분리가 뭐길래

지난해 여름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위원장 후보로 지정되면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왔다"라며 "이를 통해 금융권의 BTS(방탄소년단)를 만들겠다"라고 했습니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철저히 분리하는 원칙을 말합니다. 제조업 등 비금융사업을 핵심으로 하는 회사가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같은 규제가 도입된 배경에는 비금융 기업이 금융회사를 보유할 경우 자금조달 측면에서 상당한 이점을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고객들의 자산을 기본으로 운영되는 금융회사의 자본이 이를 소유한 기업만의 '자금줄'이 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즉 기업의 '사금고'화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금융업을 주력으로 하는 금융회사의 경우 비금융기업을 자회사로 거느릴 수 없도록 해놨습니다. 금융회사의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비금융업계에 무분별하게 진출해 산업생태계를 흐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입니다. 이에 금융회사가 보유할 수 있는 지분을 철저하게 제한합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금산분리 정책이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후퇴시킨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보통신(IT)기술이 발달하면서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정보를 활용해 금융소비자의 혜택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는데 금산분리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임일성으로 금산분리를 내세웠습니다. 금융업을 주력으로 하는 금융회사가 비금융업종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김주현 위원장은 취임 이후 '금융규제 혁신회의'를 출범시켰고 줄곧 금산분리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나브로 사라진 '금산분리'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공약'이나 다름 없었던 만큼 올초까지만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이 키워드는 꾸준히 언급됐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직접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금산분리라는 키워드는 점점 금융위원회의 계획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금융위원회가 애초 계획했던 금산분리 규제완화 추진을 중단한 것은 아닙니다. 은행들이 이자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확대되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진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연중 이어지고 있는 '은행권 경영·영업관행 제도개선 TF'를 통해 지속 논의중입니다.

다만 '금산분리'라는 키워드는 쓰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유는 뭘까요?

핵심은 바로 '비금융 주력자'들의 반발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금산분리 규제는 비금융 주력자의 금융사업 진출을 제한하면서도 금융회사의 비금융 사업 진출을 동시에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융회사에게 비금융업종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반대로 비금융주력자들 역시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일종의 '형평성'의 문제입니다. 당장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에 대한 허가가 나오자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가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생각보다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금융회사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인 '자금조달'이 수월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금융업으로의 진출을 꾀할 겁니다. 자칫 금산분리 규제 완화로 인해 규제로 촘촘하게 정비됐던 국내 금융시스템이 어지러워 질 수 있는 겁니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진출의 길은 열어주되 비금융주력자가 금융사업에 진출하는 장벽은 여전히 높아야 한다고 보는 모습입니다.

실제 금융위 한 관계자는 "금산분리라는 단어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라는 뉘앙스로 발언하며 금융위의 규제완화 방향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진출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마련은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금융당국은 늦어도 오는 6월 중에는 구체적인 방안이 담긴 청사진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금융당국이 청사진을 내놓은 이후 금융회사들은 당연히 환호할 겁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비금융사업자들은 어떤 표정을 내놓을지 주목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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