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레고랜드 사태 여진의 영향을 받을지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높은 금리로 조달했던 예·적금 만기가 다가오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1년 전처럼 은행들이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과도한 수신경쟁을 펼칠 것을 우려해 경쟁 자제를 요청했다.
은행들은 작년과 달리 또 다른 자금조달 수단인 은행채 발행이 가능한 만큼 지난해와 같은 수신경쟁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시장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어 추석 이후에도 차주들의 금융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채, 금리 오르고 발행량도 증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중 금융채 발행량은 17조9584억원으로 전달보다 47.3%(5조7674억원) 증가했다.
이중 상당수가 은행채였다. 금융지주채 발행량은 7000억원, 기타금융채는 9조3531억원으로 전달보다 각각 9.4%, 26.9% 증가했다. 반면 은행채는 7조9053억원어치가 발행돼 전달보다 89.1%(3조7253억원) 급증했다.
발행 규모뿐 아니라 발행금리도 상승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를 보면 은행채 5년물(무보증 AAA) 금리는 지난 8월말 기준 4.301%에서 이달 25일 기준 4.491%로 0.198%포인트 올랐다.
최근 은행채를 비롯해 채권 금리가 오르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고금리 수준을 유지할 계획임을 시사한 영향이 크다. 미 연준은 지난 20일 진행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5.25~5.5%로 동결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과 내년 금리 인하 속도는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당초 시장에선 이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부터 점진적으로 금리가 내려갈 것으로 기대했으나 당분간 고금리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관련기사: 미 금리인상 '일단 멈춤'…고금리시대 길어진다(9월21일)
시장에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자 은행들은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량을 늘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라 지금이 가장 낮은 금리로 볼 수 있다"며 "향후 금리 상승폭이 확대될 수 있어 은행채 발행을 통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레고랜드 사태 1년…여진은
금융권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자금조달을 위한 수신 경쟁을 펼친 바 있다. 당시 금융당국이 자금조달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들에게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한 까닭이다. 은행들은 자금조달 수단의 한 축이 막히자 또 다른 자금조달 수단인 예·적금 유치를 위해 수신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 유치했던 예·적금 만기가 도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에선 이 규모가 1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 1월 기간 증가한 금융권 수신 잔액은 약 96조2500억원이다.
최근 시장 금리 상승이 지속되고 만기가 오는 예금에 대한 경쟁 과열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수신 경쟁 자제를 요청했다.
금감원은 "작년 4분기 취급된 고금리 예금 재유치 경쟁으로 장단기 조달·대출금리 상승 우려가 시장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여·수신경쟁 과열 여부 등을 밀착 점검하고 금융사의 불요불급한 자금조달 여부를 면밀히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금융당국은 은행채 발행한도와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은행들의 현금 확보에 대한 부담을 줄여 수신 경쟁 강도를 낮추기 위한 조치다.
특히 지난해 4분기의 경우 레고랜드 사태라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했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 시점에선 우려했던 수준의 경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에는 레고랜드로 자금시장이 위축되면서 은행채 발행도 제한됐지만 올해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LCR 등을 봐도 은행이 급하게 수신을 많이 해야하는 상황은 아니라 예금 경쟁이 촉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레고랜드 사태 여진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대출금리 상승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미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를 넘어선 상황이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작년 만큼의 수신 경쟁은 없더라도 은행채 발행 금리가 계속 오른다면 대출 금리도 함께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