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금리가 길어지자 차주들의 상환 능력이 악화되면서 금융권의 건전성이 약화되고 있다. 올해 들어 금융권 연체율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달 금리가 상승하고 부실채권이 늘어나면서 2금융권 연체율을 급등시킨 데 이어 은행권마저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에 대출 규모를 줄이고 문턱을 높이는 등의 리스크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체율 증가에…'충당금 더 쌓자'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3분기(6~9월) 실적을 발표한 5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하나·우리카드)의 평균 연체율(30일 이상 연체된 채권 비율)은 1.32%로 일제히 1%를 넘어섰다.
업계 1위 신한카드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0.86%보다 0.5%포인트 상승한 1.36%를 기록했다. 특히 하나카드의 경우 같은 기간 0.77%에서 1.66%까지 오르며 연체율이 가장 크게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KB국민카드의 연체율은 0.78%에서 올 1분기 1.22%로 상승했고 삼성카드(0.7%→1.1%), 우리카드(0.92%→1.36%)의 연체율 또한 모두 1%를 넘겼다.
카드사의 자산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중 하나인 고정이하여신(NPL) 비율 또한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NPL 비율은 3개월 이상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연체돼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낮은 부실채권 비중을 의미한다.
하나카드의 올 3분기 NPL 비율은 1.25%로, 5개 전업카드사중 가장 높았다. 이는 전년 동기(0.52%) 대비 0.73%포인트 오른 것이다. 국민카드는 지난해 3분기 0.88%에서 0.56% 포인트 증가한 1.14%로 집계됐다. 우리카드는 0.73%에서 0.38%포인트 상승한 0.11%, 0.81%에서 0.43%포인트 상승한 1.24%로 나타났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통상 연체율이 2%대에 진입하면 위험 수준으로 보기 때문에 아직까지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면서도 "하반기에 조달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산 건전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최대한으로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모니터링도 꼼꼼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연체율이 높아지자 각 카드사는 충당금을 늘리며 부실에 대비하고 있다. 그 결과 카드사들의 순이익은 모두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한카드의 순이익은 지난해 3분기 5877억원에서 올해 3분기 4691억원으로 국민카드의 경우 3599억원에서 2724억원으로 각각 20.2%, 22.7% 감소했다. 하나카드는 1641억원에서 1274억원으로 23.1%, 우리카드는 1792억원에서 1174억원으로 34.1% 순이익이 줄어들었다. 삼성카드의 올 3분기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4301억원으로 전년 동기(4565억원) 대비 5.8% 순익이 감소했다.
계속 오르는 연체율…은행들도 다르지 않다
은행들도 상황이 카드사들과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올해 3분기 연체율은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모두 상승했다.
농협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0.19%에서 올해 3분기 0.36%로 0.17%포인트 상승하며 5대 시중은행중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0.19%에서 올해 3분기 0.31%로 0.12%포인트 상승했고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이 각각 0.11%포인트 오른 0.29%, 0.25%를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신한은행의 연체율 또한 0.27%로 지난해 동기 대비 0.06%포인트 높아지며 0.2%대로 올라섰다.
5대 시중은행의 경우 3개월 이상 연체돼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NPL) 비율도 증가세다. 5대 은행의 9월말 평균 NPL 비율은 0.264%로 1년전에 비해 0.058%포인트 증가했다. KB국민은행은 0.19%에서 0.26%, 신한은행은 0.25%에서 0.27%, 하나은행은 0.21%에서 0.23%, 우리은행은 0.17%에서 0.22%, NH농협은행은 0.21%에서 0.34%로 악화됐다.
은행의 경우 기업 대출의 증가가 연체율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서자 은행들이 기업 대출로 눈을 돌리면서 연체율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중 기업 대출을 가장 많이 늘린 하나은행의 기업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0.21%%에서 올해 3분기 0.32%로 0.11%포인트 상승했다. 우리은행(0.32%)과 신한은행(0.31%)도 기업 연체율이 높아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연체율도 상승하고 있지만 기업대출 쪽에서 연체율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며 "기업 대출은 경기를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도 올해 3분기 충당금을 크게 늘리고 부실 채권 매각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올해 3분기 누적 대손충당금 전입액이 3206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1881억원 대비 70.4% 증가했고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3951억원에서 올해 3분기 5955억원으로 50% 이상 늘렸다.
아울러 5대 시중은행이 올해 3분기까지 상·매각한 고정이하여신은 총 3조2201억원 규모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 1조5406억원 대비 배 이상 증가 수치다.
은행은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 채권을 '고정 이하' 등급의 부실 채권으로 분류하고 별도 관리하다가, 회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장부에서 지워버리거나(상각)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방식으로 부실 채권을 처리한다.
4분기도 안 좋다…대출 문턱 올리는 금융사들
4분기도 금융사들의 건전성 전망은 밝지 않다. 금융회사들은 가계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4분기에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회사들은 한국은행은 지난 30일 발표한 '금융회사 대출행태 서베이'에서 "4분기중 기업의 신용위험은 일부 업종 및 영세 자영업자의 채무상환능력 저하 등으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가계의 신용위험도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대 등의 영향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대출 문턱을 더욱 높일 전망이다. 올해 4분기 국내은행들의 대출태도 -11로 나타났다. 대출태도 지수는 100에서 -100 사이에 분포하는데 지수가 양(+)이면 대출 심사가 '완화'될 것이라고 답한 금융기관 수가 '강화'될 것이라고 응답한 기관보다 많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지수가 음수면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양수일수록 문턱이 낮아질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카드사 등이 포함된 비은행금융기관의 경우 모든 업권이 이미 높은 대출 문턱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권별 세부 대출태도지수를 보면 △저축은행 -22 △상호금융은 -30 △신용카드사 -14 △생명보험회사 -9로 나타났다. 비은행권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려는 건 조달 금리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연체율 상승 등으로 수익성과 대출 건전성 저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고금리 상황에서 위험 대출이 늘어나면서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하반기에 연체 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비용이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결과적으로 건전성을 악화하는 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하반기에는 정부나 금융기관이 건전성 리스크 관리에 조금 더 주력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일부 연체율이 높은 카드사들의 경우 우선적으로 대출 공급보다는 채권 회수에 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