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행사 자기자본비율 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은 그 동안 구조적 문제로 지적됐던 대출중심 사업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다. 단기수익 추구에 몰두하고 개발자들의 영세성으로 인해 5% 이내 자기자본으로 사업을 시행하면서 시장 변동성에 취약했던 까닭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본비율이 일정 수준(예 20%)에 도달한 PF 시행사에는 혜택(당근)을 주고, 자본비율이 낮은 경우에는 더 높은 위험가중치 부여와 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이른 바 '채찍'을 동시에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법 개정이 필요하고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실제 시행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자본비율 높으면 인센티브…기관투자자 토지신탁 투자 유도
14일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높은 자기자본비율을 통해 시행사가 관리·운영하는 개발 사업은 용적률과 공공기여 완화 등 도시규제 특례를 부여한다. 내년 상반기 중 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자본비율이 높아 리스크가 적은 사업장은 PF 보증료를 할인한다. 그 동안 문제시 됐던 PF 수수료 투명성 제고를 위해 PF 수수료 개선 TF를 통해 개선방안 마련도 진행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사들이 자회사 소유, 간접투자(펀드 등) 방식 등을 통해 장기임대주택 사업을 영위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부동산 PF에는 금융 지원이 필요한 만큼 장기임대주택사업에 한해 금융사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의미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의 경우 지분참여를 하면 위험가중자산 가중치가 높아 현 상황에서 손대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보험 등은 간접투자 방식 장기임대사업이라면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구조로 적용할 수 있을지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기관투자자의 부동산 개발신탁 참여 활성화 방안도 담았다. 부동산신탁사는 개발사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토지신탁 이후 기관투자자의 지분투자는 받지 못하고 차입 위주의 자금 조달만 진행하고 있어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토지신탁 사업에 기관투자자가 사업비(토지비 제외)의 일정 부분(15%)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자기자본과 내부통제 등 요건을 갖춘 신탁사에 대해선 기관투자자의 투자를 통해 원활한 자금조달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대출 비중이 낮아진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 동안은 신탁계에 기관투자자가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 차입 구조로 돼있어 추후에 갚아야 하는 것"이라며 "투자 형태라면 기관투자자가 사업에 지분을 넣는 것으로 차입이 아니라 신탁사의 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비율 낮으면 리스크 '더 엄격하게'
국내 PF 사업 자기자본비율은 5% 내외다. 30%를 웃도는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과도하게 낮은 수준으로 시장 상황이 악화돼 사업성이 떨어지면 그만큼 리스크도 급격하게 커진다. 이는 정부가 PF 사업 자기자본비율을 궁극적으로 끌어올리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PF 대출시 일정 수준(예 20%)의 PF사업 자기자본비율을 기준으로 위험가중치와 충당금을 차등화하기로 했다.
가령 현재 은행권에선 PF 대출에 대해 가중치 150%를 부여한다. 100억을 대출하면 위험가중자산은 150억원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자기자본비율이 20%를 충족한 사업장에 대한 대출이라면 현 수준인 150%의 위험가중치를 적용한다. 20%에 도달하지 못한 사업장은 리스크가 더 큰 만큼 더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하는 구조다.
이와 함께 충당금도 더 쌓아야 한다. 정상여신에 대한 충당금 적립률이 0.9%라면 자기자본비율이 20%를 넘어선 사업장은 적립률을 더 낮게(예 0.7%), 자본비율이 20%에 미치지 못하면 낮은 정도에 따라 적립률은 더 높게 한다.
은행 입장에선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사업장에 대출을 할 경우 위험가중자산은 더 많이 반영되고, 쌓아야 할 충당금도 늘어나는 만큼 자본비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리스크 관리체계가 부족한 업권(상호금융·여전·새마을금고)은 저축은행권과 같이 사업비 대비 자기자본비율 요건 도입도 살펴보기로 했다. 현재 저축은행권은 PF 대출 시 사업비 대비 자기자본비율 요건(20%) 존재한다.
그럼에도 최근 부동산 PF 부실사업장 가운데 저축은행 비율이 높은 것은 사업성이 낮은 곳에 대출을 해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위는 내년 상반기 TF 운영을 통해 업권별 감독규정세칙과 PF 리스크 관리 모범규준을 개정하고, 일정기간 유예 후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단 시행시기 이전 PF 대출 등에는 소급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일각에선 최근 부동산 PF 부실 사업장이 많은 새마을금고에 다른 업권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PF 사업구조를 바꾸는 과정이라 새마을금고만 더 강한 규제를 부여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사업성…PF시행사 구조조정 가능성도
정부는 이번 개선방안은 법 개정이 필요하고 TF 운영 등을 통해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적용한다는 계획이라 내년 이후에나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행 이전 대출에는 소급적용하지 않아 당장의 PF 대출 위축 우려는 없을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 설명이다.
특히 PF사업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위험가중치와 충당금 적립률 등이 달라지는 만큼 대출 과정에서 사업성 평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사업장이라도 사업성이 좋으면 충당금을 더 쌓더라도 PF대출이 가능할 것"이라며 "금융권이 PF 대출 시 좀 더 면밀하게 사업성 평가를 거치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PF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도 사업성 중심의 PF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자는 "충당금을 더 쌓더라도 서울과 수도권 등에서 사업성이 좋은 곳이라면 그룹 차원에서 은행 대출 외 캐피탈이나 증권사 등을 통해 재무적투자자로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며 "이번 방안은 지방 등 사업성이 좋지 않은 곳에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PF 시행사들의 사업 개편과 구조조정 가능성도 거론된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추진 과제 등이 대부분 내년 법 개정이 필요해 선진화 효과는 2026년 이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중장기적으로 자본과 설계, 분양 뿐 아니라 임대·운영 노하우도 갖춘 규모 있는 시행사와 영세 시행사 간 양극화가 심화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