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乙巳)년 은행산업은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부터 금리 인하가 본격화 하면서 핵심 수익원이었던 이자이익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영업망을 적극 늘리기 녹록지 않아서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비이자이익을 늘려야 하는데, 비이자이익을 적극적으로 늘리기에는 올해 초 홍콩 ELS(주가연계증권)사태 이후 위축된 금융투자상품 판매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남아 있는 몇 안되는 비이자이익 부분에서 수익원을 적극 발굴해야 하는데 이는 경쟁이 심화하고 있어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내년에는 경기가 불황의 늪에 더욱 더 깊게 빠져들 것으로 예상돼 은행들에게 '상생'에 대한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간 막대한 수익을 거둔만큼 이제는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금융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금리 내려가고 대출은 늘리기 어렵고
지난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끌어올렸던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 '고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9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금리를 내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역시 10월과 11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한 바 있다.
끝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내년 최소 두 차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예고했다. 한국은행 역시 내년에도 3회 이상 기준금리를 끌어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고금리의 종말은 곧 수익성의 악화와 직결된다. 은행의 수익 중 내어준 대출에서 나오는 이자수익의 비중이 상당해서다. 금리가 내려가는 만큼 대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자수익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결국 이자수익 방어를 위해서는 대출을 보다 적극적으로 취급해야 하는데 이 역시 녹록지 않다. 정부가 올해 가계대출의 증가세가 위험한 수준이라는 판단 아래 가계대출 취급에 대해 보수적으로 나서 줄 것을 주문해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중심으로 하는 억제책을 펼쳐왔다.
현재 가계대출의 경우 연간 단위로 총량 관리를 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해가 바뀌면 올해 하반기에 비해서는 대출의 문턱이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당장 일부 은행은 해가 바뀌고 나면 올해 하반기 중 판매 중지 등에 나섰던 일부 대출 상품을 다시금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연초 혹은 상반기에 대출을 적극 늘릴 경우 금융당국의 '브레이크'에 하반기에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대출을 옥죄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연간 경영 계획 수립과 이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서다.
은행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판매 중지됐던 대출 상품의 판매가 재개되고 금리도 내려가는 만큼 대출수요가 올해 하반기에 비해서는 살아날 수 있다"라면서도 "다만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대출도 적극 늘리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 불안의 확대로 기업들이 자금을 제대로 조달하기 어려워지면서 은행 대출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있기는 하지만, 기업들에게도 대출을 적극적으로 내어주기가 마땅치 않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의 생존력이 하락하고 있어서다. 기업들이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해 은행들이 손실을 떠안아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가계와 기업여신 모두 내년에는 '땅 따먹기'가 가속화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가계와 기업여신 모두 신규 대출자를 찾는 것보다는 대환대출 혹은 우량기업 유치 등 기 대출차주들을 각 은행으로 끌어오는 경쟁이 더욱 가속화 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비이자 강화 외친지 수년…단기성과 어려워
이자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비이자이익 부분에서 메워야 하지만 이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올해 홍콩 ELS의 여파로 고위험 금융투자 상품의 판매가 여의치 않아진 것이 가장 아쉽다. 금융당국이 이같은 금융투자 상품 판매 방침을 내놓는다는 방침이긴 하지만, 해당 방침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적극적인 판매에 나서기도 어렵다.
일부 은행은 수익원 다각화 차원에서라도 내년에 방카슈랑스와 같은 현재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비이자이익 수익원에 집중한다는 계획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당장 은행의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선도 많다. 이자이익의 10분의 1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그간 수익원 다각화를 위해 비이자 이익 경쟁력 강화를 외쳐온 것은 오래 된 일이지만 단기간에 극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며 "특히나 핀테크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하고 난 이후부터 일부 서비스의 수수료를 받지 않는 것이 새로운 기준이 된 상황인 것이 이를 더욱 악화 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 이자이익 부분이 줄어든다고해서 비이자이익이 이를 온전히 상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라며 "다만 비이자 이익을 끌어올려 수익원을 다변화 하는 것은 은행의 장기적인 숙제인 만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 팔목 '더 비틀텐데'…위기를 기회로
내년에는 우리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2%를 하회하는 등 경기침체가 본격화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그간 막대한 수익성을 보여줬던 은행들에게 사회 환원 차원의 '상생'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같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간에는 '씬파일러'(금융이력부족자)로 분류되던 이들에게 더욱 적극적인 금융지원에 나서달라는 주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권과 만나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 방안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정상적으로 빚을 상환하고 있더라도 상환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여지는 경우 채무조정 지원, 분할상환 프로그램 도입 등에 나서기로 했다.
은행 한 관계자는 "내년에는 자영업자 경제상황이 더 어려워 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채무조정 대상 등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은행의 수익성만 따져봤을때는 은행이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은행에 대한 상생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볼멘소리만 하기보다는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상희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상생금융과 병행해 소호(자영업자)의 금융니즈를 고려한 서비스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들은 금융환경에 대응이 느린 편인 만큼 자금관리에 대한 니즈를 지원하고 경영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짚었다.
은행 한 지점장은 "은행 고객은 한 번 고객이 되면 장기적으로 자행을 찾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눈앞의 수익성을 좇기 보다는 장기적인 고객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소상공인 등에 대한 영업을 펼칠 필요가 있다"라며 "이같은 측면에서 접근하면 당장은 아쉬울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은행에게는 이점이 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