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앵커원 빌딩에 자리한 'AI 데브(DEV)센터'. 대형 화면에는 사무실을 본뜬 가상공간이 펼쳐졌고 캐릭터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개발·테스트·보안을 맡은 AI 에이전트 작업을 게임처럼 구현한 화면이다.
옆 화면에 '근저당권 관련 법률지원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입력하자 7개 AI 에이전트가 코드를 짜고 테스트한 뒤 오류를 수정했다. 개발·프로젝트관리(PM)·보안·구축요건 정의를 동시에 나눠 맡았다.
KB금융은 외부 개발자 한 명의 월 투입비용이 약 1400만원인 데 비해 AI 이용 비용은 5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개발자 10명 이상이 한 달 넘게 투입될 작업을 2주 안팎으로 줄였다.
여러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업무를 나눠 맡고 필요할 경우 24시간 가동할 수 있어서다. 현재 5개 계열사에서 약 80개의 AI 에이전트가 가동 중이며 8개 계열사 생성형 AI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다.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으로 AX 재설계
KB금융은 AI DEV센터를 AI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새로운 개발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는다. AI가 설계와 코드 작성, 테스트를 맡고 사람은 결과 확인과 품질 관리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지난 13일 만난 박형주 KB금융·KB국민은행 AI·DT추진본부장은 "KB금융이 생각하는 AX는 기존 업무에 AI 기술을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며 "고객 경험과 업무 프로세스, 조직 운영 방식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경영 혁신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방향은 그룹 중장기 경영전략에도 반영됐다. 최근 양종희 KB금융 회장이 그룹 경영진에 "시스템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일하는 방식과 프로세스를 다시 살펴보고 AI를 기반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그룹 AX 설계 중심에는 AI·DT추진본부가 있다. 계열사별 중복 투자와 편차를 줄이기 위해 전략·인프라·거버넌스의 공통 기반을 마련한다. 최근에는 현업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AI로 해결하는 '현업 주도형 AI 활용 문화'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박 본부장은 "AI 전담 조직도 과제를 직접 발굴하기보다 현업의 실행을 돕는 '기술 조력자(Enabler)'로 기능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 효율 넘어 '비즈니스'로
KB금융이 AI에서 찾는 또 다른 답은 '수익'이다. 양 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AI 비즈니스 시장에서 고객과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AI가 직접 돈을 벌어들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금융상담과 상품 추천 오류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현재는 사람이 검증할 수 있는 직원 지원 업무부터 적용하고 있다.
그 출발점이 PB·RM 등 현장 업무다. 박 본부장은 "AI 에이전트가 상담 준비와 고객 분석을 맡으면 직원은 맞춤 상담에 집중해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때 제안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은행 금융상담 에이전트는 관련 업무시간을 70.2% 단축했다.
그는 "KB금융이 지향하는 AX는 AI를 통해 고객에게 더 나은 금융 경험과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고객 가치가 먼저 커질 때 KB금융 경쟁력과 사업 성과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적용을 금융 본업으로 넓힐수록 책임 소재와 통제 기준도 중요해진다. KB금융은 여신 심사·자산관리·상품 추천·보험 심사·리스크 관리에서 AI가 분석·예측·추천을 맡되, 최종 결정은 금융 전문가가 내리도록 할 방침이다.
일부에선 이미 성과가 나타났다. 국민은행 기업여신 자동심사 시스템(ML Bics)은 36개 모형을 운영 중이며 국민카드 AI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은 지난해 금융사기 차단율 83.9%, 차단액 376억7000만원을 기록했다.
사번 가진 AI 등장 할듯…최종 판단은 사람
AI 환각과 개인정보·보안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위험 요인을 31개로 세분화한 자체 관리체계도 마련했다. 박 본부장은 계열사별 에이전트의 데이터·모델·위험도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사람으로 치면 에이전트 인사대장"이라며 "AI 답변 위험도와 정확성을 검증하는 모델도 개발했다. AI 문제는 AI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이 그리는 미래 은행은 '에이전트가 일하고 인간은 감독하는' 모습이다. 그는 "앞으로는 사번을 부여받은 AI 에이전트도 나올 수 있다"며 "에이전트는 일하고 인간은 감독하는 철학으로 금융 비즈니스가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원에게 필요한 역량도 달라진다. 박 본부장은 "앞으론 고객에게 필요한 질문을 정확히 던지고 그 답을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AI가 답을 만들고 실행까지 대신하면 은행원은 왜 필요한가. 남는 것은 질문과 판단이다. 은행원 역할을 다시 묻는 일은 곧 은행 존재 이유를 묻는 일로 이어진다. 최종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며 신뢰를 지키는 일은 여전히 인간과 은행의 몫이기 때문이다.
박형주 KB금융·KB국민은행 AI·DT추진본부장은 국민은행 입행 후 디지털 전략과 채널 영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2021년 DT전략부장을 맡아 클라우드 기반 협업 플랫폼 구축 등 디지털 전환을 이끌었다. 이후 디지털신사업본부장과 스타뱅킹영업본부장을 거치며 국민인증서와 모바일 앱 'KB스타뱅킹' 고도화를 추진했다. 현재는 AI·DT추진본부장으로 그룹의 AI·디지털 전환을 총괄하고 있다.






















